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을 믿나?
객관적 데이터, 논리, 원인과 결과 등등 꽤 과학적인 분석과 사고를 지향하는 무리일수록 의외로 귀가 얇다. 소위 광고회사에 다니는 나의 측근들도 예외는 아니다.‘점사모’ 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까지 결성하여 고민이 생기면 용한 곳을 찾아내 사전답사 후 정보를 공유했다. 생각해보면 고민의 답은 항상 내가 쥐고 있었는데 그걸 그 점술인이 집어내는지 못하는지의 각본 없는 심리전이었을 뿐인데 늘 해답없는 답 찾기에 시달리며 살아온 우리에겐 그것이 큰 위안이 되었다. 골치 아픈 일 이야기를 접으면 할 이야기가 없었던 우리들의 술자리에는 용한 점술인의 예언과 충고는 모두의 관심을 끌기엔 충분했고, 줄줄이 이어지는 각자의 경험담은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지나고 나서 보면 그 점쾌 대로 잘된 이도 못된 이도 없다. 그저 각자의 인생을 각자의 방식으로 살았을 뿐이고 그 결과는 아직도 진행형일 뿐이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우리 어머니는 점을 믿지 않으신다. 가끔 내가 점을 본 이야기를 하면, 어쩜 너는 그런 것을 믿고 의지하냐고 따끔한 충고를 하신다. 그렇다가 문뜩 집안일이 자꾸 이상하게 꼬이면 뜬끔없이 나에게 묻는다. “ 그래, 그때 그 점쟁이가 우리 집은 어떻다고 하디? 너 부모복 형제복은 있다고 해? ” 무안해진 엄마는 아무 대답 없이 빙긋이 웃는 나와 눈도 못 마두 치신다. 사람들의 심리가 다 그런 것을. 답답하면 막막하면 무엇이라도 누구라도 잡고 털어놓고 듣고 싶은 것을… 난 이제 더 이상 점을 믿지 않는다. 점을 보기 위해 쓰는 돈이 아깝다. 차라리 그 돈으로 근사한 식사한 끼와 맛있는 와인을 나에게 대접하고 싶다. 찬찬히 내 마음의 소리를 들으면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결정해야 할 것, 내가 몰입해야 할 것들이 들리니까… 알 수 없는 불안은 미래를 향한 불확실성은 무안한 가능성이다. 마음먹기에 따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종로 3가 점집 골목길 앞에서 발걸음이 멈춰질 때도 있다. 그러나 다시 힘차게 발걸음을 돌린다. 누군가의 점 쾌보다 내 마음속의 아직은 작은 점에 불과한 가능성과 확신을 믿으니까… 생각해보면 누가 내 인생을 알고 예언한다는 것... 좀 기분 나쁘지 않은가? 나도 모르는 내 인생을 당신이 안다는 것이...
아네고 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