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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시로바로앉는여자 Oct 17. 2023

결국엔 사랑

셔츠를 들추어 배꼽을 확인했다_ 엄마인터뷰

당신은 비빌 언덕

삐뚤어진 내가 상처 받지 않고 치댈 수 있는 곳     

당신은 믿는 구석

오래된 파절임이 되어 엉금엉금 기어 온 날

그런 나를 밥 한 공기에 얹어 먹어버릴 수 있게 한 사람      

당신은 나의 태초

부정하고 싶어도 육신의 중앙에 있는 당신의 흔적     

등을 보이며 도망갔지만  

돌고 돌아

다시 당신의 자리      

나는 그렇게 당신을 닮았습니다.

                                              2019 [주머니시] 박성혜 '친정엄마'



한때, 엄마 아빠에게 아무것도 받은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도 주고 받아 철저하게 등식이 성립되는 관계라는 생각도 젊었을때는 진리인양 믿고 있었다. 등가가 성립되는 것은 富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서적인 환경과 사랑을 보고 배웠는가  그걸 느끼고 자란 나는 사랑받고 사랑할줄 아는 어른으로 성장했는가. 자문하던 시기에 내안에서는 부정적인 감정만 올라왔다. 부모님은 자주 싸우셨고 엄마는 병약하셨다. 아빠는 너무 무뚝뚝해서 대화라는 걸 해본 기억이 거의 없을 지경이다. 

집안의 무거운 공기는 딸 셋에게 각자의 노선을 확고하게 정하도록 만들었다. 어떤 아이는 빨리 단념했고 소박하게 그저 의견을 따르는 노선을 선택하였고 어떤 아이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아예 집을 일찍 나가버렸다.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에  화를내고 의견을 굽히지 않고 결론을 빨리 내리는 성급하고 고집센 아이의 노선을 택하였다. 미적거리며 선택을 서로에게 미루는 것도 싫고 엄마 아빠에게 너무 화가 나있는 딸이었다, 

그런 우리였는데 엄아 아빠에게 배운것이 있더라. 딸 셋은 지지고 볶았지만 사실은 연약한 서로를 지지하고 의지한채로 성장했다. 많은 부침이 있던 막내 동생에게 언니가 잡아주지 못해 내내 마음 한구석이 까맣게 타버렸지만 40을 모두 넘긴 우리는 서로를 애정한다.한덩어리 였던 세명이 서로를 의지하며 각자의 덩어리로 분화되는 과정에서 조건없이 지지하는 것, 일종의 시스터후드의 끈끈함이 우리에게 있었다. 마이너스 통장으로 살았을때에도 용돈 없는 막내에게 받을 생각 없는 돈을 보내주고, 예쁜옷이 생기면 딸 다음으로 막내 동생을 생각하는 마음, 반찬이 넉넉하면 조금 덜어서 둘째네 가게에 두고 오거나 서운함이 있어도 나에게 굳이 표현하지 않는 둘째의 속깊음을 안다. 

'언니가 무슨 나를 그렇게나 사랑했다고...' 피식거리며 비웃는 동생들의 소리가 들린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 잘 알지. 마음의 끈은 아직 연결되 있다는 것을. 인생에 있어 최악의 상황과 행복한 순간은 밀물과 썰물처럼  오고 갔지만 우리 딸 셋을 서로를  결코 미워하거나 단념하는 허무는 이제 없을 것이다. 


엄마인터뷰를 하는 동안 과연 엄마에게 인생의 도피처, 안전기지, 가장 엄마의 소중한 공간은 어디였을까 생각해본다.유일한 엄마의 도피처는 '꿈속'이 아니었을까. 유독 이 힘들고 이 힘들고 꿈이 힘들었던 우리엄마. 수많은 꿈중에 나에게  성공을 알려주시고 복을 가져다주신 길몽도 여럿 있었다. 늘 흉몽과 힘든 예지몽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꿈속에서 나쁜 예감이 들면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본인 힘으로 막을 수 없으면 같이 슬퍼하거나 애도하고 

좋은 일을 바라며 조금은 편안한 하루를 보낸날이었다면 아이들에게 복을 내려주싶사 소망하는 여유도 꿈속에서 부릴줄 아는.엄마의 유일한 도피처. 

'인생을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나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찰리채플린이 말했다지. 이토록 어려운 일상을 엄마아빠는 무사히 끝마치는 중이고 그 사이사이 크고 작은 부침은 부모의 다짐과 생명력으로 자식들이 대신 해결해주기도 한다. 

'어떤책임' 은 등가가 성립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최대치를 작동하게 만든다. 아이를 키우면서 비로소  등가성립이 안되는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들이 어릴적에는 얼떨결에 짊어진 삶의 무게를 견뎌내며 그럼에도 최선을 다하는 바지런한 젊은 어른으로 지냈고 지금은 안간힘을 쓰지도, 즐겁지고 않은채로 일상을 살아가는 나이 많은 어른이다. 그래도 '존재'한다는 자체만으로 우리 엄마 아빠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엄마 아빠의 '어떤책임'은 우리곁에 함께하는 것이고 우리의 '어떤책임'은 애증의 부모가 내곁에 '함께' 한다는 자체로 감사할 줄 아는 것이다.  

요양병원에 아빠를 모시고 돌아온 날 엄마에게 말했다. 이제, 엄마 맘대로 살으시라고. 원망하지도 답답해하지도 마시고 그냥 엄마생각만 해보라고 했다. 엄마는 딴소리를 하신다. 

늙으면 영혼도 탁해진다고 엄마가 말씀하시며 통 꿈을 꾸지 않는데 정말 좋은 꿈이 내게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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