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하는 스포츠 중에서 점수 내기가 가장 어려운 경기, 다름 아닌 축구다. 보름달 같은 공하나를 앞에 두고 쉬지 않고 사투를 벌이는 이 경기에 세계인이 열광한다. 축구가 뭐라고, 퇴근 후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광장으로 극장으로 맥줏집으로 사람들을 모여들게 한다. 야구팬인 나 또한 2002년의 월드컵은 잊을 수가 없다. 그 당시 월드컵 승패에 따른 광고들을 실시간으로 내보내야 했는데, 나는 마치 전력을 분석하는 기자처럼 집중해서 경기를 봐야 했다. 극적인 골을 넣는 장면이라던가, 불리한 상황 속에서의 투혼이라던가, 무언가 드라마틱한 소재들을 메모하면서 헤드라인으로 올릴 광고 카피를 구상했다. 선배들은 한 손에 맥주캔을 쥔 채 회의실에서 소리를 지르며 축구 경기를 봤지만, 막 시니어 카피라이터로 승진한 나로서는 경기가 끝나고 바로 써야 할 카피들과 즉각적인 광고주의 피드백에 대한 부담감으로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솔직히, 그때는 그랬다. ' 월드컵에 나간 것도 대단한데 한 번만 이기고 말았으면... 그래서 이런 피 말리는 작업을 그만했으면... ' 그러나 나의 이런 웃픈 바람과 달리 한국 팀은 기적적으로 승리를 이어갔고, 새벽에 겨우 카피를 넘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어김없이 붉은 악마의 행렬이 도로를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택시를 포기하고, 그 길을 저벅저벅 그들과 함께 걷으며 괜스레 들떠 '대한민국'을 외치다가, 선배들과 편의점 맥주를 마시며 아침이 밝아오는 것을 보기도 했다. 그것이 벌써 20년 전의 일이다. 다시 광화문 광장에 함성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축구가 뭐라고, 그날이 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웃을 일이 없는 지금의 막막한 대한민국에, 또 다른 대한민국이 월드컵을 빌어 외치는 것 같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좌절하거나 멈추지 않아야 한다고. " 마음의 상처로 각자의 자리에서 아픔을 참아내며 버티는 우리 모두를 위해, 지구 반대편의 태극전사들이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한 한 골을 날려주길... 그것이 우리 모두에게 잠시나마 환하게 웃을 수 있게 해 주길 기도해 본다. (아네고 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