" 명함 한 장 주세요! " 오랜 지인의 소개로 새로운 일을 의뢰받게 되었다. 한 번으로 끝나는 일이 아닌지라, 인사차 가벼운 미팅을 가졌다. 담당자와는 말도 잘 통했고, 함께 일하게 될 다른 스텝들도 좋아 보였다. 모두 기분 좋게 첫 만남을 끝내고 일어서는 순간, 담당자가 내 팔을 가볍게 잡으며 나에게 명함을 요구했다. 나는 잠시 머뭇 거리다가 후배의 회사에서 만들어준 명함을 내밀까 하다가, 그러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말했다. " 어쩌죠? 전 명함이 없어요. 프리랜서라... 호칭 때문이라면, 그냥 제 이름을 부르셔도 좋고요, 그게 좀 어색하시면(나보다 20살이 어린 담당자의 입장에서는), 그냥 작가님이라고 부르셔도 좋아요. " 그러자 그녀는 작가님이라는 호칭이 마음에 들었는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 네 작가님' 하고 활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프리랜서라고 명함을 만들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나는 더 이상 네모난 종이 위에 적인 이름과 타이틀로 나를 정의하거나 소개하고 싶지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과거의 내가 걸어왔던 행보와 흔적들 앞에 '전'자를 붙여가며 나의 쓸모를 애써 증명하고 싶지도 않다. 그냥 보기에 무 쓸모에 가까운 순백의 내 이름 석 자로, 일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나답게 살면 그만이라고, 반백 살을 넘기며 결심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결심은 수시로 흔들리고, 그럴 때마다 풀이 죽고 초라해진다. 그러나 당연한 일 아닌가. 이 나이에도 펄펄 날고 분기탱천하면, 그거야말로 큰일이니까. (아네고 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