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시로바로앉는여자 Sep 11. 2023

마들렌 굽는 아이

배꼽이 증명하는 사이_싸우며 사랑하며

가윤아.

곧 너는 식감과 풍미가 좋고 배가 봉긋하게 귀엽게 올라간 아주 '적당한 마들렌'을 굽게 될거야.



'벌써 덥네' 싶은 5월초부터 가윤이는 새벽에 오븐을 돌리기 시작했다. 한참 잠 많은 14살이 학교가기에도 빠듯한 아침에 깜깜한 공기를 이기고 일어날때에는 실로 대단한 것을 하려는 것이겠다.

카페를 운영하는 아빠 덕분에 거품기, 작은 반죽기, 유기농 베이킹 버터 등등이 집에 구비되어 있는데 나는 한번도 사용해본 적이 없다. 밥이며 빵은 남이 해주는 게 제일 맛있거든. 



작년부터 유튜브를 보고 구움과자를 만들더니 지금은 제법 안정되게 일정한 맛이 나오는 형태를 만들고 있다. 어떨때엔 자다가 벌떡 일어나 컵케이크나 에그타르트에도 도전해 보고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기도 한다. 핑계는 아침밥 하기 싫어하는 나를 위해 만드는 아침빵 대용의 베이킹라고 했지만 인스타에 좋아요를 확보하려는 노림수라는 것을 안다. 화려한 구움과자를 만들어야 '좋아요'를 많이 받을수 있는데 갈길이 멀다나. 단순하게 '좋아요' 때문에 잠을 포기한 거라면 차라리 나을까. 


지난 봄,친구들 사귀는게 힘들어서 눈물바다로 보냈던 그 봄에 희망을 걸고 잠을 줄여 시작한것이  바로 베이킹이었다. 다른 친구들보다 잘하는게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던 아이는 영어도 수학도 잘하는 친구가 많고 운동 역시 그녀의 특기였는데 몸이 커지고 살이 붙어 민첩성이 떨어지니 자기가 제일 잘한다 할수도 없게 되었다. 빨라진 등교시간에 아침을 굶는 친구도 많고 거저 줘도 먹을 수 없다던 학교 급식은 나아질 기미가 없어 점심마저 굶는 친구들에게 가윤이가 만든 마들렌은 최고의 유혹이다. 가윤이는 이 사실을 재빠르게 파악하고 새벽 5시에 일어나 반죽을 하고 윙윙 어둠속에서 오븐을 돌리기 시작했다. 

한판에 6개, 잠을 이긴날은 두 판을 구워가고 조금 늑장을 부린 날은 한판=6개를 포장해갔다. 난장판이 된 부엌의 뒷정리는 내몫이지만 가윤이가 오븐에 의지해서 친구를 만들어야만 한다는 애절한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말없이 미끈거리는 바닥과 집기 설겆이를 해준다. 


대략 마들렌을 배분하는 방법은 이렇다.

가자마자 자기가 하나 먹고, 하나는 나를 위해 남겨준다. 2개는 단짝이 되고픈 친구에게 아침과 점심때 나누어주고 한개는 위클래스 선생님, 한개는 담임선생님. 대략 이러한데 12개를 구운 날은 피구동아리친구들에게 플렉스하고 반장, 여학생그룹을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몇몇 친구에게도 주나보더라.

용돈이 없어 징징되면서도 악착같이 모은 3천원으로 허쉬초코렛을 사서 초코코팅도 해보고 홍대까지 넘어가 베이킹도매상을 방문에 다크초코 커버칩을 사서 주사기로 초코를 마들렌안에 넣기도 하며 마들렌 굽는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마들렌의 맛이 훌륭해질수록 친구가 많아지면 참 좋았겠다. 그렇지만 현실을 녹록지 않은 것. 오븐을 가동하던 새벽은 점차 텀이 길어지고 잠시 멈춤, 단념한 듯하다가 한번씩 윙윙거리는 아침이 오기도 한다.

새벽에 마들렌을 굽고 하교 후 영어단어를 외우다가 학원도 못가고 잠든 아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애처로운지. 지금도 가윤이가 마들렌을 굽는다고 하면 또 어떤 아이와 친해지고 싶은걸까 궁금하다. 보이지 않는 감정의 선으로 얽키고 설켜있는 정글같은 학교에서, 공부말고 무얼 배우고 있는지. 단절된 사회 약 3년동안 너무 핸드폰이라는 작은 세계에 갇혀있었던 건 아닐까. 


아이는 분명 성장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투명한 벽을 허물기 위해 적극적인 방법으로 관계를 이어가려 하고 있다. 또한 슬픔이라는 감정을 회복하려 나름의 묘안을 생각했고 실제로 아이에게 효과가 있다는 것을 잘 안다. 

에바 린드스트룀의 그림책 #모두가버리고 에도 가윤이처럼 마멀레이드 만들기에 열중인 아이가 있다.

요즘 아이들의 특징인가보다. 관계맺기 어려움,인간은 원래가 고독하다고 이야기하려는 듯. 함께 있어도 외로워보이는 마지막 장면에서 그림책은 더이상 이야기를 전개하지 않는다. 

아이는 마멀레이드를 아주 '적당히' 만들 정도로 많이 만들어 본 듯하다. 아이들이 슬그머니 왔다가 슬그머니 가버리고, 아니 사실 마멀레이드로 파티를 했는데도 내 눈에는 그저 슬그머니 가버린 듯 보인다.

설탕이 녹을때까지 젓고 또 젓고, 너는 어쩌면 점점 설탕을 녹이는 시간이 길어질 수 있을 거야. 더 많은 양의 마들렌을 만들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지. 그 시간이 너를 얼마나 더 성숙하게 만드는지 지금은 알 수 없겠지만 이것만은 알아둬. 시간이 흐른 후 너는 더 단단하고 반짝이는 너가 될 걸. 마들렌이라는 분야에 최고의 맛을 낼 줄 아는 십대가 세상에 흔하겠어? 


이전 11화 안약을 넣은 것처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