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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시로바로앉는여자 Apr 20. 2020

하소연의 일기

오랜만에 새벽기상 기념

일상이 멈추었다고 내 인생도 멈추지는 않았을 텐데 심각한 무력증에 빠져 생산적인 무엇을 해야겠다고 혼이 나간 며칠이었다. 그러다가 엄마의 입원으로 정신을 한번 다잡고 하지 않고 있던 것 중 하나인 글쓰기를 다시 시작해본다. 엄마의 병명은 모르겠고 아무튼 대학병원을 몇 군데 가고 검사란 검사는 모조리 하고 나왔다. 증상이 심각한데 손을 쓸 수 없는 게 답답하다. 엄마는 그냥 대부도 집으로 가는 게 낫겠다며 어제 퇴원하자마자 부랴부랴 집으로 가셨다.

이대로 엄마를 보내도 되는 것일까.

눕기만 하면 나오는 경련 증세는 심적인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약에 의존한 오랜 세월과 예민한 성격에 아빠가 일을 그만두고 나서부터 함께한 시간들이 불을 지펴 우울감이 경련으로 신체화되어 나온 거라고 아무도 모르게 혼자 판단했다. 아빠가 70세까지 일을 해서 늘 밤에만 보시다가 하루 종일 같이 있게 된 지 4년이 되었다.

엄마는 아빠를 만나 인생이 행복하지 않게 되었다는 생각을 가지고 평생을 사신 분이다. 나는 그런 말을 하실 때마다  "그것도 인연인 거야, 좋은  인연만 있겠어?? 남편 복 없어도 자식복 있다고 생각하면 편하지" 하며 엄마의 신세한탄을 무기력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겨울부터 나는 이렇게 종종거렸다. 브런치 작가가 되어 그림책과 나의 일상으로 글을 써보겠노라고. 그리고 각종 공모전에 글을 내보기도 하다가 우르르 떨어지는 것을 경험하고 '읽기'의 시간으로 되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다시 '읽기의 시간'. 코로나로 오히려 읽는 시간이 많아져 이 부분은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과 집콕한 지 4개월이 되어 간다. 학원을 보내지 않고 공동육아를 해온 적도 있어서 같이 있는 시간들을 알차게 보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무너졌다. 아이는 생각보다 커있었고 엄마의 말을 듣지 않으며 학원이 대신해 준 부분도 컸다. 그리고 친구관계가 무너져 가고 있는 것을 확인한 순간 학교라는 공동체가 반드시 필요한 거구나. 나는 바짝 애가 타고 있다. 아이가 친구와 만나지 않고 운동도 하지 않으니 게임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게 되었고 살이 찌면서 외모에 부쩍 신경을 쓰게 되었다. 무려 중1부터 시작한다는 화장품 쇼핑도 나를 들들 볶아 다니기 시작했다. 이래나 되나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2호는 어떻고. 안 그래도 늦은 아이 유치원에서 배우는 게 많다고 생각했는데 집에만 있으니 나와 아이 사이에 간극을 확인은 시간이 계속되었다

일을 한다고 둘째 낳고는 이리저리 돌아다녔고 딸만 애지중지 키우던 나는 아들 대하는 방법을 모르고 있더라. 아들과의 시간은 갈 곳을 잃어 방황하는 시간이었다. 주 양육자 둘 중에 한 명이 벌지 않고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다면 큰 행운이다. 지금 맞벌이와 주양육자가 한 명뿐인 가정은 아이들이 도처에 방치되고 있음을 알고 있어야 한다. 지금 가정의 형태는 너무나 다양하다.


이런 와중에 우리 가정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나는 책방을 이사했고 남편이 하는 작은 사업의 직원 2명을 무급휴가를 보내고 직접 새벽에 나가 일을 하기 시작했다. 내일모레면 50인 남편이 새벽에 장사를 직접 한다는 것은 생활경제에 큰 위기가 온 것임을 시사한다. 밤늦게까지 일하는 남편은 잠이 절대적으로 부족한데 3개월만 버텨보겠다고 했다. 우리 사업은 여름 되면 또 버틸만한 직종이니까. 온라인몰도 오픈하고 공장도 돌리고 장사도 직접 하는 남편은 슈퍼맨이라고 생각하는데 그의 머리카락 위에 내려앉은 하얀 눈이 유난하게 짙어지는 것을 보니 나도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다. 생산적인 일에는 여러 형태가 있고 아이와 함께 하는 이 시간 역시 누군가는 대신해주어야 하는 일이라 분명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생산의 형태라 생각된다. 그렇지만 난 책방을 운영하니까.... 책을 팔아 이윤을 남겨 가계경제에 보탬이 되는 생산을 해야 한다. 돈으로 환산되는 노동을 하겠노라 올해의 목표였는데 무색하다 무색해.


5월 말에는 많은 것이 풀리리라. 세계 공제가 공의 초기 단계로 접어들었다 해도 우리나라 단위 경제는 또 지지고 볶고 잘 풀어갈 수 있으니... 희망을 가지고 기다려보기로 한다.


오늘의 글쓰기는 그간 있었던 하소연의 일부분을 의식의 흐름대로 끄적이다 아이들 깨면서 급마무리하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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