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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시로바로앉는여자 Oct 20. 2021

대부도 옆 선감도

셔츠를 들추어 배꼽을 확인했다_엄마인터뷰

친정집이 대구에서 대부도로 바뀐지는 5년이 되어간다. 

부모님을 어떻게든 가까운 곳에 모시고 싶었고 엄마의 기관지와 폐병이 심해지는 거 같아서 시골로 옮기자고 합의 본 곳이 대부도다. 엄마의 고향 대부도는 6.25 전쟁통에 외할머니께서 엄마를 뱃속에 품은 채 황해도에서 피난 온 곳이라고 했다. 엄마 유년시절 다녔던 초등학교가 그대로 남아있어서 반가웠는데 반응이 시원찮았다. 엄마는 유년학교 기억이 많지 않았다고 하셨다. 병약해서 자주 학교에 가지 못했고 대신 집에서 두 명의 언니, 두 명의 오빠의 돌봄과 배려로 극진한 대접을 받고 자랐다고 했다.


안산에서 대부도로 들어가는 다리는 중간에 사고 나면 빼도 박도 못할 만큼 길고 길어서 처음에 이 다리를 건너는 것이 수행길 같았다. 끝이 보이지 않고 양옆에 시커먼 물이 들어왔다가 나갔다가. 중간에 사고가 나면 어쩌나 '어쩌나' 병이 또 도진 것이다. 친정집 가는 길 다리가 나타나면 심호흡을 깊이 하고 부러 음악을 크게 튼다. 시선을 차 안 내부의 아이들에게 둔다. 주말에 특별히 차가 많은 시간도 피한다.  바다 해안선 따라 보이는 송도의 찬란한 불빛과 그 옆의 커다란 공장 구조물, 이곳에서 과연 엄마의 호흡기 지병이 좋아지기나 할까. 

나의 염려가 무색하게 3년 후 기관지 천식은 많이 나아지셨다. 정말 기적같이 좋아져서 엄마 아빠가 대부도 적응기에 실패할까 봐 노심초사했던 날들은 까맣게 잊었다. 그렇다고 병원을 끊은 것은 아니라서 한 달에 두 번 길고 긴 다리를 운전하고 나가신다. 엄마가 운전을 못 하시게 되면 병원 근처로 거주지를 옮겨야 할 것 같아서 복잡한 계산법이 작동한다.     


친정집 근처 바다가 훤히 보이는 기막힌 전망의 언덕이 있는데 이상하게 그곳에 있는 가게들은 빈집 형태로 남아있다.  너무 좋은 위치인데 어쩐지 으스스해 보이긴 했다.

" 엄마 그 언덕 있잖아 거기에 관광객 대상 로스터리 카페를 하면 어떨까? 거기 위치가 너무 좋잖아. 거기 한번 가서 사진 좀 찍어주세요 "

" 성혜야 갔다 왔는데 영상 보여줄게. 이 영상에서 이상한 소리 들리지 않아?"


대부도에서 선감도로 넘어가는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절묘한 위치. 햇빛이 쨍한 날이었는데 어쩐지 스산함이 느껴졌다. 바람이 휑하니 불면서 음산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평일에 여길 누가 오겠어. 혼자 생각하며 엄마에게 물었다.

" 좋은데 역시나 분위기가 쓸쓸하긴 하네. 이상한 소리가 바람소리지 뭐"

그렇게 시작된 엄마의 뷰 맛집 방문기는 두고두고 회자되는 한방이 있었으니.    

사진찍으러 가신 그날, 언덕을 오르니 특유의 바닷바람이 엄마를 반겨주었고 곧이어 바람소리와 섞인 아이들의 소곤 되는 소리가 들렸다는 것이다. 소름이 올라오면서 주변을 둘러보았고 왕년에 잘 나갔을 큰 수산물 공판장 폐가와 폐가 옆에 쓸쓸히 장소를 지키는 두 곳의 허름한 가게가 운영되고 있을 뿐이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소곤 되나 싶다가도 앵앵거리는 아이들 소리에 어쩐지 빨리 집으로 가고 싶었다고 하셨다. 등골도 오싹하고 그 뒤로는 근처에 살면서 한 번도 그곳으로 가지 않았다고 하셨다.  엄마를 안심시키고 '선감도'를 검색해보았다. 뻐근해진 뒷목을 붙잡고 기사들을 모조리 찾아 읽어보았다.     

사연 많고 아픔 많은 서사의 장소가 바로 선감도였던 것이다.


갯벌을 품은 아늑한 선착장이 보이는 곳. 갯벌이 바다를 메꾸어 길이 되기도 하고 바닷물이 들어오면 아름다움에 눈이 부신 해넘이를 볼 수 있는 곳이다. 내가 원했던 장소 그곳은 수많은 아이들이 죽음의 바다를 헤엄쳤다가 부서지고 잡혀가는 모습을 생생히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베일에 싸인 '선감학원'이 바로 코앞에 있었다. 일제가 만든 강제수용소 선감학원, 패전 이후 소년 수용소라고 불리며 부랑아를 잡아 인권유린을 자행하였다. 맞아 죽고 굶어 죽는 지옥 같던 삶이 여든 살이 넘은 어느 노인의 꿈에 아직도 나타난다고 했다.     

나는 일제강점기 만들어져 최근까지 이어져 왔던 소년보호소가 있는 곳 선감도를 바라보며 엄마가 들었다는 아이들의 소리는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엄마는 듣고 우리는 들을 수 없는 억울한 영혼들의 목소리. 누군가는 알아주길 원하는 사무치고 박힌 슬픔의 목소리.

선감학원의 아픈 지점은 피해자가 거의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소년소녀’의 생을 망가뜨린 국가의 횡포에 억울함이 밀려온다. 놀라운 사실은 선감학원 -형제복지원 - 삼청교육대까지 이어져서 평생을 국가의 노예로 산 사람들이 있다는 뉴스다. 헤집어 보면 가슴만 아플 뿐 이제 와서 무엇하겠냐고 하지만 제대로 사과를 받는 것은 중요하다. 그 대상이 국가이면 반드시 짚고 바르게 역사에 기록해야 한다. 

일제의 잔재가 서쪽의 ‘섬 옆에 섬’까지 뿌리를 내려 그들이 물러간 이후에도 청산하지 않고 그대로 인권유린을 해왔다는 것은 역사 앞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행위다. 정갈하게 지은 삼베로 아이들의 흔적을 찾아 고이 포개어 조심스럽게 묻고 크게 울어주면 하늘로 갈 수 있으려나. 아무렇게나 버려둔 아이들의 시신을 모조리 찾아 사죄를 구하고 양지바른 곳에 이름 석자 크게 새긴 비석과 함께 묻어두는 일 국가가 꼭 해내기를 지켜볼 것이다. (정권이 바뀌고 멈춘 것 같더라)    

아이들은 계속 울고 있나 보다.


<그것이 알고 싶다>2020년 8월, ‘선감학원 편’ 인트로에서 익숙한 멘트가 나왔다. 바닷가에서 굿을 하던 무속인은 엄마와 똑같이 아이들 소리를 들었다는 것이다.

"앵앵거리는 아이들 소리는 우는 것인지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소리였어요. 마치 나에게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듯했어요 “


아. 우리엄마. 

2023.10.14.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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