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도 1년 더 기다려, 25살에 만들어 낸 홈즈
(셜록 홈즈는 시대를 뛰어넘는 아이콘입니다. 불후의 탐정과 파트너 왓슨 박사, 그를 만든 작가 아서 코난 도일. 이들이 보여주는 당시의 영국과 세계를 탐구하고자 합니다. 아이콘이 각 국에서 채택되어 130여 년이 지난 후에도 끊임없이 변용됩니다. 이 여행에 동참해 주시겠습니까?)
환자를 깜짝 놀라게 하던 ACD의 스승 조지프 벨 교수
“리버톤(Liberton,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시의 한 구)에서 왔지요. 두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를 몰고 있군요. 한 마리는 회색, 다른 한 마리는 짙은 갈색. 아마 양조장에서 일하고 있지요.”
의사가 환자의 손바닥과 얼굴, 옷 등을 보고 이렇게 말하고, 이 말이 정확하다면 어떨까? 물론 환자가 신상이나 증세를 이야기하기 전에. 수 십명의 환자를 진찰해온 의사였기에 몸에 배어 있는 알코올 냄새와 손바닥에 배겨있는 굳은살을 보고 사는 곳과 직업까지 알아챈다.
아서코난도일(ACD)은 에딘버러 의과대학에서 공부했다. 당시 의과대학에서 ACD의 스승이었던 조지프 벨(Joseph Bell)은 이처럼 환자를 처음 보고도 어디 출신이고 무엇 때문에 왔는지를 정확하게 맞췄다. 셜록 홈즈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의뢰인이 오면 어디서 왔는지를 맞춘다. 그리고 동료 왓슨에게 왜 이렇게 추리했는지 근거를 설명한다. 의뢰인의 옷이나 발에 묻은 흙, 지팡이를 보고 추론한다. 의뢰인들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명불허전이라고! 이런 탐정에게 사건을 맡기면 말끔하게 해결이 될 것이라 믿고 신뢰하지 않을 수 없다.
ACD는 에딘버러의대 2학년 말 벨 교수의 조교로 근무하면서 많이 배웠다. 스승은 외래환자의 얼굴을 보고 몇 마디 대화를 나눈 후 증상을 확인하고 처방을 내렸다. 이 교수는 환자를 진찰할 때 어느 하나라도 놓치지 말라고 수업 시간에 누누이 강조했다. 홈즈가 자주 의뢰인에게 하는 말, “하나도 빠트리지 말고 자세하게 이야기해주세요.” (Pray be precise! 당시 문장에서는 같은 뜻의 Please보다 Pray를 더 구사).
ACD는 존경하던 벨 교수와 자신을 합성해서 셜록 홈즈라는 인물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가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순탄치 않았다. 힘든 과정을 거쳐서 홈즈가 탄생했고, 홈즈의 창조주 ACD가 성공했기에 어쩌면 그런 성공이 더 값지지 않을까?
‘엄친아’ 도일, 작가의 꿈을 되살리려고 글을 쓰다
ACD가 여섯 번째 문을 두드린 출판사가 책을 출간해주어 홈즈가 세상에 선을 보였다. 어렵게 세상에 나왔지만 처음부터 셜록이 환호를 받은 것도 아니었다.
홈즈의 등장을 알기 위해서는 도일의 성장 과정과 가정사를 조금 알아야 한다.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서 1859년 5월 22일 출생한 그는 가정환경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는 열 명의 형제 자매 가운데 셋째였지만 형과 누나가 어려서 숨지는 바람에 장남이 됐고 가톨릭 세례를 받았다.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으나 어머니가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매우 곤궁한 생활이었다. 장남의 무게를 느꼈던 그는 ‘엄친아’가 되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예수회에서 운영하는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에딘버러대학교 의과대학에서 1876년부터 4년 간 공부했다. 효자였던 도일은 졸업 후 가사를 돕고 병원 개업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고자 했다. 그는 1880년 약 7개 월 정도 그린랜드로 가는 포경선에 승선해 의사로 일했다. ACD의 회고록에 따르면 포경선 승선 의사의 급여가 높았다. 한 달에 32 파운드 10 실링 정도.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2151파운드, 우리 돈으로 323만 원 정도. 당시 숙련공의 98일 치 임금과 비슷했다.
ACD는 돈을 마련해 1882년쯤 런던에서 개업을 타진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같은 해 잉글랜드 남쪽의 항구도시 플리머스(Plymouth)에서 개업한 친구와 동업을 하게 됐지만 3년 만에 사이가 틀어져 인근 사우스시(Southsea)에서 혼자 개업했다. 병원이 변두리에 있었기에 환자가 많지 않았다. 문학에 뜻이 있었는 데다 돈도 좀 더 벌어 보려고 틈틈이 소설을 썼다.
그의 첫 기명소설 『주홍색 연구』는 1887년 11월 크리스마스 휴가철을 겨냥해 Beeton's Christmas Annual(BCA)이라는 잡지에 게재됐다. 이듬해 7월 이 잡지를 출판하던 출판사 Ward, Lock & Co.(이하 Ward로 줄임)가 이 책을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책이 인기를 얻자 2판은 1889년 3월, 3판은 1891년 12월에 각각 나왔다. 하지만 정작 ACD는 추가 출판에 따른 인세를 한 푼도 받지 못했다. 당시에 분명히 저작권법이 시행되고 있었지만 관행으로 이런 출판이 성행한 듯 하다. 단행본 가격은 1실링(shilling)이었고 주로 철도역에서 여행자들을 위한 심심풀이로 판매되었다. 1실링은 2021년 가격으로 약 4파운드, 6천 원 정도이다.
