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라면 언젠가 꽃을 피운다 ' - 나와 같이 광고 회사를 다니다가 정점을 찍을 무렵,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드라마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후배가 있다. 워낙 아이디어와 능력이 탁월했던지라 모두 그녀의 사직을 만류했으나, 그녀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5년이 흘렀다. 교육원에서 드라마 작가 수업을 끝내고, 지금은 보조작가로 활동하며 그녀를 단박에 메인 작가로 만들어줄 공모전에 출품할 작품을 쓰고 있다. 나 또한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으면서 한때 드라마 작가를 꿈꾼 적이 있었으나, 한참 부족한 상상력과 글재주, 저질 체력을 떠올리며 미련없이 마음을 접었다. 언제나 당당하던 그녀가 오늘은 왠지 맥이 빠져 보인다. 가만히 있어도 지치는 더운 날씨 탓도 있겠지만, 자신의 앞 날에 대한 막막함도 한몫을 했으리라. 그녀가 얌전히 커피잔을 움켜쥐고 나에게 묻는다. " 선배는 글을 쓰면서 무슨 생각을 해요? 내가 글을 써도 괜찮은 사람인가 하는 생각은 해본 적 없어요? " 나는 그녀를 따듯한 시선으로 물끄러미 바라보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로마의 시 중에 이런 구절이 있어. 장미라면 언젠가 꽃을 피운다. 아직 그때가 아닐 뿐이라고 생각하고 때를 기다리는 거야. " 내 말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어는 지 그녀는 차가운 커피를 홀짝이며 해맑게 웃는다. 그녀와 나는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에 망설임 없이 첫발을 내디뎠을 뿐이다. 그리고 낯설고 안개가 낀 뿌연 그 길을 더듬더듬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여전히 목적지가 어디인지, 그 목적지에 도착하면 어떤 일이 펼쳐질지 알지 못한다. 비록 불안과 두려움에 잠시 멈춰 설지라도, 앞으로 나아가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아네고 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