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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시로바로앉는여자 Mar 19. 2021

내 안의 나

<이상하고자유로운할머니가되고싶어><내안의새는원하는곳으로날아간다>

그림책을 얼마나 소화시켜야 일상에서 건져 올릴 수 있을까? 

은유 작가의 <다가오는 말들>을 보고 독서에세이라고 인지하지 않고 읽었던 경험이 있다. 그만큼 삶과 말과 글이 잘 어우러진 글이란 뜻이겠지. <다가오는 말들> 은 일상에서 온몸으로 체득하여 건져 올린 말을 독서를 통해 다시 만난 글이다.  적재적소에 건강한 단어를 쓰고 딱 맞는 문장을 만들어내는 은유 작가의 글을 좋아한다. 

그리고 작고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의 시선을 맞추어 우리 모두에게 잊지 않기를 당부하는  철학도 좋다. 

무루님의 그림책 에세이도 삶에서 건져 올린 그림책 이야기라 두 번째 읽는 중이다. 대놓고 이건 이런 책이야 증명하는 글은 나도 지양하고 싶다. 

나는 책방에 들여놓은 책을 최대한 열심히 읽으려고 한다. 보통은 들여놓은 어른의 책이라도 조심히 한번 읽어보고  정독을 하고 싶으면 도서관을 이용한다. 그러고도 갖고 싶은 욕구가 물밀듯이 밀려오면 서재에 차곡차곡 쟁인다.

이 두 책은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주 불쑥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표지의 초록이 맘에 들어왔을까 .

나란히 두 책을 보고 또 보았다. 어쩐지 닮았다고 생각이 든 순간 이 두 책의 공통점을 찾으려 애썼다.

소망의 이야기다. 

웅크린 새가 원하는 곳으로 역동적으로 날아가길 바라는 소망, 중년을 바라보는 작가가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일은 충분히 하며 자유롭게 살고픈 소망과 바람의 이야기다.


그림책으로 활동을 하는 분들이 많아졌다. 무루님도 그중 한 분이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할머니의 팡도르> 책을 번역한  번역가이기도 하다. 비건과 집사, 미혼, 그림책... <이상하고 자유로운...> 관통하는 대표 키워드 4개쯤에서 마지막에 그림책 비중을 두었나 싶을 정도로 작가의 수많은 부캐 일상 중 그림책이 불쑥 나와 재미있었다.

필사를 하며 읽으니 문장을 참 잘 짓는다 싶다.  말간 얼굴에 단정한 앞치마를 하고 정원을 가꾸는 무루님의 외모가 그려지지만 사실은 아닐 수도 있다. (나는 작가의 얼굴을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다)

식물을 기를 듯 그림책을 정성 들여 읽고 손님을 초대하여 맛난 음식을 대접하듯 잘 정돈된 집에  독자를 모셔 그림책과 글쓰기 수업을 하신다. 코로나의 장애와 아이들의 뒤치다꺼리가 사라진 어느 날, 무루님의 수업을 들으러 수원에 가고 싶다. 




존경하는 고정순 작가의 <그림책이라는 산>에서도 언급되었고 이슬아 작가의 책 그리고 무루님의 책에서도 '사노 요코'의 작품이 언급되었다. 작가들의 작가인 사노 요코의 <태어난 아이>와 관련하여 무루님은 이렇게 썼다


우리는 모두 태어나기로 결심한 아이들이다.

용감하게 알을 깨고 나온 모든 아이들의 모험에 박수를 보낸다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영화 소울처럼 가슴에 불꽃 하나 지닌 채 태어나기로 선택한 영혼들이 여기에 살아가는 것이므로 우린 모두 삶의 개척자다. 충분히 용기 있는 선택을 하였으므로 우리는 스스로가 대견스럽다. 사노 요코의 <태어난 아이>는 마음이 울적한 어느 날 바이블처럼 집어 들어 자근자근 읽고 힘내는 나의 에너지 북이다.



지난겨울에는 '세상 끝에 있는 너에게'를 읽었다. 

(중략)

세상 끝은 어딜까. 지도상의 가장 먼 곳은 아닐 것이다. 세상 끝에는 타인들이 있다. 

타인의 마음에 닿는 일이야말로 어쩌면 세상 가장 먼 곳까지 가보는 일이다. 

우리가 문학을 통해 느끼는 감동의 기저에는 언제나 하나의 질문이 있다.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있는가?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끄덕끄덕. 

나는 요즘 나의 가족, 나의 탯줄을 타고 세상에 나온 자식을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중이다. 하물며 타인이라... 타인을 이해하는 일은 그 사람의 끝에 가 닿는 일이므로 함부로 단언할 수 없다. 앞으로 더더욱 그러할 것 같다.






내 안의 새는 어디로 가고 싶어 하는 것일까?

그림책과 동화책을 엄격히 구별하길 바라는 나는 이 책을 들고 주저 없이 그림책이라고 했다. 누구는 경계 모호한 그래픽 노블이라고 했고. 

그림 속 인물의 표정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읽어야 하고 색이 만들어내는 정서가 이야기를 전달해 줄 때도 있기 때문에 나에게  주저 없이 그림책이었다. 둥지에서 떨어져 나가고 싶어 하는 갈망을 담아 진흙으로 새를 만들어 엄마에게 건네는 베타.엄마만 베타의 소망을 이해해준다. 저 멀리 다른 세상을 바라보는 초록의 표지가 베타의 초록 둥지를 상징하는 것 같다. 

수업시간에 당근을 그리라고 했던, 선을 벗어나지 않아야 하고 시키는 대로 그리라고 했던 위압적인 예술 수업.

지금도 그대로 이어지는 것 같다. 차라리 그렇게라도 예술 교육이 진행되길 바란다. 

비대면 수업으로 할 수 있는 수업이 많지가 않다. 딸아이가 붙들고 있는 비대면 수업을 보고 있자니... 선생님들 국,영,수가 편하겠구먼 싶다.  제대로 된 예술교육은 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청년문화가 사라진다고 하던데 그림책 <프레드릭>에서  '햇빛을 모으는 모든 행위'가 쓸모 없어지는 것으로 전락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여름의 잠수> 작가의 이전 작품이라 더더욱 반가운 <내 안의 새는 원하는 곳으로 날아간다>.

예쁜 판형의 그림책을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느리게 읽어본 주말이었다. 느리고 천천히 시계나 핸드폰을 보지 않고 그림책을 보는 나의 집 오랜만이다.

우리 아이도 자신의 꿈을 찾고 그 하나를 소망하며 갈급하는 모습을 애미가 보게 될 날 손꼽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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