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신작<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은 어느 날
눈처럼 가볍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눈에도 무게가 있다.
이 물방울만큼. 새처럼 가볍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그것들에게도 무게가 있다.
성근 눈이 내린다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를 만났다. 소설읽기를 힘들어하는 내게 한강의 소설은 넘지 못할 산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먹으면 안될것 같은 최고급 한식요리같다고나 할까. 독서모임에서 야심차게 선정한 <작별하지 않는다> 는 그렇게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게 왔다.하얗고 단단하게 빚어진 네모의 눈덩이에 커다란 눈결정체의 표지가 새해 선물같이 느껴졌다. 한없이 가벼운 눈도 밀도있게 뭉쳐버리면 엄청난 무게가 나간다. 밀도있는 한해의 삶을 책으로 전달받은 것 같다.
눈은 소설 전체를 아우르는 풍경이고 배경이다. 아마도 가장 가벼운 소재를 끌고와서 가장 무거운 주제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상상해본다. 독자를 조금은 생각한 작가의 배려.
지극한 사랑이길 바란다는 작가의 말을 염두에 두고 의식적으로 진지하게 읽으려고 노력했다. 허벅지 찔러가며 보는 프랑스 아트영화 같은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폭설의 한가운데 내가 있고 새를 살려야 하는 소명이 나에게 주어진 듯 힘내어 또박또박 소리내어 읽어도 보았다.
섬세하고 구체적인 장면은 전도연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한편 만들어도 좋을 만큼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왜 작가의 문장이 호평을 받는지 조금을 알 것 같다. 자음과 모음, 단어가 만들어내는 문장은 살아남은 자의 아픔과 사라져간 영혼의 고통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어떤 대단한 스토리를 전개하는 것이 아닌 문장과 문장이 모여 정서를 만들어낸다.
중반에 들어가면서 책장을 넘기며 약간의 현기증이 왔었다. 지금까지 이어진 아픈 역사는 아직 미해결과제이기도 해서 아팠고 내가 너무 아는게 없어서 부끄러움도 밀려왔다. 아픈거구나. 책을 통해 아플수도 있구나 싶었다. 나의 무기력함이 책을 읽는 내내 인선이 신경을 살리기 위해 3분만다 찌르는 바늘같이 나를 공격했다.
서북청년단을 검색해보았다.
70여년이 지났는데 이제서야 기념관이 세워진 곳도 있고 발굴해낸 유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아직까지 쌓여있는 사진도 보았다. 제주도에서 5만명이 학살당했고 전국적으로 20만명이 학살당한 사건, 역사의 우선순위에서 가장 최하위로 밀려 개인의 무지가 아니라 우리모두가 무지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살아남은자와 남겨진 자들이 감추었던 상처가 대물림 되는 사건이다.
눈은 온기가 없는 것, 죽음 위에 켜켜이 쌓이면 존재를 무로 만든다. 따뜻한 온기로 쌓인 눈을 녹이면 실체는 드러나지. 인선이가 신경을 되살리기 위해 3분마다 찌르는 바늘처럼 시간이 지나도 잊지 않아야 한다고 이 책이 말해준다.
마지막에 결국엔 새도 경하도 인선도 모두 죽은 것일까? 나는그리 판단했지만 경하와 인선 모두 죽지 않았다고 하는 친구도 있었다. 주인공의 죽음이 그리중요하지 않은 소설이라니. 모두 마지막 성냥에 불을 켜면서 다시 제자리로 주인공 모두가 평안했던 그 자리로 가 있길.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