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5일(목)

by anego e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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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이게 뭐지? " 냉장고 깊숙한 곳에 꼬깃꼬깃 접힌 포일 뭉치가 보였다. 최근에 얻어온 엄마의 김치 덕분에 텅 빈 냉장고가 제법 꽉 찼다. 그 덕분에 눈에 잘 띄지 않았던 모양이다. 꺼내서 펼쳐보니 마분지를 무심하게 삐뚤삐뚤 자른 것 같은 제법 도톰한 네모난 조각들이 포일 속에 쌓여있었다. 미색의 종이 조각 위에 파릇파릇한 가느다란 녹색의 선들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며칠 전 공허한 마음에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나의 한마디에, 총알같이 달려와준 후배 K와 동네 시장 골목 전집에 갔었다. 이슬 같은 물방울이 맺힌 차가운 막걸리 한 통과 이 집의 시그니처 메뉴인 부추전을 주문했다. 나는 까칠한 입속으로 막걸리 몇 모금을 급하게 밀어 넣고, 젓가락으로 찢어 부추전을 씹었다. 고소한 향이 입맛을 돋워주리라 믿었건만, 흐물흐물한 식감만을 남길뿐 아무런 맛을 느낄 수 없었다. 후배는 내 잔을 채워주며 한숨처럼 뱉어내는 내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었다. 그 이야기 속에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분명 있었을 터였다. 막걸리 한 통을 비우고 일어서는 우리에게, 주인아주머니가 잠깐 기다리라 외치며 테이블 위해 고스란히 남은 부추전 접시를 냉큼 챙기셨다. 그러고는 재빠른 가위질로 동그란 부추전을 조각조각 자르고, 그것을 포일에 싸서 나에게 내밀며 살갑게 말했다. " 마음이 그럴수록 뭐든 챙겨 먹어야 해요. 지금은 입맛이 없어도 나중에 출출해지면 먹어요. 이건 식어도 맛있는 거야. " 그렇게 받아 든 부추전을 이제야 냉장고 속에서 발견한 것이다. 나는 아주머니의 고마운 마음이 담긴 부추전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었다. 아주머니 말처럼 식어도 맛있었다. 갑자기 허기를 느끼며, 나는 냉장고 앞에 선채로 남은 조각을 모두 해치우고 말았다. (아네고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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