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2일(월)

by anego e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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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저희 갈게요 " 기차역까지 배웅을 나온 아버지에게 손을 흔들며 아들 가족은 돌아선다. 아쉬움과 그리움이 묻어나는 희미한 미소가 아버지의 얼굴에 번진다. 그 모습을 세상에서 가장 감동스러운 한 장면인 양 넋을 놓고 쳐다보는 한 사람이 있다. 캐리어의 손잡이를 꽉 움쳐 쥐고 있던 손에 스르륵 힘이 풀리면서, 캐리어가 슬금슬금 뒤로 미끄러진다. 누군가 그것을 한 발로 막아 세우며 돌부처처럼 멍하니 서 있는 그의 어깨를 가볍게 툭 건드린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린 그의 얼굴에는 닭똥 같은 눈물이 흐르고 있다. 나의 이야기다. 아버지 없는 첫 명절을 보내고, 수백 번도 더 보았던 그 흔하디 흔한 기차역 풍경 앞에서, 결국 나는 참았던 눈물을 터트리고 만다. '아버지'가 이제는 내가 부를 수 없는 이름이 되었다는 것과, 더 이상 그들처럼 아버지의 배웅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가슴에 커다란 돌덩어리가 들어앉은 것처럼 숨은 거칠어지고 무거워진다. 대학 졸업 후 직장 생활로 바쁜 탓에, 명절 때마다 서울로 돌아가는 비행기 표를 구하지 못한 나를 위해, 공항으로 함께 가 애를 써주고 나를 배웅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무뚝뚝하고 감정 표현이 서툴렀지만, 아버지는 케이트 문이 열리고 내가 사라질 때까지 묵묵히 그 자리에 서서 나를 지켜봤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개를 돌려 아버지에게 손을 흔드는 나에게,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이제는 너무 오래전이라 희미해진 그 모습이 서울로 가는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나는 창가에 고개를 기대고 옆 사람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숨을 죽여가며 눈물을 훔친다. 슬픔에도 유효기간이 있을까? 있다면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아버지가 있는 풍경' 앞에서 또 눈물을 흘리게 될까? (아네고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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