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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시로바로앉는여자 Apr 13. 2020

대한민국이 불편해도 아무튼 떡볶이

<아무튼, 떡볶이>를 읽고.

어울리지 않는 표지 조합이다. 어찌하다 보니 요번 주에 열심히 읽은 책이 이러한 조합이다.

떡볶이와 통일, 떡볶이와 정치라니. 떡볶이 먹다 얹힐 만큼 불편한 투샷인데  결과적으로 참으로 좋았다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는 내가 꼭 기억하고 싶어서 필기한 것을 기본으로 정리를 해볼까 한다.

김누리 교수를 국회로 보내고 싶다. 진정!

선거 앞두고 오가는 저질스런 막말은 언제나 나오는 단골 메뉴. 예전엔 넘어갔지만 지금은 응징해야 한다.

제발들 뽑지 마세요 저질 정치인.

<아무튼, 서재>를 제일 먼저 읽고 깜짝 놀라서 더 이상 못 읽겠다 싶었는데 <아무튼, 하루키>를 읽고  그래 이맛이지. 이 정도 글맛이라면 아무튼 시리즈를 계속 갈 수 있겠다 싶었다  



<아무튼, 떡볶이> 요조


<아무튼, 떡볶이> 표지가 예전 내가 백만 장이나 그렸던 종이인형들 중 하나를 픽(pick)한 거 같아서 친근했는데 글을 읽고 나니 느낌이 표지 같았다. '표지같은 느낌'을 다시 설명하자면 '추억'이라는 이름의 음식 떡뽁이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기억과 에피소드의 음식이며 그 기억을 더듬어가면 어느샌가 아이처럼 순해지기까지하는, 그래서 정겹다는 뜻이다.

아무튼, 떡볶이였다.

산해진미가 넘쳐흘려도, 비건이 되어도,한 가게가 클레임 한 타이밍과 맞아떨어져 폐업을 했어도 구구절절 사연이 많아도 아무튼 떡볶이가 좋다 라는 명쾌한 덕후질에 대한 에세이다.


떡볶이라고 하면 나도 빠지지 않는다만 무엇이든 덕후 근처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는 나라서 어느 분야든 글을 쓸 재료까지는 충분히 모으지 못한 채 늘 서성이다 오는 것 같다. 많은 세월을 그리 산 듯하다.

충분히 빠질 만큼 알고 싶거나 소유하거나 지키고 싶거나 시간을 길고 길게 투자할 만큼 좋은 게 없었다고나 할까.

그럼에도 음식에선 떡볶이만큼은 애정스럽고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

나에게 떡볶이란 사춘기 시절 a급 절친 그룹에 속하나 안 하나를 판가름 지었던 친구 초대 음식. 그리고 본의 아니게 분식집을 잠깐 하던 울 엄마의 떡볶이 솜씨에 대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음식이다.


요조가 글을 잘 쓰시네.

요조에 대해서 무지했구나.  사랑에 마지않던 '허밍어반스테레오' 싱어였다니.

청순하고 여리디 여린 목소리로 단음인 듯 랩인 듯 읊조리는 소리로 중독성 있게 반복되는 그 음악의 싱어였다.

인디음악 좋아했던 시절의 왕언니였다. 요조가 책방을 한다고만 알았지 이런 글풍으로 쓸 줄은 몰랐다.

청순가련 인디 언니의 옆집 언니만큼이나 만만하고 솔직하나 입담이 신선했다.

그녀의 책이

떡볶이에 대한 추억과 사연과 취향이 적절하게 범벅된 '김떡순' 같았다.


아무튼 시리즈의 손안에 착 감기는 핸디형에 취향이 베어 나오는 한 가지 좋아 죽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골라먹는 재미가 있는  기획형 책이라 중독성도 있다.  

이쯤 되면 모닥치기가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이념이 다르기 때문이다. 똑같이 우르르 섞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도 모닥치기의 이념이 '무질서'에 있다고 한다면 '브라질 떡볶이'의 모둠 떡볶이 접시 위에는 '질서 '라는 이념이 흐르고 있다(79p)
대체로 모든 게 그렇다.
뭐가 되었든 그다지 훌륭하지 않더라도 어쩌다 존재하게 되었으면 가능한 뭐가 되었든 그다지 훌륭하지 않더라도 어쩌다 존재하게 되었으면 가능한 그것은 내가 나를 너무 사랑해서라거나 내가 이 세상에 쓸모 있는 존재라고 여겨져서가 아니라
어쨌거나 백 기녀와 신중택의 젊은 날 뜨거운 밤을 통해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내가 존재하게 되어 버렸으니 기왕 이렇게 된 거 오래오래 살아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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