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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왕봉안 Jan 31. 2021

4. 태초에 포가 있었나니

셜록의 대선배는 에드거 앨런 포

(셜록 홈즈는 시대를 뛰어넘는 아이콘입니다. 불후의 탐정과 파트너 왓슨 박사, 그를 만든 작가 아서 코난 도일. 이들이 보여주는 당시의 영국과 세계를 탐구하고자 합니다. 아이콘이 각 국에서 채택되어 130여 년이 지난 후에도 끊임없이 변용됩니다. 이 여행에 동참해 주시겠습니까?)


만유인력의 과학자 아이작 뉴턴과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서


17세기 영국의 과학자 아이작 뉴턴. 그는 케임브리지대학교 트리니티컬리지에서 공부했다. 이 단과대학 정문 바로 오른쪽에 그가 살던 고향의 사과나무가 있다. 만유인력을 발견한 그 유명한 나무에 접을 붙인 것이다. 그 나무 인근 2층 방이 그가 대학생 때 공부한 곳이다. 

천재 과학자였지만 겸손을 강조하는 명언을 남겼다. 자신도 위대한 사람들의 연구 결과에 힘입어 이런 업적을 남겼다는.


뉴턴은 1675년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섰기 때문이다”(“If I have seen further it is by standing on the shoulders of Giants”)라고 썼다. 

셜록 홈즈를 창조해 낸 아서코난도일(ACD)도 마찬가지이다. 



   셜록의 대선배는 에드거 앨런 포의 뒤펭(Dupin)


검은 고양이(black cat) 등의 추리 소설로 유명한 미국의 작가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 1809~1849)가 ACD의 대선배이다. ACD는 자서전에서 이 점을 분명하게 적었다. ACD는 『춤추는 사람들의 모험』(The Adventure of the Dancing Men, 1903년 출간)을 에드거 앨런 포의 『황금벌레 The Gold-Bug』에 바치는 글로 썼다. 


하지만 셜록 홈즈의 모델이자 대선배 뒤펭(Dupin)은 우리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포가 만들어 낸 파리에 거주하는 탐정이 샤를 오귀스트 뒤펭(Charles Auguste Dupin)이다.  


글 속에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화자인 나는 파리를 방문하던 중 알게 되어 뒤펭의 집에서 기거한다. 뒤펭은 부유한 귀족 집안출신이지만 가세가 기울어 물려받은 재산으로 근근하게 살아간다. 이 탐정은 파리 경찰청장과도 막역한 사이이고, 파리 정치인들도 두루두루 잘 알고 지낸다. 세계 최초의 자문 탐정(consulting detective)은 줄 파이프 담배를 피우며 추리하고 이야기를 즐겨한다. 홈즈의 직업인 자문 탐정이라는 용어도 그대로 나온다. 탐정과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화자도 등장한다. 


포의 첫 작품 모르가의 살인사건(The Murders in the Rue Morgue, 1841년 출간됨)에서 뒤펭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파리의 고급 주택가에서 귀족의 미망인과 그 딸이 참혹하게 죽임을 당한다. 미망인의 시체는 4층짜리 대저택 뒷마당에서 예리하게 목이 잘린 채. 딸은 벽난로 굴뚝 안에서 발견된다. 


사망한 딸의 경우 머리카락이 많이 뽑힌 채 인근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목이 손에 졸린 듯 깊은 상흔이 남아 있었다. 아무런 수사 단서도 발견하지 못한 경찰은 수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사건이 미궁에 빠진다. 


여기에 뒤펭이 등장하여 사람이 아니라 오랑우탄이 두 사람을 살해했음을 밝힌다. 나는 뒤펭과 함께 사건 현장을 방문해 현장 조사를 벌인다. 이 사건에서 내 친구는 내가 놓친 이 사건의 특이사항을 파헤친다. “이전에 일어나지 않은 무엇이 이 사건에서 발생했는가”가 올바른 질문이라고 이 탐정이 나를 다그친다. 


현장에서 발견된 털 가운데 상당수가 사람의 것이 아니고, 사건 당일 피살된 두 사람이 거주한 4층으로 올라간 사람을 아무도 보지 못했다는 점. 결국 선원이 보르네오 섬에서 포획해 파리로 밀반입한 오랑우탄이 진범임이 드러난다. 의학지식을 겸비했기에 목의 상흔에 드러난 손자국이 사람의 것이 아님을 규명하고, 오랑우탄이 주로 들어오는 경로는 당시 파리에 종종 오는 인도행 선박임을 추리한다. 박학다식한 똘똘이 뒤펭이다.  


