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란 이름으로

2021년 나와의 약속이란 주제로 글을 써야 해서...

다짐을 이야기하기 전에 올해를 잘 마무리해야 할 텐데 한참을 백지위에 머뭇거린다.

12월의 한가운데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오후다.

달력을 한참 들여다본다. 정녕 2020년은 이제 사라질 해가 되는 것일까.

역사에 이렇게 남을까?

" 인류 역사상 두 번째 거대한 팬더믹으로 의학기술이 발달하고 많은 것을 가진 선진국들도 바이러스의 소용돌이 앞에서 무능했고 현대인의 모든 것이 변해갔다"


되돌이표가 되어 같은 자리에 머무는 착각이 든다. 작년 이맘때가 머릿속에 생생하다.

미로 속에서 정신 못 차리고 헤매다 막다른 길에서 다시 돌아 나올 동기와 기운을 상실은 사람처럼. 도무지 현실감이 없는 지금이다.

나는 두렵다.

내일도 지금처럼, 모레도 오늘처럼 이런 느낌이면 어쩌지. 계획은 세울 수도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갖자는 말을 할 수가 없다.


남편이 말했다.

12월부터 적어도 6개월 동안은 모아놓은 돈을 까먹으며 지낼 거라고.

우리는 작은 체인사업을 한다. 모두 작은 점포들인데 한때 잘 나가던 우리는 그 어떤 투자도 하지 않고 고스란히 꾸역꾸역 저금을 해왔다. 그 돈으로 사업이 내리막에 들어서면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고 모아둔 돈이다. 그래야 작은 점포의 점주들한테도 손해가 되지 않는다. 그들과 상생하는 사업체이다.

손대지 않았던 목돈을 내년부터 적극적으로 그리고 전략적으로 까먹으며 일을 해야 한다고.

나야 가족 구성원 중 '쓰는 역할'을 담당이지만 남편은 '버는 역할'이다. 우리는 부양가족이 꽤 많기도 하여 어떻게든 벌어야 굴러가는 살림살이다. 우리가 덜 써서 해결되는 구조가 아닌 것이다.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지 남편의 충혈된 눈빛이 말해준다. 몇 달째 불면증에 시달리고 밥맛을 잃었는지 자주 굶었다.


첫 달에는 적금을 깰 것이고 두 번째 달에는 직원을 줄일 것 같다. 세 번째 달에는 있는 돈을 끌어모아 봄 마케팅을 할 것이고 그래도 안되면 대출을 받겠지.

나는 작은 책방 하나 굴리는데 신경 쓸게 이리 많은데 남편은 공장에, 사무실에, 직영점에 법인까지 관리한다. 작년까지 남편은 기업 하기 힘든 정권이라며 정부를 욕했지만 올해는 다르다.

본인의 짐을 누구에게 떠넘기며 그것을 미끼로 마음 놓고 욕을 해댈 수가 없다. 그의 짐이 코로나와 함께 산이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저녁밥을 하며 생각에 잠겼다.


내년이 흰 눈과 함께 시작되면 나는 굳게 마음을 먹으려고 한다.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이해하는 사람으로 남겠다고.

월급을 가져오지 못해도

아빠로서 아이들과 밝은 얼굴로 시간을 보내주지 못해도

새벽부터 나가고 밤에 들어와 나의 가사노동을 못 알아준다 해도

남편을 이해하는 여자로 남겠다고.


여전히 나는 아이들을 씻기며 짜증 낼 테고,

주말마다 송장처럼 누워 밥을 외치는 그에게 이불을 날라 차겠지만

그 어떤 의문도 품지 않고 아침이면 나가고 저녁이면 들어오는 남편을 일단은 비난하지 않는 그런 여자가 되어보겠다. 이것은 나에게도 큰 다짐이며 지켜질지 의문인 약속이다. 그러나 노력해볼 것이다. 코로나 앞에서 모두가 무너지고 찢기고 해체되어가는데 그깟 잔소리, 한낱 잔소리...



이전 06화나의 작은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