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4일(일)

by anego e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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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산책이나 할까? " 최근에 큰일을 치른 내가 마음에 걸렸는지, 후배 J가 산책을 핑계 삼아 한 시간이 넘게 전철을 타고 동네로 왔다. 잔뜩 흐린 하늘은 곧 비를 쏟을 기세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매섭게만 쏟아지지 않는다면, 나는 그녀와 우산을 나란히 받쳐 들고 공원의 숲길을 걸을 생각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비는 분무기로 뿜어내듯 보슬보슬 내리는 비에 가까웠고, 우리는 뜨거운 커피 한 잔을 테이크 아웃하고 산책을 나선다. 간간이 불어대는 바람이 제법 쌀쌀하다. 그 덕분에 갓 내린 커피의 향긋한 향과 맛이 일품이다. 그녀와 나는 여행 메이트다. 뭐든 철저하게 준비하는 그녀 덕분에, 나는 한 달간의 남미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나는 그녀가 차린 밥상에 숟가락 하나만 올리고 맛있게 먹어치운 셈이다. 아침잠이 많은 그녀가 늦잠을 자면, 나는 그녀를 깨우지 않고 동네를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맛집을 골랐고, 그녀가 부지런히 검색을 해서 한 집을 고르면, 그날의 저녁 메뉴가 결정되곤 했다. 코로나가 창궐하지 않았으면, 우리는 아마도 북유럽 여행을 떠났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번에도 밥상은 그녀가 차리겠지만도. 젊고 생기 넘치던 그녀도 이제 중년의 티가 물씬 난다. 희끗희끗 보이는 흰머리가 세월이 흘렀음을 말해준다. 나는 말없이 그녀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 " 올가을에, 어디 국내 여행이라도 가볼까? 이번에는 내가 계획을 한번 짜 볼게! " 그녀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아네고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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