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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시로바로앉는여자 Mar 01. 2021

내 자리

김소희 만화 <자리>

성인이 되고 독립을 하면서 5번을 이사했다. 

고시원에서 반지하, 옥탑방에서, 하우스메이트 거주까지 실로 다양한 형태의 주거로 살아왔다. 잦은 이사가 부끄러운 일은 아니었다. 성인이 되면 자신의 의식주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있던 생각이었고 그렇다면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방법으로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어딜 가도 잘 살 수 있다는 밑바닥 근성은 나를 크게 낙담시키는 법이 없다. 결혼한 지금도 이 근성은 매우 유용하다.  남편이 사업에 실패해도 어떻게든 살아 낼 수 있다고 뻥을 치고 다닌다. 그러니 당신은 넉넉하게 생각하라고. (사실 코로나로 힘든 남편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다. 달리 해줄 말이 없었다. 너도 나도 힘드니까)


최저임금을 받았던 적엔 역시나 고시원에서 살았다. 월급의 반을 고시원에 바치고 나는 허울 좋게 영화일을 하고 있었으니 이 시간을 즐기겠다고 호언장담했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이 시간을 딱 3년만 견뎌보리라.

집에서는 잠만 잤다. 덜컥 옆방에서 일면식 없는 남자가 문 열고 들어올까 봐 야근을 맡아놓고 최대한 늦게 집으로 들어갔다. 말로만 듣던 생활을 해보는구나 싶어 조심하느라 집에 와도 늘 피곤했다. 


영화사를 나오면서 반지하로 이사 갔다. 아빠가 처음으로 우리 집에 오신 날 , 대구에서 왔는데 한숨 주무시고 가라는 말도 못 했다. 원래부터 말이 없던 아빠는 그렇게 주거만 확인하고 바로  대구로 내려가셨다. 그다음 날 엄마가 울면서 전화가 왔다. 그러게 사는 줄 몰랐다고. 

"엄마 고시원보다 3배가 넓은 곳이야. 나는 지금 행복하다고."

CJ와 인수 합병된 회사가 시스템이 바뀌니 복지와 월급체계도 바뀌었다. 명함에 빨갛고 파란 CJ로고가 박히니 빛을 보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야말로 한여름 홍수가 났던 날 개고생을 해본 터라 월급이 오르니 바로 주거의 불편함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어디에도 나의 자리는 없었다.


빛은 보아야 한다는 강박에 덜컥 옥탑방을 잡고는 고민했다. 한여름 직사광선에 불타 죽으면 어쩌지. 20대의 희로애락을 만끽하며 옥탑방 두부살은 꿈을 꾸었다. 이제는 돈을 모을 때가 되었다는 생각과 언젠가 할 결혼에 대비하는 삶이 또 성인의 책임 아닌가.

연봉을 높여 대기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신사동 가로수길에 하우스메이트와 빌라로 이사 갔다. 당시의 가로수길은 작고 개성 있는 샵들이 드문드문 있던 곳이고 빌라가 즐비한 주거지가 주였다. 지금과는 다른 코지(cosy)하고 정감 있는 동네였다. 출퇴근을 하며 여긴 시세가 얼마나 할까 궁금해도 했지만 셈이 밝았다면 진작 부동산에 들어갔어야 했다. 가로수길의 공기만 마셨을 뿐 언감생심 매매의 생각은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그 후, 결혼하면서도 무려 4번의 이사를 했는데 내 자리를 찾기 위한 고군분투가 원고지 100장을

채울 만큼 구구절절하다. 결혼 이후의 이사 이야기는 2탄을 써야 할 지경이다. 

김소희 만화 <자리>를 읽고 여기까지 왔다. 청년들이 겪어야 할 내 자리 찾기의 이야기가 단지 만화의 소재가 아니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노른자 책방의 공간 또한  결혼 이후 이름을 걸고 내 자리를 지켜내기 위한 몸 부리의 발로다. 

요즘 20대들이 매우 걱정된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의 모습이기도 하기에. 취업은 고사하고 대학 졸업과 동시에 몇천의 학자금 대출을 등에 지고 사회에 나온 친구들이 많다. 일찍 취업전선에 들어간 젊은이들은 제대로 된 일자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기본적인 안전 위협을 받으며 고시원 주거를 벗어나기 힘들다. <자리>를 읽고 나면 우울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지만 감정에서 머물지만은 않으려 한다. 해결방법을 모색해야 할 사회의 한 주축 세대이기에 어깨가 무겁다.


순이와 송이의 자리 찾기 여정이 내 과거, 그리고 청년들의 현재이며 미래 우리 아이의 모습이기도 하다.

아... 바뀔 거라는 생각은 꿈일 뿐인지. 주거 문제는 지금의 부동산 문제를 보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김소희 고정순 두 작가님의 면역질환은 열악한 주거 자세히 말하면 그때 그 화장실과 습기 가득한 목욕탕 작업실 때문이었나 걱정이 된다. 

고 작가님은 가냘픈 어깨에 맞닿은 순간 다짐했다. 작가님 지켜드려야겠구먼. 작가님 작품 많이 볼 수 있게 자주 노른자 강제 방문을 요청해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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