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이 없어도 아침은 언제나 분주하다. 주렁주렁 짐을 챙겨 들고 급히 집을 나서면 여지없이 학교로 향하는 해맑은 어린이들과 조우하게 된다. 나는 그들과 눈이 마주치면 습관처럼 " 오하이오"라고 인사를 한다. 나의 뜬금없는 인사에 쑥스럽고 부끄러운 얼굴로 "오차이오 고자이 마스"하고 답을 하며 고개를 꾸벅이는 아이의 모습에 '아, 아침은 이렇게 시작되는구나'하는 편안하고 따뜻한 기분을... 모닝 커퍼처럼 천천히 음미하게 된다.
그 덕분인지 난 동네 아이들에게 말을 잘 거는 편이다. 저녁 귀갓길에 친구들이랑 수다를 떠는 아이들에게는 " 오늘 무척 재미있었구나?" 하고 말하며 씩 웃는다. 그리고 때로는 우산을 곱게 접는 어린 꼬마에게는" 어, 언제 비가 왔었니? 난 몰랐는데..."하고 말하며 우산 접는 걸 도와주기도 한다. 난 이 어린이들과 짧은 대화를 나누는 게 마냥 신나고 재미나다. 꾸밈없는 얼굴로 기다렸다는 듯 어처구니없는 답을 쏟아내는 해맑은 아이들을 보며 피식피식 웃게 된다. 어떤 꼬마는 곤충 잡이를 갔었는데, 곤충이 너무 불쌍해서 한 마리도 못 잡았는데, 빈손으로 돌아가는 길에 곤충을 잔뜩 잡은 같은 맨션의 친구를 보니 은근슬쩍 부아가 치밀고 슬퍼졌다던가... 이리저리 흔하디 흔한 이유들로 들뜨고 우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 천사 같은 영혼들에게 환한 미소를 지울 수밖에 없게 된다.
잔뜩 흐린 주말 아침... 갑자기 비가 하늘에 구멍이 난 듯 무섭게 쏟아진다. 오늘은 밖으로 나가기는 틀렸구나 하는 허탈한 마음에 스케치북을 꺼내 이것저것 끄적이며 텔레비전을 켰다. 텔레비전에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라는 테마로 다큐멘터리를 했다. 늘 일본 시사 프로가 그러하듯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익숙한 스토리였지만, 주인공의 마지막 한마디가 남았다.
어른이 된다는 것,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는 것. 그래도 자신의 길을 포기하지 않는 것, 그리고 열심히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을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것이 어른이 되는 것인 것 같다고.
순간 꼭 쉬고 있던 연필을 스르르 놓으며 가슴이 뭉클해졌다. 어른이 되면 절대 나약해서는 안될 것 같은 부담감에서 잠시 해방되는 기분이 들었다. 날마다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하며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하는 요즘의 나에게, 누군가 무심하지만 따뜻하게 내 어깨를 감싸 안아주으며 토닥이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부족함을 절실하게 느끼는 너는 아마도 어른스러운 어른이 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그 가능성을 자신의 길이라는 현실에 꽃 피우는 것은 당신의 노력에 달려있다'라고 조용히 말해주는 것 같았다. 뻔히 다 아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인데, 그저 또 한 번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와 함께 가슴에 작은 파장이 남는다. 그래, 난 약하고 부족하고 그래서 오늘도 웃고 노력하고 주변의 작은 응원과 칭찬에 마냥 행복해하는 어른이니까.
아네고 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