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이야기에 최고의 해결책 제시, 수사관이 판사와 집행관 역할까지
(셜록 홈즈는 시대를 뛰어넘는 아이콘입니다. 불후의 탐정과 파트너 왓슨 박사, 그를 만든 작가 아서 코난 도일. 이들이 보여주는 당시의 영국과 세계를 탐구하고자 합니다. 아이콘이 각 국에서 채택되어 130여 년이 지난 후에도 끊임없이 변용됩니다. 이 여행에 동참해 주시겠습니까?)
6백 만 원이 넘는 상금을 건 최고의 홈즈 소설 뽑기 대회
홈즈의 주무대 스트랜드 매거진(Strand Magazine)
스트랜드(Strand)는 런던 중심가에 있는 지역이다. 우리식으로 하면 서울의 명동 정도이다. 이곳의 이름을 딴 잡지가 ‘스트랜드 매거진’(Strand Magazine, 스트랜드로 줄임). 아서 코난 도일(ACD로 줄임)은 1891년 “보헤미아 왕국의 스캔들”(A Scandal in Bohemia)을 이 잡지에 게재한 후 1927년까지 대부분의 소설을 여기에 기고했다. 덕분에 이 잡지 구독자는 급증했고 출판사는 톡톡히 재미를 봤다. 홈즈를 먼저 보려고 잡지를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가판대로 몰려 장사진을 쳤을 정도였다. 시드니 패짓(Sidney Paget)의 멋드러진 삽화가 소설의 재미를 더해 줬다.
잡지사는 1927년 3월 독자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흥미롭게 읽은 셜록 홈즈 소설 뽑기 대회를 개최했다. 장편 네 편을 제외한 단편소설만을 대상으로. 그리고 심사위원은 저자 ACD였다. 그의 마지막 소설집 <<셜록 홈즈 사건집>은 당시 출간 전이어서 후보에서 제외됐다. ACD의 선정과 가장 근접한 응모자가 100 파운드 상금과 도일이 서명한 <<셜록 홈즈의 회상>>과 <<셜록 홈즈 모험>> 책을 받게 됐다. 100파운드는 2017년 가격으로 환산하면 4100 파운드, 우리 돈으로 6백만 원이 조금 넘는다. 당시 숙련공의 거의 1년 정도의 임금이었다. 꽤 많은 돈이다. 도일은 “독자들의 의견을 조금이나마 가늠하고 싶어 응모대회를 시작한다···내가 최고라 생각하는 12개 소설 목록을 뽑았다. 리스트가 담긴 봉투를 밀봉해 스트랜드 편집자에게 보냈다”라고 썼다.
(사진 1 셜록 홈즈 소설 대부분이 출간된 스트랜드 매거진의 표지. 두 번 째 모음집인 <<셜록 홈즈 회상(록>>으로 12개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출처:Special Collections Toronto Public Library, CC BY-SA 2.0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2.0>, via Wikimedia Commons
얼룩무늬 밴드(The Speckled Band), 빨간 머리 연맹, 춤추는 사람의 순서
그해 6월 스트랜드는 당선자를 발표했다. <<셜록 홈즈의 모험>>과 <<셜록 홈즈의 회상>>, <셜록 홈즈의 귀환>>, <<셜록 홈즈의 마지막 인사>>에 수록된 작품들이 골고루 다 들어가 있다(아래의 목록 참조). ACD는 12개 작품을 추리는 게 쉽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처음 이 대회를 시작했을 때 12개 최고 작품 선정이 제일 쉬울 거라 가볍게 생각했다. 그러나 곧 어려운 일임을 깨달았다. 다시 내 소설을 신중하게 읽어야 했다. 어렵고, 어렵고 지루한 일이었다”라고 소감을 적었다.
그는 12개를 뽑았고 그 이유도 밝혔다.
