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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시로바로앉는여자 Sep 11. 2023

안약을 넣은 것처럼

배꼽이 증명하는 사이_싸우며 사랑하며

“엄마 내 친구가 손목을 그었어. 손목에 분홍색 선이 몇개나 보였고 상담선생님이 데리고 갔어”
“... 그 친구 언제 그랬데? 왜 그런거니. 힘든일이 있는 걸까”

“그건 모르지. 손토시를 더워 죽겠는데 벗지를 않아서 선생님이 복도에서 부른거야. 그래서 나도 알게 된거야”
“발토시는 봤는데 손토시도 있어? 아저씨들 하는 거 아냐? 너 고데기에 데인 자국 보고 선생님이 또 물어봤겠네. 옆에 있었으면 ”

나는 쿵쾅거리는 가슴을 애써 숨기고 ‘아저씨’라는 단어를 꺼내어 분위기를 희석시키려고 했다.
“엉. 난 뭐 사실이니까... 매일 아침 머리 피다가 데었다고 했지. 침대위에 전원 끄지도 않고 앉아버린적도 있잖아 ”
친구끼리 힘든 일 있는데도 왜 몰랐냐며 옆에서 잘 지켜보고 속마음도 얘기해야 진짜 친구가 되는 거라며 살짝 핀잔을 주고 이 대화는 막을 내리려 했다
“엄마 근데 사실은 나도 그런적있어.”

정적이 10초간 흐른 뒤 다시 물었다 “언제였어?”


3월.
친구에게 은따를 당하는게 아닐까하는 처음 든 이상한 느낌에 속상하다고 울며 보냈던 그 3월이었다. 그 시점에 중학입학생 대상 심리검사가 있었고 가윤이는 질문지에 과감없이 감정을 토로했었다. 친구관계가 이렇게 힘든건지 나는 왜 이제 안거냐며 맥락없이 울고불고 한달을 그렇게 보냈다. 반장선거도 나가고 동아리도 많이 들었고 발표도 열심히 하고 나름의 플렌대로 아이는 활발하게 자신의 위치를 선점해나가고 있었는데 불과 2주후에 상황이 바뀌었다. 커다란 여자아이들 그룹이 형성되었고 자신도 거기 있었는데 아이들이 자신에게 리액션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2명의 친구가 비아냥거리며 대꾸를 하는 것도 상당히 거슬려서 왜 그러냐며 항의도 했는데 그 ‘이상한느낌’은 계속되었다.
극단적으로 외향적인 아이가 받은 상처는 세상을 잃은 것과 같은 느낌일 것이다. 아이는 이사를 가자고 매일 졸랐고 심리검사에서 쏟아 부은 분노가 학기초부터 상담실을 드나들 수밖에 없는 지표로 남았다. 그 기간에 나도 많이 아팠다.

“반친구가 없다는 것은 내게 너무 큰 충격이어서 받아들일 수가 없었어”
나는 아이의 손을 꼭 잡았다. 골격이 큰 아이의 손은 내 한손으로도 삐져나와 누가 누구의 손을 잡는 건지 모를 지경이었다.
아무말도 하지 않고 나머지 한손으로 아이의 손등을 어루만졌다. 아이는 계속 이야기를 했다
“긴팔입을때니까 아무도 눈치 못 채게 작은 칼로 팔 안쪽을 소심하게 슥슥 그어봤어. 사실 아프지도 않았고 피만 살짝 맺힌 거 보고 그만 두었어. 별거 아니더라”
별거가 아닌게 아닌데. 나도 그거 잘 안다. 처음 느껴본 부정적인 감정을 풀 방법을 몰라 자신을 해하는거 엄마도 잘 안다. 가윤이가 그렇게까지 힘들었다는 과거 얘기를 하니 목구멍에 돌이 걸린 듯 숨쉬기가 곤란했다.
“ 우리 가윤이가 다른 사람 때문에 자신을 해하는 건 너무 바보같은 짓이라서 너 담에 또 그러면 혼낼 수밖에 없어. 많이 힘들었구나. 뭔가 속상하고 슬플 때 엄마한테 말해. 화내지 않고 진짜 다 받아줄 자신있어 이제는”
‘요즘 아이들이 이렇다’라고 쓰려했지만 나도 중 2때 딱히 슬프거나 힘들지 않았는데 ‘어떤 마음이 될까’ 그 마음이 궁금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계속 사는 게 뭘까를 생각했고 매사 불만이 많았으며 학교에서 무작정 튀고 싶었다. 사춘기의 절정을 온몸으로 맞이한 시기였나보다. 그 시절 딱 한번 극단적 슬픔을 표현한 적이 있었는데 쫄보인 나는 흉내만 냈고 부모님이 아무 리액션도 하지 않아 바로 생각을 접었다. 이 방법은 아니구나.

가윤이는 지금 단짝이 생겨서 그 친구와 많은 시간을 보낸다. 비아냥 거리는 아이는 여전히 그래서 다른 피해자를 만들었고 그 친구가 학교에 이슈화 시켜 선생님이 아이들 언어폭력에 대해 교육하는 시간이 있었다. 코로나로 3년 관계의 공백이 생겼고 스마트폰에 심취하여 기본적인 예의와 사람들과 관계를 잘 맺는 방법을 모르는 거 같다. 물론 가정교육에서 이루어지는 것도 있다지만 어쩌면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에서 사람과 관계를 맺는 방법은 아이들이 제대로 배우고 있지 못하는 거 같다. 0교시도 부활한다하고 초등 시험도 친다고 하고 입시는 미치도록 빡신데 학교 나와도 할 수 있는 일은 제한되어 있고. 바랄 것 없는 사회에서 이 아이들이 온전하게 살아남는 것은 어쩌면 기적일 수 있겠다 싶다.

“엄마, 상담선생님하고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어. 나 이제 친구 많은데.”
분노의 심리검사로 한해동안 상담을 받아야 하는 가윤이가 화요일 3-4교시 베이킹치료시간 에 구운 머핀을 한 움큼 배어 물고 오물오물 거리며 말한다. 수학시간과 과감히 바꾼 베이킹치료시간이다.
작은 얘기도 다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도 물어보고 다른 친구의 마음도 물어보고 하는 거지. 가장 네게 가까이 있는 좋은 어른은 지금 엄마 아빠와 상담선생님이야.
그러다가 명치가 탁 막힌다. 어젯잠 하던 대화가 떠올랐다.
눈에 보이는 커터칼을 모조리 가져와서 나만 아는 공간에 쑤셔 넣었다. 아무도 찾지 못하는 곳에 숨기고 두 아이의 방에 아주 조그맣게 포스티 잍을 부쳤다.
‘ 칼이 필요하면 엄마한테 말하시오! ’


가끔 눈에 안약을 넣은 것처럼 소리없는 눈물이 뚝 하고 떨어질때가 있다.  교실 한가운데서 덩그러니 고개 숙이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선명하게 이미지로 보여질때가 있어서다. 지금은 아니지만 요즘 같은 시대엔 언제라도 반복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된다. 꿋꿋하게 아이가 잘 버텨내고 혼자였을때 더욱 멋있는 너로 만드는 시간으로, 함께할 땐 마음 껏 친구들과 교감할 수 있는 너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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