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6일(토)

by anego e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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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답하라, 천리안 ' 싸이월드가 다시 살아나고, 추억의 미니미들이 등장한 제품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반가운 마음에 덥석 집어 들고 몇 번 만지작거리다 내려놓았다. 스마트폰이 없었던 시절, 내 젊은 날의 소통의 장이자 메모장과 같았던 존재가 있었다. 천리안 - 전화로 연결되는 모뎀이 있어야 접속이 가능했던 통신. 영화 접속의 한 장면을 그 시절의 우리는 날마다 재현하곤 했다. 회사 점심시간, 팀원들이 점심을 먹으러 간 틈을 타 나는, 출근길에 사 온 샌드위치를 먹으며 천리안에 접속했다. 한참 열광하던 힙합을 테마로 한 방을 개설하고, 누군가 입장하기를 기다린다. 내 아이디를 보고 들어온 이와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새로 나온 힙합 그룹의 앨범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런데 어느 날, 유독 딴죽을 거는 한 인물이 등장했다. 한마디로 그 깐죽거림이 나를 포함한 멤버들의 짜증 폭발로 이어지곤 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매번 내 방을 용케 찾아내고 가장 먼저 입장을 했다. 무슨 오기가 발동했는지, 나는 그 진상에게 쪽지를 보냈다. " 야, 너 얼굴 한번 보자, 매번 왜 그러는 건데? " 그리고 나는 내 삐삐 번호를 남겼다. 며칠 후, 팀에 새로 배정된 인턴들과 퇴근 후 단골 술집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삐삐가 울렸다. 나는 제법 취기가 오른지라 호출을 한 주인공이 천리안의 그 진상이라는 걸 알고,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큰 목소리로 말했다. " 지금, 나와라, 그러면 그동안 까불 된 거 다 봐준다!" 정말로 나는 그가 나올 줄 몰랐다. 모 대학교 영문과 3학년이었던 그는 잔뜩 멋을 내고 그 밤에 술집에 나타났다. 그의 스타일이 마음에 들었는지, 함께 술을 마시던 인턴 후배들의 얼굴에 사심 가득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렇게 기분 좋게 다 함께 술을 마셨다. 그는 생각보다 유머러스했고 나와 말이 잘 통했고, 그 특유의 깐죽거림은 말이 아니라 글에서 나오는 버릇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그와의 인연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그는 내 영향을 받은 탓인지 졸업 후, 나와 같은 광고 회사에 입사를 했고, 아직도 꿋꿋게 잘 다니고 있다. 천리안이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인연 - 최근에 부척 바빠져서 나에게 소홀해진 것이 미안했는지, 그는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 그때처럼 긴 수다를 떤다. 그 순간 다시, 우리의 천리안이 응답하기 시작한다. (아네고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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