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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시로바로앉는여자 Oct 22. 2021

아무튼 엄마

셔츠를 들추어 배꼽을 확인했다_ 엄마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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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조금’(조석간만의 차가 가장 작은 날)이란다. 부도에 물이 빠져서 뻘마다 바지락이 널려 있을 테다. 이런 날이면 온 동네가 텅텅 빈다. ‘누렁이’까지 손을 빌려야 할 정도다. 엄마는 다리가 아파 뻘에 들어가기도 전 해변가 코앞에서 한참을 쉬셔야 할 정도다. 힘이 못되어 드리는 내가 원망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는 멀뚱히 아픈 엄마가 바지락 줍는 일을 바라보고만 있다. 동네 사람들은 큰 처녀가 집에서 빈둥거리고 산책만 한다고 흉을 봤을 것이다. 한 번은, 엄마께서 딸내미가 폐병 걸려 일을 안 시킨다고 소문을 낸 집을 찾아가 욕을 하고 한바탕 싸우고 오셨다. 그것을 본 이후 동네 이웃들이 일손이 부족하면 나는 먼저 나서서 품앗이를 나갔다. 언제까지나 나약하게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자주 아파 학교에 종종 가지 않았던 나는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천식이 심해질 때면 집에 가만히 있어야 한다. 당연히 친구들은 나를 찾지 않았고 난 그저 학교에 간 남동생들과 언니를 기다리는 것이 일이었다.

끝에서 끝’ 섬의 양끝은 십리 정도 된다.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섬에 나의 아지트가 두 군데 있다. 아침이면 첫 번째 나의 아지트 동산에서 작은 소나무와 도라지꽃, 앉은뱅이 꽃, 원추리와 개나리 들과 놀았다. 

태풍이 분 다음날, 우리 집 7남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바닷가로 나간다. 어디에서 배 사고가 났는지 별게 다 밀려와서 눈이 휘둥그래 진다. 초콜릿과 미제 껌이 포장 그대로 통째로 밀려올 때면 횡재한 느낌이다. 어떤 날은 오렌지나 립스틱도 밀려오고 외국 잡지도 물에 녹지 않은 채로 밀려온다. 그렇게 보물찾기 하는 해변이 나의 아지트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서운 날도 있었다. 팔다리가 없는 시체가 한 번씩 밀려올 때가 있다. 경찰들이 몰려와 접근을 금지 하지만 내 앞에 분리된 팔 하나쯤이 발에 걸릴까 봐 근처도 가지 못하는 나에 비해 친구들과 동생들은 거침없이 경찰 앞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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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 엄마가 맞춤법과 오타가 가득한  너무나도 긴글을 카톡으로 보내오셨다. 엄마의 어린 시절이 떠올라 새벽에 연필로 적어 놓은 글을 내가 일어날 시간을 기다렸다가  톡에 옮겨적으셨다고 했다. (저만큼의 글이 한 시간 동안 톡으로 전해졌다) 

엄마에게서 수없이 들었던 ‘나는 아프니까 안돼’라는 말의 기원이 결혼 이후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 글을 본 순간, 엄마의 외롭고 아픈 유년시절이 영화처럼 눈에 그려졌다. 태생적 지병으로 늘 부정의 감정으로 살았던 엄마였다.

'항상 몸이 아픈' 사람은 상대방의 감정이나 상황에 덜 민감하다. 본인이 아프니까 오히려 다른 사람을 잘 이해할거라고 생각하나 보통은 그 반대라고 한다. 나의 고통과 아픔이 가장 크게 다가오는 사람에게 주변인을 위한 배려와 센스를 바라기엔 가혹한 일상이다. 엄마도 그런 사람이다. 아픈 몸으로 사는 것이 그저 버거운 한 사람이라 자식들의 정서를 챙기는 일은 소홀했을 것이다. 나는 그런 엄마를 보며 기대거나 바랄 것 없는 부모라고 생각해왔다. 부정적인 개념처럼 들리지만 바랄것 없는 부모의 아이들 즉, 독립적인 아이로 커가는데 내가 성장하는 노선이라고 일찌감치 정했던 것이다.

‘엄마 인터뷰’를 정리하며 글로 풀어내는 동안 어쩐지 ‘마법의 여름’을 보내고 있는 느낌이었다. 지난 여름동안 내가 알던 춘매 여사가 아픈 몸을 사는 여리지만 강인한 내면의 소유자였고 다만 식스센스의 발달로 스스로도 고통스러웠던 여자였다는 것을 알아냈으니. 내 나이 44세에 알게 된 엄마의 역사 그리고 나의 잃어버린 기억 또한 신선한 이야기다. 


요즘 부쩍 엄마에게 난데없이 다정한 카톡을 보내고 있다. 

보통은 주 1회 연락 및 1분 정도의 대화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세상 무심한 딸이나 최근엔 카톡으로 수시로 반갑고도 가벼운 인사를 나눈다. 이 정도로 엄마의 안위를 챙기는 못난 딸은 질곡 많은 세상살이 잘 버텨준 엄마의 마음을 조금씩 보듬어주는 중년이 되고 싶다.애증의 친정엄마는 그렇게 나를 나잇값 하게 만든다. 

어둠이 쌓인 아침,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 어둠을 훌훌 털어 생생한 타자를 치고 싶은 마음을 만들게 해 준 엄마에게 소심한 존경을 보낸다.


23.10.14 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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