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금 더 맛있게 먹을걸' - 내가 자주 습관처럼 내뱉는 이 말은, 나의 첫 책이 될 뻔하다가 서랍 속에 묻힌 에세이의 제목이다. 당시, 글과 그림을 여러 곳의 출판사에 보냈으나, 딱 한 곳에서 답글을 보내왔다. 그리고 홍대 근처에서 미팅을 가졌고, 나와 동갑내기였던 편집자는 출간을 제안했다. 어찌나 기쁘고 신기하던지 제법 무더웠던 늦여름임에도 불구하고, 구슬땀을 흘리며 정신 나간 사람처럼 싱글벙글 웃으며 이대까지 걸어갔다. 그날 본 노을 진 저녁 하늘은 참으로 벅찼다. 1년 동안 거의 외출도 하지 않고 아침에 눈을 떠 저녁 무렵까지 노트북의 자판을 두들기며 글을 쓰고, 부족한 문장력을 보충하느라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간신히 초고를 넘겼으나 출판사에서는 피드백이 없었고, 백 번도 망설이다 보낸 메일에 내부 사정으로 인해 스케줄 조정 중이라는 간결한 답신이 왔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나서 담당 편집자는 일신상의 이유로 퇴사를 하게 되었다는 말과 더불어 나의 책은 아마도 출간되기 어려울 것 같다는, 갑작스러운 연인의 이별 통보 같은 문자를 보냈다. 그 후 오랫동안 가끔씩 와인 몇 잔에 취하면 꺼내서 읽어보며 ' 뭐, 이만하면 잘 썼네' 하고 술주정에 가까운 넋두리를 혼자 쏟아내곤 했다. 명절 연휴 내내 입맛이 바닥으로 떨어진 나를 걱정하며, 엄마가 갓 담근 얼갈이김치를 지퍼락 비닐봉지에 몇 겹으로 싸서 나에게 건넸다. 가방에서 넣어두어도 솔솔 새어 나오는 음식 냄새를 몹시 꺼려하는 나는, 평소 같았으며 단칼에 거절했을 터였으나, 그날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잘 먹겠다'라는 말과 함께 받아 들었다. 웬일인지 아침부터 허기가 느껴졌다. 나는 즉석밥을 데우고 엄마의 얼갈이김치를 꺼내 새하얀 접시에 수북하게 담았다. 반찬이라고는 이 김치 한 가지이지만, 왠지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뜨거운 밥에 적당히 맛이 든 길쭉한 얼갈이김치 한 조각을 찢어 올리고, 크게 입을 벌려 입안 가득 넣고 씹는다. 언제가 그립고 또 그리워질 이 맛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조금이라도 더 맛있게 먹을 것을 다짐하고 또 다짐해 본다. (아네고 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