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 제기되는 동성애자 의혹
(셜록 홈즈는 시대를 뛰어넘는 아이콘입니다. 불후의 탐정과 파트너 왓슨 박사, 그를 만든 작가 아서 코난 도일. 이들이 보여주는 당시의 영국과 세계를 탐구하고자 합니다. 아이콘이 각 국에서 채택되어 130여 년이 지난 후에도 끊임없이 변용됩니다. 이 여행에 동참해 주시겠습니까?)
‘경전’에 차고 넘친다는 동성애 암시 구절
대중(독자)은 유명 인사의 일거수 일투족에 관심을 둔다. 더욱이 유명인이 최고의 명탐정이라면 그의 발언이나 행동에 아주 민감할 수밖에 없다. 셜록의 동성애 의혹은 종종 제기되어 왔는데 2003년 책이 발간되면서 다시 논란이 됐다.
그 해 그래엄 롭(Graham Robb)은 ‘타인들: 19세기의 동성애(Strangers: Homosexual Love in the Nineteenth Century, Picadr)를 펴냈다. 그는 홈즈의 ’경전‘ 60편 곳곳에 동성애임을 암시하는 어휘나 행동이 즐비하다며 하나하나 분석했다.
먼저 퀴어(queer)라는 용어와 이 말이 쓰인 해이다. 형 마이크로프트가 즐겨 찾는 런던 중심가의 디오게네스클럽(Diogenes Club)은 ‘런던에서 가장 이상한 클럽’(the queerest club in London)이라고 언급된다(그리스어 통역사에서). 이 단어는 이상한, 괴상한 뜻 이외에 성소수자(남자 동성애자)를 지칭하기도 한다. 당시 유명한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가 동성애 혐의로 재판을 받은 해가 1893년이다. ‘그리스어 통역사’도 이 해가 배경이다. 즉 단어와 이 사건이 발생한 해를 주목해 동성애와 연관됐다고 본 것.
셜록의 최고 적수였던 악당 모리아티 교수와의 대결에서도 역시 단서가 있다. 탐정은 런던의 베르 거리(Vere Street)에서 공격을 당한다. 이곳을 걷다가 지붕 위에서 벽돌 몇 장이 갑자기 홈즈 발 앞으로 떨어진다. 하마터면 벽돌에 머리를 맞아 횡사할 수도 있는 순간. 셜록은 경찰을 불러 현장을 조사하게 한다. 인근 집에서 지붕을 수리하려고 옥상에 벽돌을 쌓아 놓았는데 바람이 불어 떨어진 듯하다. 물론 탐정은 이게 우연을 가장한 자신을 죽이려는 모리아티 일당의 음모임을 간파한다.
그런데 베르 가는 런던에서 유명한 동성애 밀회장소였다. 1810년 이곳에서 동성애를 벌이던 몇 명의 남자들이 체포당했다. 8명이 기소되어 2명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6명은 공개장소에서 모욕을 당했다. 아서코난도일(ACD)이 이런 중요한 사실을 모르고 베르 가를 언급했을 리가 없다. 런던의 수 백개가 넘는 거리 가운데 하필이면 왜 이 거리일까? 베르 거리하면 바로 동성애라고 삼척동자도 다 알만한 사실일 터인데···
또 홈즈와 왓슨 간의 긴밀한 육체적 접촉을 묘사하는 글도 종종 나온다. 두 사람이 더블 침대에서 자는데 홈즈가 왓슨을 안심시키려 하면서 다음과 같은 묘사가 나온다.
”홈즈의 손이 살며시 내 손을 잡았고, 자신이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고 마음이 평안하다는 것을 안심시키려 하는 듯 했다.“ (‘찰스 오거스터스 밀버턴’에서)
유명인이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고 동성애자인가?
홈즈의 동성애 의혹이 계속해서 불거지는 것은 절친 왓슨과 아주 오랫동안 한 집에서 거주했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두 사람은 런던 시내 중심가 베이커 가 221b 2층에서 1881~1904년까지 20 여년 간 함께 거주했다(왓슨이 1888년 결혼을 하여 이곳에서 나간 몇 년을 제외함). 이렇게 오랫동안 두 사람이 한 집에서 살았다니!
그런데 두 사람이 동거한 이유는 첫 소설 ‘주홍색 연구’에 분명하게 나온다. 1887년 출간된 이 소설에서 2차 아프간 전쟁의 부상병 왓슨은 런던에서 방황하다가 돈을 아끼려고 룸메이트를 찾는다. 이 때 만난 이가 셜록 홈즈다.
