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 토스트
자리를 꽉 매운 아침 햇살이 비치는 기차 안. 창밖을 보거나 책을 읽거나 눈을 감고 있거나 무표정하게 앞을 보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그 위로 이런 자막이 뜬다.‘보이지 않지만 이곳에는 꿈, 도전, 결심, 용기, 후회, 눈물, 그리움 등… 많은 것들이 함께 타고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JR 광고 중 하나다.
아침이란 그런 것이다. 어제의 응어리를 억지로라도 툭툭 털어 내고 새롭게 주어진 오늘을 위해 다시 시작해야만 하는…. 아침에 지하철을 타면 나는 이 광고가 문뜩 떠올라 나도 모르게 주위 사람들을 천천히 둘러보곤 했다. 그리고 이 대단한 아침을 시작하는 모두에게 마음속으로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지금이야 프리랜서가 되어 아침의 지하철과 멀어졌지만 20대의 나는 수많은 아침을 지하철에서 시작했다. 지금도 지하철의 흔들거림에 몸을 맡기고 가만히 눈을 감으면 그때의 내가 흐릿하게 떠오른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그러나 아련하게 그리운. 나이 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젊은 시절로는 돌아가고 싶지만 그때 겪었던 일들은 다시 겪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그저 딱 지금의 상태에서 젊은 나이와 몸을 원할 뿐이다. 나 또한 다르지 않다. 맹목적으로 치기 어리기만 했던 그때의 나로 다시 돌아가 그 힘들었던 과정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 그때의 뽀얀 피부와 꼿꼿했던 척추와 건강한 몸은 욕심나지만…
신입사원 시절 졸린 눈을 비비며 내린 지하철역에서는 언제나 고소한 마가린 냄새가 났다. 빠른 걸음으로 회사로 향하다 나도 모르게 순간 멈춰 서 고민에 빠졌다.‘먹고 갈까? 아님 그냥 갈까?
결국, 나는 햄 치즈 토스트를 주문하고 종이컵의 어묵 국물을 마시다가 누군가와 눈이 딱 마주쳤다. 옆 팀의 대리님이었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갓 구워 낸 토스트를 한입 배어 물자 누군가 내 한쪽 팔을 슬그머니 잡았다. 최근에 승진한 우리 팀 차장님이었다. 그리고 또 갑자기 끼익 하고 자전거가 내 옆에 멈춰 섰다. 토스트를 먹는 나를 발견한 기획팀 부장님이었다. 그분도 재빠르게 토스트를 주문했다. 그러고 보니 어쩌다 우리 회사 사람들로 조그마한 토스트 가게 앞은 꽉 채워졌다. 시간도 마음도 급한 우리는 모두 오물오물 토스트 먹기에 바빴고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어색하게 웃었다. 나는 아무런 대화 없이 토스트를 먹는 그들의 얼굴을 훔쳐봤다.
오늘 그들의 아침은 무엇일까? 최근에 우리 회사로 이직한 대리님의 아침은 새로운 회사에서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한 굳은 결심일지도 모른다. 승진과 함께 팀을 맡게 된 차장님의 아침은 한층 어깨가 무거워진 자신을 위한 용기 인지도 모른다. 기대하던 해외지사 발령에서 누락되고 만 부장님의 아침은 아쉬움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의 아침은 어제를 또 멍청하게 실수투성이로 망친 철없는 신입사원의 후회였다.‘어, 5분 전이다’ 옆 팀 대리님의 목소리였다. 다급해진 우리는 남은 토스트를 입 속으로 밀어 넣고 회사로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나는 프리랜서가 된 후 아주 오랜만에 조금 이른 아침에 지하철을 탔다. 러시 아워를 넘긴 지라 생각보다 지하철은 한산했다. 회사를 떠나자 나의 치열했던 아침은 사라졌다. 나의 아침엔 더 이상 그때처럼 나를 누르던 광고 속의 많은 것들이 대부분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움이나 아쉬움 등과 같은 일상 속 감정의 부스러기들은 변함없이 껌 딱지처럼 붙어 아침을 넘어 밤까지 존재하지만도…
지하철역에서 나와 약속 장소로 가는 데 어디선가 고소한 마가린 냄새가 났다.‘아… 길거리 토스트다.’갑자기 군침이 돌며 먹고 싶어 졌다. 나는 토스트를 주문하고 내 옆에서 말없이 토스트를 먹는 직장인들 가만히 봤다. 순간 내 머릿속에 사진의 한 장면처럼 번뜩하고 그때의 우리가 떠올랐다.
우리들의 짠한 아침이 되어준 길거리 토스트 – 어느새 가물가물해진 젊은 날의 나를 추억하며 조금 더 맛있게 먹을 걸 그랬다.
아네고 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