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줌의 재' 소설이나 시속에 등장하는 이 구절의 주인공이, 오늘 내 아버지가 되었다. 기차역을 방불케 하는 큰 규모의 화장터를 꽉 매운 검정 옷의 사람들. 매표소처럼 줄줄이 이어지는 창구에는 고인의 이름과 지금 화장 중이라는 디지털 문자가 번갈에 지나간다. 처음 경험하는 낯선 이 풍경이 생경하고 처연하다. 망자의 관을 화장하는 곳으로 실어 나를 이동 수단이, 기다란 복도의 유리문 앞에 대기해있다. 유족들은 한쪽 벽에 서서 차례를 기다린다. 자신과 망자가 타고 온 버스가 유리문 앞에 서면, 자신의 차례가 되는 것이다. 저기 우리가 타고 온 버스가 보였다. '아버지'...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온 이 이름은 애써 참으려는 눈물을 또 불러온다. 친척들이 아버지의 관을 운구해서 이동 수단 위에 올리고, 우리는 그 뒤를 따라간다. 이제, 아버지의 몸은 뜨거운 불속에서 한 줌의 재가 된다. 부축한 엄마의 어깨가 거칠게 흔들리며 온몸이 휘청 된다. 나는 엄마의 어깨를 있는 힘껏 꽉 껴안고 울음을 터트렸다. 또 다른 긴 복도로 아버지의 관이 사라지고, 아버지의 영정사진이 놓인 창구에 불이 들어오고, 컴퓨터 모니터만 한 네모난 스트린 속 엘리 에이터가 열리고 아버지의 관이 그 속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간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고 잠시 후, 창구에는 아버지의 이름과 지금 화장 중이라는 디지털 문자가 무심하게 지나간다. 두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한 줌의 재가 되어 우리의 손에 건네 졌다. 아버지를 공원묘지에 묻기 전에, 가족들에게 한 줌의 흙이 주어졌다. 그 흙을 아버지의 재 위에 뿌리며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라고 했다. 나는 쏟아지는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 " 아버지,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편안히 쉬세요. 사랑하고 보고 싶습니다. " 앞으로 어쩌면 나에게 보고 싶다는 말은 '그리움'이 아니라 '아픔'이 될지도 모르겠다. 보고 싶어도 결코 볼 수 없는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슬픔, 무엇으로도 위로될 수 없는 쓸쓸하고 공허한 마음. 그런 감정들이 이제는 보고 싶다는 말속에 모두 담길 터였다. (아네고 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