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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시로바로앉는여자 Nov 01. 2023

어떤 점심

책방 행사를 부랴부랴 마치고 집에 온 시간이 3시다. 일주일에 한번 만나고 있는 남편이 늘 그렇듯, 항시 그자리에 그모습 그대로... 소파에 널부러져 있었다. 밥을 일주일에 하루만 챙겨주는지라 나도 식사는 신경을 좀 써주는데 오늘은 점심끼니를 놓친 상태다.  확 당이 떨어진 나는 뭐좀 먹자며 널부러진 팔을 힘껏 끌어당겼다. 

좀처럼 걷는 법이 없는 사람. 운전하는 사람의 단점은 코앞도 차를 끌고 가는 것이다. 이왕 차끌고 나가는거 맛있는 거 먹자고 했고 기껏해야 건너편 문래동철공소 골목의 비빔칼국수 먹으러 가는게 전부였는데 우리는더 큰길로 나갔다. 노량진 시장의 전어구이를 먹자며 갔지만 이미 전어철은 끝이 난 상태.  싱싱한 활어를 몇마리 구매했다. 점심 치고 거한데 내가 궁시렁되었다. 초장집에 가서 나 먹으라고 맥주한병, 소중한병 그리고 매운탕을 시키니 우리의 점심한끼는 8만원이 되었다.  이 가격은 우리둘의 점심 가격으로 사치스럽다고 생각했지만  술을 먹지 않는 남편은 회로 배채운다며 입안 가득 우걱우걱 먹었고 나는 방어와 맥주가 눈앞에 함께 있으니 세상 행복했다. 


" 내가 카페에서 브런치까지 하잖아. 내 기준으로 정말 비싼 가격인데 그 2만원이 넘는 브런치를 매주 대가족이 1인 1주문 하는 사람도 있고 먹고 싶으면 가격보지도 않고 척척 더 주문해서 먹더라고."

" 솔직히 주변 시세에 맞추고 재료도 고급화해서 그 가격에 책정했지만 나는 절대 그 브런치를 사먹을 수 없어" 나는 줄곧 우리 가게의 브런치 가격이 비싸다고 계속 얘기해왔었다.

"가족 손님들 보니 나는 너무 빡빡하게 사는 거 같아서 계속 우리 애들 생각나더라. 나는 우리애들이랑 브런치 먹으러 간적도 없는데."

" 방어가 달다. 회한접시에 이런말 하는 우리 너무 웃겨. 우리는 집도 있고 차도 있고 굶을 일도 없고 일년에 한번 여행도 다니잖아. 중산층이 이런말하면 욕먹는다."


월세로 시작한 우리는 3천원짜리 커피를 미치도록 만들어 차곡차곡 저축했다. 둘다 경영학을 전공했는데 배운 눈을 가지고 돈을 부풀릴 생각은 1도 하지 못했다. 아니 할수가 없었다. 버겁지만 꾸역꾸역 사실 이 표현이 제일 정확했다. 정직하게 땀흘린 돈이 제일 가치 있다는 다소 답답한 마인드를 품고 있다(자본주의 시장에선 정직하게 땀흘려 부를 축적하는 방법이 답답한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거라 생각된다. 그렇게 배웠으니까) 그런면에서 남편과 나는 닮긴 했는데, 그외에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14년동안 가게를 지나친 성실함으로 일궈내어 서울 한복판 45평 짜리 아파트를 샀다. 자, 그러는동안 우리는 조금씩 고장이 나서 수리를 요하는 몸이 되었고 순간을 즐기며 살 수 있는 여유도 상실했다. 삼겹살은 무조건 초대형 마트에 가서 대량으로 사서 집에서 먹어야 저렴하다 생각했고(집에서 매주 굽는 삼겹살에 부엌이 뭐 말이 아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한끼 식사는 1만원이 넘으면 과소비라 생각했다. 배달비가 비싸 배달앱을 쓴적이 한번도 없으며 나는 난방비를 아끼려 애를 썼고 남편은 냉방비를 아끼려 기를 썼다. 

일찌감치 나는 나가 떨어져  동네 지인들과 나만의 가게를 차렸다. 남편과 함께 지금까지 일했다면 나는 온통 죄책감에 휩싸인 책 영화나 전시회 보러가는 나만의 행복을 완전 상실했을 게 뻔했다. 남편은 술도 못먹고 취미도 없다. 나는 술도 먹어야 하고 동무들과 유명한 식당에서 점심도 먹어야 한다. 어쩌다가 꽃도 사야한다. 소문이 자자한 영화가 나오면 꼭 보러 가야하고 옷에도 관심이 엄청 많다. 가끔 소파에 똑같은 자세로 널부러진 그를 보면 측은지심이 솟아 올라 뭐라도 해볼것을 권하는데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망가진 것 처럼 아무 의욕이 없다고 했다.  

강요한 적 없는 성실로 남편에게 억울함이 몰려오는 날이 분명 있을 것이다. 

결혼초반에 남편이 가끔 이런류의 말을 내뱉으며 싸웠는데 그때마다 분명히 해둔게 있다. 너 자신을 위해 사는 거지 가족위해 사는 거 아니니까 우리는 일찌감치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아이들을 사랑하고 일을 하지만 즐거워지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금방 비참해질거라고. 

'그래, 내가 직진할때마다 멈춰세워줘. "


가게문은 약속한 그 시간에 항상 열려있어야 한다. 그 철칙을 14년동안 어긴적없이 살았다. 태풍이 휩쓸고 코로나가 창궐하고 자신몸이 아파서 일어날 힘이 없을때에도 기어서 가게문을 열었다. 성실함을 존경하지만 남편의 진짜 마음이 궁금할 때가있다. 그렇게 하며 속시원하지? 그래야 당신이 편한거지? 

막내가 성인이 되면 동쪽 바닷가 마을에서 낚시하면서 살고 싶다고 했다. 그래, 10년동안 또 달릴거지?

나는 남편이 지금이라도 안식년을 가지길 원한다. 그러려면 경제력은 이제 내가 가질 차례인데...애들만 아니면 덜쓰고 덜버는 삶을 택하고 싶다. 애들은 대롱대롱 내곁에 달려있으니 다시 원점. 

아무튼 노량진시장의 회 한접시의 식사로 지난 결혼생활이 필름처럼 스쳐간다. 우리는 정직한 수입과 소박한 소비를 지향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소시민이다. 앞으로도 그럴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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