현장을 샅샅이 뒤져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내고, 이를 근거로 추리한다. 뒤펭은 신문에 광고를 내어 선원을 자신의 집으로 오게 만든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추리와 맞는지 하나도 빼놓지 않고 확인한다. 이 단편소설이 최초의 현대식 탐정소설로 평가를 받는 이유이다. 


포의 모르가의 살인사건은 셜록에서 보는 매우 전형적인 이야기 구조를 갖추었다. 셜록과 왓슨이 함께 범죄 현장을 찾아가지만 왓슨은 대개 사건의 실마리를 자주 놓친다. 셜록은 현장을 조사해 사전 추리와 퍼즐을 맞춰 나가면서, 왓슨과 이야기를 나누고 사건 해결에 한발 한발 더 다가선다. 셜록도 종종 신문에 광고나 기사를 내어 범인이나 증인들을 제발로 찾아오게 만든다.  


ACD의 첫 소설에서도 이런 형식이 그대로 나온다. 셜록 홈즈가 첫 출연한 『주홍색 연구』(1887년 출간, 이하 주홍색으로 줄임)에서 물 한 방울을 보고서 수많은 것을 추론할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그러나 군의관 왓슨은 이 말에 코웃음을 친다. 세상에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첫 만남에서 셜록은 그가 군인이고 아프간 전쟁에 참전했으며 부상당했음을 정확하게 맞춰 의학박사라고 자부하던 왓슨을 매우 당혹하게 한다. 


물론 뒤팽에서의 화자나 셜록에서 왓슨이 없다면 뒤팽이나 셜록은 유명해질 수가 없다. 화자와 왓슨이 깔끔하게 정리해 독자들에게 차분하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20세기 초 프랑스의 소설가 모리스 르블랑(Maurice Leblanc, 1864~1941)은 괴도 아르센 뤼팽(Arsène Lupin)을 1905년 세상에 선보였다. 뒤팽과 이름이 유사해 혹시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하지만 전혀 관련이 없다. 르블랑은 뤼팽이 순전히 자신의 머릿속에서 떠오른 이름이었다고 설명했다.  


(사진 1 에드거 앨런 포 전집 © 안병억)



2인 1수사 드라마의 원형


우리 드라마나 미국 드라마, 독일이나 프랑스의 드라마나 영화를 봐도 수사물에서는 2인 1조가 되어 움직인다. 보통 경험이 많은 사수와 그를 보조하는 조수.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한 영화가 계속해서 제작됐다. 


2015년 개봉한 <탐정 비긴즈>와 후속편 <탐정 리턴즈>(2018).


광역수사대 레전드 형사 ‘노태수’(성동일)와 셜록 덕후 만화방 주인 ‘강대만’(권상우)이 교환 살인이라는 역대급 미제 사건을 해결한다. 강력한 살인 동기가 있는 사람들이 서로의 알리바이를 만들어주고 상대편의 원한을 갚아 준다는 내용이다. 강대만이 셜록 덕후라고 나오지만 코믹 영화이기에 셜록 홈즈 원작의 진중함이 부족하다.  


1993년 개봉된 ‘투캅스’도 이와 유사하다. 당시 최고의 배우였던 안성기와 박중훈이 경찰관으로 콤비를 이루어 출연했다.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고 살아가는 조 형사로 연기를 펼친 안성기, 반면에 경찰대학을 수석졸업하고 타협할 줄 모르는 원리원칙의 신참 강 형사(박중훈 분)가 티격태격하면서 사건을 해결한다. 

그 원형은 포의 뒤팽이고 이를 본받아 ACD가 셜록과 왓슨을 만들어 냈다.  


©안병억. 이 글의 저작권은 저자 안병억에게 있습니다. 무단 복제나 전재를 금지합니다. 


주홍색 연구에 관한 일간지 서평은 브런치 3) 6수 끝에 나온 셜록 홈즈에 나온다당시 일간지 스코츠먼은 『주홍색 연구』를 포의 추리 소설 이후 기발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앵글로 색슨의 잉글랜드 침략과 옥스브리지와 영국의 대학교육, 19세기, 20세기 영국 역사는 저자의 <<하룻밤에 읽는 영국사>>에서 상세하게 볼 수 있습니다. 

<<하룻밤에 읽는 영국사>> 

http://www.yes24.com/Product/Goods/90908294?OzSrank=1 


필자가 제작 운영하는 주간 팟캐스트 안쌤의유로톡 http://www.podbbang.com/ch/12999 

필자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anpye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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