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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시로바로앉는여자 Dec 08. 2019

남겨진 사람들

김미희< 문 뒤에서 울고 있는 나에게> 를 읽고


하얀 백지위에 두 손이 꿈쩍도 않는다. 

보통은 글을 써야지 라고 맘을 먹으면 생각나는 단어들이 머리를 스치는데 오늘은 매우 멍하다. 울고 있는 작가가 가까이에 산다면 얼굴 철판 한번 깔고 연락해서 술 한잔사주며 꼭 안아주고 싶다. 얼마나 힘들었냐고...안쓰러운 시간들을 어떤식으로도 보상받지 못하겠지만 지금 새로운 ‘일’을 이야기하는 작가가 참으로 대견스러워서 마구 지지해주고 싶다.     

상실, 그리고 애도의 방법으로 ‘글’을 선택한 것 같다. 남편과의 좋은 시간, 그리고 아픔들을 복기하면서 작가는 천천히 애도의 시간을 갖는다. 깊은 ‘구덩이’ 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책장을 빨리 넘겼는데 다행히 수용과 극복의 단계로 넘어온 것 같았다.

작가에게 내일을 기대하게 하는 도전과 희망이 있어 책을 편안히 덮을 수 있었다.     


<문 뒤에서 울고 있는 나에게>를 읽고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격주마다 만나는 그림책모임 회원인데 일찍 결혼도 했거니와 아직 너무 젊은데 남편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매우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2년 남짓 지났는데 현재 진행형이라고 하였다.  

2주마다 그녀를 보는데 어느 샌가 나는 그녀의 표정과 입꼬리를 확인하게 된다. ‘죽음’과 ‘상실’의 분위기가 감지되면 애써 이야기의 화제를 다른 것으로 바꿔놓는다. 그녀는 딱 한번 모임에 빠졌고 일년동안 성실하게 나와서 조금은 과장된 목소리로 그림책 이야기를 하고 늘 제일 먼저 나갔다. 얼마 전, 키티 크라우더의 ‘나는 나의 왕이다’를 함께 읽고 눈물을 흘리며 환한 미소로 그녀가 이야기했다. “저에게 자세히 묻지 않아줘서 고마워요. 사실 잘 견뎌왔다고 생각했는데 얼마전에 제가 극단적인 생각을 하고 일주일동안 문밖에 나가지도 않았어요. 아이가 둘이나 있는데...‘나는 나의 왕이다’처럼 제 안의 여러 가지 모습들이 치열하고 처절하게 싸운 후 저는 이겨내고 나왔네요. 여기 나온거 보니.. 그래도 이 모임이 저의 유일한 안식처 같아요 ” 

우리 모두 그녀가 이야기해주길 일년 동안 기다려왔다. 모두 환하게 울고 웃고 진심으로 지지해주었다. 키티 크라우더가 큰일했다. 그녀가 자기 이야기를 꺼내다니. 

나는 일주일에 한번 안부를 전한다. 기분 안 좋은날 불러요 커피한잔 사줄게요. 아이가 어려도 일은 해야한다고 생각나는 알바를 권유하기도 한다. 나는 그녀가 남겨진 아이 둘을 잘 키우고 사랑도 하길 진심으로 바라는 사람이 되었다.     

 감히 ‘죽음’을 이야기하기에 내가 성숙한 사람이 되지 못하여 항상 조심하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입 밖으로 내지 못할 나의 금지어다. 작가의 목차를 보니 자꾸 목이 메여온다. 소중한 사람을 잃는다는 것, 무엇으로 표현이 되겠나. 작가의 솔직함에 자꾸 고개가 숙여진다. 이토록 솔직하면 너무 내가 까발린 느낌이 아닐까. 작가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임에 틀림이없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닥까지 보인 솔직함, 거대한 상실감을 잘게 부수는 법을 작가에게서 배우고 싶다.     


남겨진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지는가는 영화<생일>에서도 나온다. 죽은 아이의 생일에 모여 음식을 나누고 웃는게 이해가 안 되는 엄마. 아직 상실의 구덩이에서 나오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수용하고 잘 추억하는것만이 세상을 살아내는 남겨진 사람들의 몫인 것이다.


누구의 불행을 거울삼아 나의 삶에 안도하는 비열한 사람이고 싶지는 않은데 <문 뒤에서 울고 있는 나에게>는 나의 고민과 걱정들이 한순간에 먼지처럼 가벼운것들임을 확인하게  해주었다.      


“하루라도 행복해야 한다. 인생을 하나의 덩어리로 보지 말고 조각조각으로 나누면 팔자가나빠도 행복한 순간이 많다” 184p     


“한 손은 아이를 잡고 한손은 그이를 잡고 있었다. 한 손은 탄생에 가깝고 한 손은 죽음에 가깝다. 어쩌다 나는 이 인연 사이에 들어와 있을까? 감상적인 생각은 현실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신을 차리고 그 둘을 힘껏 잡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 었다” 121p     


“한번에 받아들이기에 너무 큰 고통은 처음에는 다른 사소한 감정으로 대체된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진짜 고통이 된다. 이별의 슬품도 그렇다. 처음에 실감하지 못했던 이별이 한참 뒤에야 현실이 되어 나를 울게한다” 5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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