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3일(수)

by anego e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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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할 수 없는 것, 그것을 하지 않으면 도무지 하루를 잘 살 수 없는 것 - 만약 누군가에게 그런 행위든 의식이든 물건이든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명실상부 나의 최애 루틴이자 지금의 나를 가장 잘 말해주는 그 무엇이리라. 나의 경우는 아침 산책이다. 산책이라고 하기에는 제법 긴 시간을 투자하는 편인데 보통 2시간은 기본이고 어떤 때는 4시간 동안 계속된다. 황금 같은 오전 시간이 아깝지 않냐고 따져 묻는다면, 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노우'라고 답할 것이다. 나를 먹이고 살리는 일의 대부분은 글쓰기인데, 이 글쓰기란 청춘을 쏟아부어 터득한 기술인 카피라이팅과 호기심 많고 산만한 성격이 키운 잡다한 지식들을 아이디어로 정리하는 일이다. 나는 이 일을 대부분 걸으면서 한다. 걸으면서 생각하고 걸으면서 쓰고 걸으면서 구체화한다. 그뿐만 아니라 수시로 나를 공격하는 안 해도 되는 고민들과 걱정들을 머릿속에서 지워내고, 그것을 대신할 하루의 소소한 행복 거리를 찾는다. 그러니 나에게 있어 산책은 일터이며 친구이며 나를 만나는 시간이다. 어떤 날에는 읽고 싶었던 책이 오디오북으로 나오면, 들뜬 마음에 아침 일찍 눈을 뜨고 서둘러 집을 나와서 걷기 시작한다. 책 내용이 너무나 마음에 와닿은 나머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멈출 수가 없다. 늘 다니던 산책로를 벗어나 그저 길이 이끄는 데로 책을 들으며 걷고 또 걷는다. 마치 귓가에 들리는 책의 내용이 실시간 현실로 펼쳐지는 듯한 착각에 가끔씩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지나가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면 실없이 수줍은 미소를 짓기도 한다. 이토록 산책은 참으로 나에게 날마다 주어지는 멋진 선물이자 즐거움이다. (아네고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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