(사진 1 셜록 홈즈의 신주석서 1권. 홈즈가 현장을 샅샅이 살펴보고 있다. © 안병억)
6수 만에 낸 최초의 기명소설, 출간도 1년 넘게 기다려
-탈고 후 3년 만에 나온 소설, ACD가 25살에 홈즈를 만들어 내다
ACD는 의사로 일하면서 틈틈이 시간을 내어 탐정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본격 작가가 되기 위한 습작으로 탐정소설을 먼저 쓰기 시작했다. 이전에 썼던 단편소설은 무명으로 의사들이 주로 보는 잡지 등에 연재되곤 했다. 의과대학 학생이었던 1879년 첫 소설을 익명으로 발표했다(사사사 계곡의 미스터리, The Mystery of Sasassa Valley, 챔버스저널 Chamber's Journal에 그 해 9월 6일자에 발표됨).
ACD는 야심차게 자신의 이름을 써 탐정소설을 출판하고 싶어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1884년 하반기에 『주홍색 연구』를 탈고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25살. 좋은 글이라 확신한 그는 크게 기대했다. 처음에는 유명 출판사를 접촉했으나 연이어 거절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어떤 출판사는 자존심 상하게도 읽지도 않은 채 원고를 돌려주기도 했다. 그는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출판사를 원망도 많이 했다.
1년 반이나 출판업자를 찾다가 결국 자존심을 접고 여섯 번째 문을 두드린 곳이 저가의 통속잡지와 책을 전문으로 하는 Ward 출판사였다. 그는 1886년 초부터 이 곳에 편지를 보내고 원고를 넘겨주었다. Ward가 1886년 10월말 『주홍색 연구』를 출판해 주겠다고 알려 왔다. 하지만 시장에 이런 책이 넘쳐난다며 1년 후에 출간하겠다고 약속했다. 인세마저 마뜩잖았다. 달랑 25파운드 인세. 2021년 가격으로 약 2천 파운드, 3백 만 원 정도이다. 숙련공의 75일치 임금에 해당한다. 도일은 얼마 되지 않는 인세보다 1년 이상 출판이 미뤄진 것에 더 큰 상처를 받았다. 작가로서 명성을 떨치고 싶었는데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는 출판사에 조금 더 인세를 올려달라고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저가의 통속적인 소설을 주로 출판하는 Ward 였지만 나름대로 엄격한 심사를 거쳐 『주홍색 연구』 출판을 결정했다. 심사 과정이 최소 몇 달이 걸렸다.
홈즈를 발견한 것은 Ward 출판사 편집장의 아내였다. 조지 토머스 베타니(George Thomas Bettany)는 케임브리지대학교 석사 출신으로 이 곳에서 편집장으로 일했다. 그의 아내 진 그웬 베타니(Jeanie Gwyne Bettany)가 무명 작가의 첫 기명 작품을 검토했다. 의대에서 공부했었던 진은 원고를 읽고 나서 후한 평가를 내렸다. “이 글은 의사가 썼어. 원고에 그런 증거가 곳곳에 있네. 이 글의 저자는 타고난 소설가야. 맘에 들어. 이 책이 크게 히트할 것이야.”
“에드거 앨런 포 이후 범죄 수사에서 기발한 아이디어”
1887년 11월 『주홍색 연구』가 출간된 후 일간지 스코츠먼(Scotsman)의 서평이 주목할만 한다. 이 신문은 Beeton's Christmas Annual(BCA)에 함께 게재된 여러 편의 단편소설에서 ACD의 이 작품에 주목했다.
“BCA의 이번 주 작품에서 돋보이는 게 아서 코난 도일이 쓴 탐정 이야기다. 이는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en Poe)이후 쓰여진 추리 소설에서 매우 기발한 아이디어를 보여준다. 저자는 천재성을 발휘한다. 그는 기존 문헌의 탐정 수사방식을 그대로 따르지 않았으나 관찰과 추론으로 범죄에 접근하는 진정한 탐정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책은 많은 독자를 끌어들일 것이다.”
어쨌든 6수 끝에 셜록 홈즈가 겨우 세상에 나왔다. 두 번째 기명소설도 역시 홈즈와 왓슨을 주인공으로 하는 『네 개의 서명』이다. 1890년에 출간된 이 소설은 1장이 ‘연역(추론)의 과학’(The Science of Deduction)이다. 『주홍색 연구』 1편 2장과 동일한 제목이다. 3년 전에 홈즈가 나왔지만 그래도 덜 알려졌다고 여겨 ACD가 홈즈의 수사 방법을 다시 한 번 소개한다. 주인공을 다시 한 번 각인시키려고.
이런 무명의 과정을 거친 후 ACD는 1891년 7월에 스트랜드 매거진(Strand Magazine)에 첫 단편소설 『보헤미아 왕국의 스캔들』을 발표한다. 두 개의 장편소설과 다르게 이제 단편소설에서 왓슨은 홈즈의 ‘찐’ 파트너로 나온다. 단순하게 홈즈의 보조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왓슨은 홈즈의 사건 해결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된다. 스트랜드 매거진에 관한 세부 내용은 브런치 2 첫머리에 나온다.
(사진 2 첫 단편소설 주홍색 연구 첫 삽화. 왓슨이 2차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 남았다. 1902년 독일에서는 ‘뒤늦은 복수’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 안병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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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운드화를 현재 가치로 환산하는 정보는 영국 국립문서보관소(National Archives)가 제공합니다. 당시 물가와 현재 물가 비교가 가능합니다. 1217년부터 2017년까지 환산이 가능합니다.
https://www.nationalarchives.gov.uk/currency-converter
로마 시대의 브리튼부터 브렉시트(Brexit)까지의 영국 역사는 저자의 <<하룻밤에 읽는 영국사>>에서 상세하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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