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6일(수)

by anego e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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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구슬 같은 청명한 하늘 아래 옅은 갈색과 샛노랗고 붉은빛으로 얼기설기 짠 가을 낙엽의 방석 위에 앉아, 사람들이 도란도란 웃음꽃을 피운다.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파르르 소리를 내는 나뭇잎의 탄성에 감탄을 자아내며 걸음을 옮기던 나에게, 이런 풍경은 방금 내린 따뜻한 차 한 잔과 같다. 천천히 음미하면서 그 향에 취하고 싶어 진다. 사람들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일상의 이야기들을 몰래 엿들으며 이것이야말로 사는 이야기지 하는 공감의 미소를 짓게 된다. 그런데, 세 명의 어여쁜 젊은 청춘들에게 눈이 간다. 금발 머리에 하얀 얼굴, 푸른색 눈의 그녀들은 저 멀리 내다보이는 서울의 풍경에 넋을 놓고 있다. 그러다가 무언가 생각이 난 듯이 주섬주섬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든다.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나는 길쭉한 은빛 껍질을 벗기자, 참깨가 솔솔 뿌려진 도톰하고 먹음직스러운 김밥이다. 이걸 기다렸다는 듯이 '와우'를 외치며 익숙한 듯 나무젓가락으로 김밥 한 알을 집어 든다. 그리고 조그맣고 앙증맞은 입으로 가져가 볼 한쪽이 봉긋해지도록 김밥을 밀어 넣고 씩씩하게 씹는다. 그런 그녀들을 나와 같이 곁눈질을 하던 한 어르신이 빙긋 미소를 짓는다. 아마도 ' 녀석들, 가을 소풍엔 김밥이지. 뭘 좀 아는구나' 하는 의미의 미소일 것이다. 나 또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들이 오물오물 김밥을 맛있게 먹어치우는 모습을 가만히 서서 훔쳐본다. 문득, 초등학교 시절의 소풍 가던 날이 생각났다. 새벽부터 일어나 김밥 소의 재료를 만들고 참기름과 맛소금을 넣고 조물조물 밥을 버무리던 엄마의 모습. 식탁 위에서 김밥을 싸는 엄마를 빤히 쳐다보다가 김밥을 썰 때마다 나오는 김밥의 꼬랑지 부분을 양금 냉큼 집어먹던 나. 차곡차곡 썰어놓은 김밥을 보기 좋게 사각의 쿠킹 포일 도시락에 담고 눌리지 않도록 소풍 가방 속 맨 위에 넣어주며 환하게 웃던 엄마의 얼굴. 어느새 가물가물해진 추억 속 풍경들이 투명한 하늘 위에 펼쳐졌다. 아... 너무 먹고 싶어 진다. 엄마가 싸주던 그 김밥. (아네고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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