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인 건가?

by anego emi

“ 음… 음식은 가능한 천천히 드시고요, 짠 음식, 밀가루는 피하시는 게 좋아요. 하루에 잠깐이라도 걷기나 유산소 운동을 하시면 도움이 됩니다. ” 이번에도 변함없이, 친절하게, 담담하게,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약사님은 나에게 혈압약을 건네며 충고를 더한다. 두 달에 한번 같은 날 견우와 직녀처럼 꼬박 만나 어색하게 약을 건네받으며, 나는 연인의 잔소리 같은 이 말을 처음 듣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한다. 그리고 속으로 혼잣말을 한다. ‘ 이 사람, 참 괜찮은 사람…’ 서로 등 돌리고 나 몰라라 하는 것이 당연한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약사 같은 약사님의 충고를 가슴에 꼭 끌어안고 그 온기를 느끼며 머릿속으로는 오늘 일용할 한 끼의 점심을 떠올려본다. 냉장고에 반찬이라고 그냥 먹어도 너무 맛있다고 엄마가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모 호텔의 배추김치와 먹다 남은 물미역이 전부리라. 방금 한 맛있는 밥, 김이 모락모락 나는 햇반이라도 이 반찬이 반가울까. 역시… 라면인 건가? 동그란 우물 같은 냄비에 물이 끓자, 이왕이면 건면으로 가능한 수프는 3분의 2만 그리고 보너스로 단백질 보충을 위한 유기농 계란도 탁 털어 넣고, 보글보글 소리에 맞춰 부풀어 오르는 파마머리 같은 면발을 내려다본다. 그래, 약사님이 수없이 그 말을 반복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네. 그렇게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고도, 또 짠 음식에 밀가루의 끝판왕, 라면인 건가… <아네고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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