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꽃같이 돌아오면 좋겠다>를 읽고
일주일이 지났는데 엄마가 조용하시다. 카톡도 대충 보시는 것 같고 대화도 원활히 이어지지도 않고 답답해서 전화를 하면 목소리도 가라앉아 있다. 아무 일도 없다는데 이럴 때마다 늘 신경이 쓰인다. 너무 아무 일도 없어서 그런 걸까. 부랴부랴 주말 친정행을 잡는다. 동생이 운전을 잘하니까 뚜벅이인 나는 항상 동생에게 이동에 관해서는 의지를 한다. 스트레스가 많아져서 최근에 약을 드시기 시작했는데 자주 메시지로 기분이 어떤지 확인을 한다. 낮부터 약을 먹고 늦은 밤까지 주무시겠지. 아빠의 잠자리를 한번 확인하고는 티브이를 좀 보시고 다시 잠을 청하시겠지.
시골로 가서 지병은 좋아지셨는데 사람을 못 만나서 활력은 없으신 거 같고 아빠와 붙어 있기 시작한 2년 전부터 우울증이 더 심해지신 것 같고. 내가 어찌할 방도는 없지만 문득 화가 나기도 한다. 이렇게 엄마의 감정이 전화기 넘어 느껴지면 그날부터 불안감이 내 마음의 일부를 장악한다. 지금 나의 머릿속엔 엄마 지분 30% 딸의 지분 30% 책방 지분 30% 가 뒤엉켜있다. 나머지는 그 자리에 있는 정도로만 확인할 뿐.
오늘은 잘해왔다고 생각한 큰딸의 담임이 전화를 하셨다. 온라인 수업 중간중간에 테스트를 하였는데 가윤이의 성적이 좋지 않다고. 네네 외마디 하고 끊었는데 기분이 영 바닥이다. 4학년의 중간 깜짝 온라인 퀴즈의 성적이 그리 중요했던가. 이것 또한 나 때문인가. 나는 온라인 수업이 진행됨을 체크하는 것 정도로 생각했는데 중요한 시험들이었구나. 아무튼 자식새끼 공부량을 늘려달라는 선생의 전화에 기운이 뻗칠리는 없었다.
잠이 오질 않아 책을 폈다.
브런치를 시작하고 나의 첫 번째 독자이신 고재욱 님이 책을 내셨다. 열심히 글을 쓰지는 않지만 독자가 좀처럼 늘지 않는다. 아무튼 처음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니까. 처음 독자님이 궁금해서 지난 글을 모두 읽어 보았다.
내가 기획자라도 이분의 서사가 매우 탐났을 터. 이분은 곧 작가가 되시겠다 싶었다.
단번에 읽었고 새벽이 되어 마지막 장을 덮었다. 울다가 웃다가 마지막엔 미소로 이야기가 끝났다.
글쓰기 공부를 하는 모임에서 선생님이,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남의 이야기를 할 때의 책임감과 숙고함이 꼭 필요하다고 하였는데 고재욱 작가의 책은 그 숙고함이 글에서 보였다. 치매노인들을 돌보고 살피고 하늘로 보내는 일을 하면서 충분히 책임과 최선을 다하였으며 글로 옮길 때에도 진심을 다해 어르신의 안녕을 살폈을 것이다.
그 어떤 종교보다 진정성 있었고
저명하다는 심리상담가보다
수백만 원짜리 강의보다
치유가 되었다.
우울하고 속상했던 마음이 피식피식 바람 빠지듯 빠져나와 새벽이 되어서는 평정심이 생겼다.
참으로 감사한 책이다.
고재욱 작가의 이야기에 한참 귀 기울였더니 딸내미가 밉지 않았다. 엄마가 걱정되지 않았다.
내일은 더욱 친절해져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