왓슨은 절친 홈즈의 여성관을 소설 곳곳에서 언급한다. 첫 단편소설 ‘보헤미아 왕국의 스캔들’ 첫 머리에 이게 나온다. 셜록이 ‘그 여성’(The woman)으로 여기는 오페라 가수 아이린 애들러(Irene Adler) 이야기를 하면서.
아이린은 홈즈보다 한 수 위의 여성으로 한 걸음 빨리 행동해 명탐정에게 일종의 패배를 안겨준다.
사랑이 냉철한 이성과 판단력을 흐리게 하여 결과적으로 사건 해결을 방해할 까 두려워 여성을 멀리했다고 왓슨은 첫 소설에서 명확하게 밝혔다.
홈즈도 같은 맥락에서 ”여성은 좀처럼 내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네. 내 머리가 항상 내 마음을 지배했기 때문이지“라고 말한다(‘사자의 갈기’에서).
(Women have seldom been an attraction to me, for my brain has always governed my heart)
일부 셜록키언은 슈퍼맨의 크립토나이트(kryptonite)와 셜록의 여성 멀리하기를 같이 맥락으로 해석하지만 지나친 비약이라고 생각한다. 슈퍼맨은 가상의 화학 원소 앞에서 힘을 잃고 아주 무기력해진다. 반면에 셜록은 여성 혐오론자가 아니고 여성 때문에 업무를 못하는 게 아니다.
홈즈는 또 여성 고객들을 차별하지도 않았다. 돈이 아니라 사건에 호기심을 갖고 종종 이상한 사건 해결에 매진한다. 홈즈의 단골 의뢰인중에 여성 가정교사가 종종 나온다.
‘너도 밤나무 집’에서 사건을 의뢰하러 온 여자 가정교사 바이올렛 헌터에 탐정은 부쩍 관심을 보였다. 그런데 이 여성이 결혼해 버려 안타깝다며 왓슨은 적는다.
당시 영국에서 교육을 받은 여성이라도 직업을 구하기는 어려웠다. 아주 보수적인 사회였기에. 가정 교사는 이런 여성들에게 괜찮은 직업이었다. 보통 귀족의 대저택에 입주해 그 자녀들에게 음악과 그림, 외국어(불어와 독어 등) 등을 가르쳤다.
ACD가 왓슨이나 홈즈의 입을 빌려 명탐정의 여성관을 종종 언급한 것을 보면 혹시라도 불거질 논란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영화에서도 이런 논란이 재연됐다. 2009년 12월 말에 개봉된 ‘셜록 홈즈’ 영화에서다. 홈즈로 열연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홈즈는 ”남자 역할을 하는 동성애자일 수있다“고 발언했다. 아서코난도일 재단은 이런 발언이 반복되면 추가 영화 제작권을 박탈하겠다고 즉각 반응하기에 이르렀다.
셜록 홈즈가 죽은지 백 년이 훨씬 지났음에도 논란이 계속된다는 것은 그만큼 해석의 여지가 많고, 유명인이라는 반증이다.
(사진 1 셜록 홈즈에서 셜록으로 주연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런던 마담 투소 밀랍 인형박물관.
©Luke Rauscher, CC BY 2.0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2.0>, via Wikimedia Commons)
참고.
2004년 동성 커플의 결혼을 허용하는 법(The Civil Partnership Act)이 영국에서 제정되었다. 이 법으로 동성 커플은 이성 부부와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누리게 됐다. 중도좌파였던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총리 집권때이다. 이 법은 성전환자에게도 이들이 인식하는 성에 해당하는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
천재 수학자이자 컴퓨터 과학자로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의 암호 해독에 큰 기여를 한 앨런 튜링(Alan Turing)은 자살했다. 그는 1952년 ‘매우 부적절한 행위’(동성애)를 저질렀다는 재판을 받은 후 화학적인 거세를 당했다. 영국 정부는 2013년에 그를 사면했다. 수십 명의 과학자들과 인권운동가들은 천재 과학자의 사면을 요구하는 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했다. 이에 앞서 2009년 노동당의 고든 브라운 총리는 정부를 대표하여 튜링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거세를 당한 것에 사과했다.
©안병억. 이 글의 저작권은 저자 안병억에게 있습니다. 무단 복제나 전재를 금지합니다.
셜록 홈즈 가계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이 브런치 첫 회 1. 셜록 홈즈가 아직도 살아 있다?!를 참조하세요.
로마 시대의 브리튼부터 브렉시트(Brexit)까지의 영국 역사는 저자의 <<하룻밤에 읽는 영국사>>에서 상세하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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