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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시로바로앉는여자 Dec 25. 2019

버스 옆자리에 앉은 사람의 낯빛을 살피게 되다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_ 은유 작가

                                     

르포형 글을 좋아한다

내 생활 속에 있지만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을 깨우쳐 주는 글을 좋아한다

서사가 쟁쟁한 스토리형 소설도 흥미롭지 만 낮은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는 실천하는 삶의 이야기를 쓰는 은유 작가를 좋아한다. 어느 청소년 노동자의 죽음에 관한 인터뷰들을 모아 책을 쓰셨다 하여 작가의 신간이 궁금했다

이런 형식은 어떤 글이 되는 걸까.

은유 작가로 시작된 알지 못하는 아이를 향한 나의 죄책감이 읽는 내내 나를 힘들게 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이들은 죽어서 법에 이름을 새겼다

  민식이법 용균이 법 세림이 법...    

  

최근 법이 된 많은 아이들 중 '용균이'에 관한 이야기며 살아갈 기회를 상실한 아이들의 이야기다. 편견이 점철되어 있고 배려가 적은 사회에서 아이들이 소모되어 가는 이야기다.

이 책을 읽으며 울고 있는 내게 남편이 말한다.  "힘들면 안 봐도 되는 일인데 왜  그러고 있느냐" 다른 때 같았으면 이 남자를 교화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꼬리를 물고 늘어졌을 텐데 책의 영향으로 감정이 올라와 싸움 대신 오늘 하루 마음의 문 잠금을 선택했다.

남편은 시끄러운 문제와 참혹한 사고 뉴스에 종종 귀를 닫으려 한다. 남편뿐 아니라 너무 슬퍼 기사도 읽고 싶지 않다는 엄마들을 자주 만난다. 귀를 닫고 눈을 감으면 잠시 편하겠지. 그러나 언제가 우리 이웃의 이야기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올해 내가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건진 단 하나의 화두는 '직면하기'이다. 모든 고통은 직면해야 해결이 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남의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직면하기로 했다. 고통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를 학습시키는 것이 지금의 부모가 해야 할 일들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우리가 부모가 된 이상은 절대 외면하면 안 되는 일들이다.   

  

  "기쁨을 나누는 일은 배우지 않아도 사는데 무리가 없지만 슬픔을 나누는 일은 반드시 배워야 만하는 사람의 일 “ 20p  

   

친정 엄마가 폐질환이 심해서 공기 좋은 시골로 가고 싶다고 하셨다. 엄마 어릴 적 뛰어놀던 곳이 대부도고 외삼촌 두 분이 대부도에 터를 잡으셔서 3년 전에 대구에서 대부도로 귀어를 하신 셈이다. 아빠 고향이 대구이고 청장년을 대구에서 보내신 부모님이라 이제는 엄마 고향에서 살자. 합의를 이루었다. 세 살배기 아이를 안고 동생과 내가 장거리를 오가며 긴 기간 동안 골라 선택한 대부도의 마당 예쁜 집.

제일 먼저 내가 한 일은 동사무소 일을 본 것이었는데 그곳에서 가슴이 내려앉았다

지역 유물로 보관되어 있는 대부도 면사무소에 전시되어 있는 배 사진과 글.

1930년대에 대부도에서 배를 타고 육지로 이동하는 아주 큰 배가 뒤집어진 사건이 있었다

나의 기억이 희미하지만 유독 여자들과 아이들이 가득 탄 배였고 마을 주민의 3분의 1이 죽을 만큼 사망자가 많았는데 친일파였던 대부도 면장이 이를 덮어버리는 조건으로 일제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았다는 것이다. 몇 년 동안 곡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 대부도도 안산시 단원 구지...

대부도는 행정구역상 안산시 단원구다.

90여 년 전에도, 아이들이 바다에서 숨을 거두고도 남아있는 자들이 슬픔을 나누고 위로하기는커녕 덮어버리고 이용한 일이 있었구나.

모습을 같이한 사건이 떠오르면서 한동안 대부도로 들어가는 바닷길이 매우 슬펐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가만히 있으라.'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말을 잘 들으라 하여 그렇게 했는데. 결국 어른들은 아이들을 구하지 못했다. 사실, 청소년 노동인권까지는 생각지 못하며 살았다. 우리 아이를 사회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울타리 치기에 급급했다.

조심스럽지만 우리 아이가 처할 환경을 예상해보았다. 소름이 돋았다.

우리 첫째 아이는 아직 3학년이지만 특별히 잘하거나 좋아하는 게 있어 보이진 않는다. 물론 맘속 깊은 곳에서 우리 첫째가 어떤 위기에서도 단단히 버틸 것 같은 믿음이 있긴 하다. 

아이는 대단한 미식가다. 쌀이 어떤 브랜드로 바뀐 것까지 맞힐 정도다. 맛을 아주 잘 알아서 엄마가 곤혹스러운 때가 많다. 요리하기가 매일의 숙제인 나에게 정말 큰 복병이 첫째 아이다. 그래서 아이가 요리를 공부하고 싶다고 하면 밀어줄 작정이다. 그러면 고등학교를 관련과가 있는 곳을 갈 수도 있겠다. 

실습을 나가겠지. 

꼼꼼하지 못하고 일머리 없는 아이가 실수의 반복으로 여기저기서 터지고 오겠지. 

그 아이는 가드를 올리고 버티거나 혹은 쉽게 낙담하여 세상에 벽을 칠 수도 있겠지.

18살에 홀로 맞이하는 세상이 아이를 너덜너덜하게 만들기 전 나는 무얼 할 수 있을까.



  자기 일에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자기를 돌보고 지키는 사람이 되는 게 더 중요하다 21p  

   

엄마 아빠가 책임감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기에 배우지 않아도 장착되어 있을 그것을 강조하지는 말아야겠다. 

모든 부당함과 억울함 앞에서 너를 지킬 수 있는 어른으로 크길 바란다

남의 아픔에 귀를 열고 연대할 줄 아는 어른으로 크길 바란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하라는 대로 해! 시키는 대로 해!" 그래서 생긴 엄청난 재앙들을 보면서 "하기 싫음 안 해도 돼,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 아이들한테 이런 이야기해 주려면 뼈 속부터 배짱이 촘촘히 박혀야만 가능할까 말까 한 이야기다. 대한민국은 그러한 곳이다. 그래서 부모도 공부가 필요하다. 


나는 오늘도 목동 전학, 목동 학원을 고민하는 동네 반 친구 엄마에게 은유 작가의 책을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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