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일(금)

by anego emi

'고명이 고봉인 잔치국수 한 그릇 ' - 바이러스와 고전 분투하느라 바짝 마른 입안에 무엇을 밀어 넣어도 맛이 없다. 입맛이 없다는 것이 이런 것이란 걸 새삼 실감하며, 그래도 잘 넘어가는 커피를 몇 잔째 홀짝인다. 무엇이든 챙겨 먹고 기력을 회복해야 할 텐데, 먹고 싶은 것도 없고 먹을 만한 것도 없다. 근처 맛집이라도 찾아볼까 하다가,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추천해 준 맛집 소개 영상을 클릭해 본다. 경기도 어느 시장의 유명 잔치 국숫집 - 단돈 5천 원이면 부추, 애호박, 양파, 당근, 계란지단 등의 고명을 산더미처럼 올려주는 푸짐한 잔치국수를 먹을 수 있다. 멸치, 다시마, 새우, 파 등의 맛깔스러운 육수를 내는 각종 재료들을 아낌없이 넣고, 새벽부터 팔팔 끓여 낸 국물은 보약이 따로 없어 보인다. 나도 모르게 군침이 돈다. 잔치국수 - 어린 시절 할머니가 시골집에 갈 때마다 해주시던 단골 점심 메뉴였다. 할머니는 신 김치를 직접 기른 깨로 짠 참기름을 넣고 조물조물 무쳐서 고명으로 올려주셨는데, 달짝하고 시큰한 그 맛 덕분에 양념간장이 필요 없었다. 유독 멸치 향이 강했던 국물 맛은, 자극적인 라면 국물 맛에 길들여진 우리들에게 그저 낯선 어른의 맛이었다. 나는 유독 형제들 중에서 할머니의 잔치국수를 좋아하고 잘 먹었다. 심지어 국수만 건져 먹고 국물을 죄다 남기는 다른 형제들과 달리, 국물까지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말끔히 먹어치웠다. 그 심심하고 담백한 맛이 나는 먹을수록 좋았고 가끔은 생각이 나곤 했다. 갑자기 할머니의 잔치 국수가 너무 먹고 싶어 진다. 이렇게 입맛이 없을 때 할머니의 잔치국수 라면 후루룩 소리를 내며, 한 그릇 뚝딱 해치울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주점 주점 옷을 입고, 집 밖으로 나간다. 잔치국수 한 그릇 - 오늘은 그걸 먹어야겠다. (아네고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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