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21.16:59
가족의 죽음을 묵도하는 것은 47년 평생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것이었다. 내가 잘 배우고 공부해 온 죽음과 슬픔이 이렇게 다른 형태인 줄은 몰랐다. 현실적으로는 다가올 미래를 알겠는데 받아들여지지 않고 채기가 있는 듯 가슴속 어딘가에 '죽음'이라는 글자가 맺혀 있다.
삼일동안 제를 지낸다. 둘째 날, 입관하는 그날은 모두가 너무 힘들어했다. 엄마는 중환자실에서 큰 소리를 내지 못했으므로 삼켜서 작아져버린 슬픔의 소리를 크게 목놓아서 터트렸고 입관을 마친 후 제를 지내며 삐져나온 울음을 그대로 흘리며 절을 했다. 갑자기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느라 엄마의 두 손이 바빴는데 나는 순간 엄마가 실성을 한 줄 알았다. 방금까지 곡을 하며 울던 엄마가 손주들이 절을 하는 모습을 보고 너무 예뻐 피식 소리를 내신 것이다. 울 엄마 큰일 났네. 제를 마친 후 모두 엄마를 불렀다. 괜찮으시냐고.
"방금까지 그렇게 슬펐는데 아이들 3명이 할아버지한테 절을 하는 엉덩이가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운지 나도 모르게 자꾸 웃음이 나와 혼났네"
"에잉? 한두 번 본 것도 아닌데 왜 그랬어"
"그러게 말이다. 고통과 행복을 거의 동시에 맛본 기분이야. 아이들을 보니 또 행복했어"
그래서 다들 죽음은 삶의 일부분이고 삶과 죽음은 다르지 않다는 건가. 울면서 태어났는데 울지 않고 하늘로 가는 것은 행복인가. 고통과 행복은 한 공간에 존재하는데 내가 보는 방향에 따라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는 건가. 일상을 살면서 문득 생각나겠지. 나중에 웃으며 이야기할 꺼리다.
이렇게 가실걸 중환자실도 들어가지 말고 기도삽관 같은 것도 하지 말걸 그랬나. 안 하고 가셨으면 또 후회하려나. 중환자실에서 고통 속에서 일그러진 아빠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날의 선택을 땅을 치고 통곡할 노릇이었다. 분명 괜찮아질 수도 있었던 거 아닐까. 아빠는 젊고 지병도 없으시고 삶의 의지도 강하신 분이니.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 사일 장을 치르고 집에 돌아와 보니 거의 일주일이 가버렸다. 밥을 챙겨 먹고 미루어둔 대청소를 하고 장례 후 남겨진 물품을 챙기고 앉아 사후관리, 죽음 후 해야 할 일들에 대하여 검색을 해보고 있다. 요양원에 계신 분들께 감사하다고 그림책을 모아 드리기로 하였고 새해 앞두고 부고를 알리는 게 난처해서 제대로 보내지 못한 부고소식을 다시 알리거나 감사안부를 전했다. 내일은 아빠의 삼우제를 위해 다시 추모공원에 간다. '탈상'이라고 하지. 그렇지만 그날의 기온, 그날의 바람, 그날의 슬픔은 일상에서 문득문득 삐져나올 것이다. 다시 아빠를 보러 가는 길 미처 준비하지 못한 가족사진 한 장 넣어드려야겠다. 가시는 길 외롭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