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 - 빗소리는 참으로 다양하다. 새까만 한밤에 들리는 빗소리는 주파수가 맞지 않아 지지직 대는 라디오의 소음 같다. 희미하게 밝아오는 새벽녘에 들리는 빗소리는 새근새근 잠이 든 아이의 숨소리 같다. 달 뜨고 허기진 날의 빗소리는 쪽파와 해물을 듬뿍 버무려 부치는 전 굽는 소리 같다. 올여름은 유난히 비가 많이 왔다. 더위에 곪아 터진 고름을 짜아내듯 쏟아내는 비는 섬뜩한 공포를 자아내기도 했다. 포효하는 듯한 소리를 내며 쏟아지던 굵은 빗줄기 속에도, 더위는 당당히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뜨거운 여름을 지켜냈다. 가을의 초입, 또 비가 내린다. 간간이 거센 바람을 동반한 이 비는, 가만히 눈을 감고 들으면 쏴아 쏴아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소리처럼 들리다가도, 후드득후드득 땅바닥에 동그란 흔적들을 남기며 원래 빗소리란 이런 것이란 걸 알게 한다. 이 비가 그치면, 짧아서 더 아쉽고 하루하루가 금쪽같아지는 가을이 시작될 것이다. 익어가면서 시들어가는 중년을 닮은 계절, 가을 - 지난했던 여름의 기억들을 차분하게 지워내며, 허전하고 그리운 마음으로 짧은 여행을 떠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아낌없이 다 비울 수 있기에 돌아와서 다시 채우고 싶어지는 그런 여행은, 어느 날 낯선 골목길에 들어서자 무심하게 나를 마중 나온 가을에만 가능한 일이니까. (아네고 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