첫 번째는 얼룩무늬 밴드의 모험(The Adventure of the Speckled Band, 보통 모험을 빼고 부름)이다. “전 세계로부터 온 하나의 메아리 같은 이야기라며 그래서 가치가 있다”고 1위로 뽑았다고 썼다. 빨간 머리 연맹(The Red-Headed League), 춤추는 사람(The Dancing Men)은 구성(플롯)이 독창적이었기에 2, 3위를 각각 차지했다. 4위는 ‘마지막 사건’(The Final Problem)이다. 홈즈의 능력을 소진하게 했던 적수 모리아티와의 대결이다. 또 절친 왓슨과 독자들도 탐정이 죽은 것으로 잘못 생각했기에 이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고 적었다. 5위는 보헤미아 왕국의 스캔들(A Scandal in Bohemia)이다. ‘모험’ 첫 글에 수록돼 다른 소설의 길을 열어 줬고 다른 이야기보다 여성적인 요소가 들어있다고 평가했다. 홈즈가 살아 돌아오고 모리아티의 하수인 세바스찬 모란 대령이 다시 홈즈를 저격 시도하는 빈집의 모험(The Empty House)이 6위를 차지했다.
7위가 다섯 개의 오렌지 씨앗(The Five Orange Pips)이다. 짧지만 극적인 요소가 있다고 선정 이유를 썼다. 당시 복잡하게 전개된 외교 전쟁과 음모를 다루는 2편, 즉 해군 조약문(The Naval Treaty)과 두 번째 얼룩(The Second Stain)이 있는데 두 개 다 괜찮지만 다 선정할 수 없기에 하나만을 고민해 ‘얼룩’을 8위로 뽑았다. 악마의 발(The Devil’s Foot)이 무시무시하고 새롭기에 9위. 프라이어리 학교(The Priory School)가 10위이다. 실종처리된 아들의 범인이 아버지인 공작임을 밝히는 내용이기에 극적이라며 10위에 자리매김했다. 머스그레이브 전례문(The Musgrave Ritual)과 라이기트의 수수께끼(The Reigate Squires)가 11위, 12위를 차지했다. 실버 블레이즈와 브루스파팅턴 잠수함 설계도, 등이 굽은 남자, 입술이 비뚤어진 사내, 글로리아 스콧호도 마지막 두 자리에 들 수 있는 후보로 검토했지만 머스그레이브와 라이기트가 최종 선정됐다. 경주마 실버 블레이즈의 경우 경주 관련 세부 내용이 부정확해서 제외됐다. 11위를 차지한 머스그레이브는 역사적인 내용이 가미돼있어 좀 특이하고 홈즈의 유년 시절을 추억한 글이어서 선정됐다. 마지막 12위는 나머지 소설에서 제비뽑기를 해도 된다며 그래도 라이기트에서 홈즈가 천재성을 보여줘 12위로 선정했다고 ACD는 썼다.
마지막에 코난 도일은 선정 이유를 밝힌 이유도 썼다.
“심사위원이 선정 이유를 밝히는 것은 아마 실수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정말로 고민을 거듭한 후 선정했음을 이 대회 참가자들에게 알려주려고 이유를 적는다”라고. ACD는 3년 후 세상을 떠나 그가 독자와 교감한 것은 아마 이 글이 거의 마지막이다.
사족으로 추가한다.
사건집에 수록된 12개 단편은 최고의 소설 선정에서 제외됐다. 1927년 당시 출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ACD는 선정 이유를 적은 위 글에서 사건집의 두 개 소설도 선정 리스트에 들 수 있다고 썼다. 하나는 사자의 갈기(The Lion’s Mane)이다. 이 작품의 실제 플롯을 모든 소설 중에서 최고로 쳤다. 또 하나는 유명한 의뢰인(The Illustrious Client)이다. 플롯은 그리 치밀하지 않지만 어느 정도 극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어 리스트에 선정될만 하다고 봤다.
밑에 있는 저자가 뽑은 리스트를 한 번 보자. 그리고 각각의 사건에서 명탐정의 사건 해결 방식을 꼼꼼하게 비교해 보면서 해당 소설을 한 번 읽거나 유투브에서 작품을 시청해보자.
ACD가 선정한 최고의 작품 12개 리스트
순위와 작품명(도표 작성이 안됩니다)
얼룩무늬 밴드(The Speckled Band), 머리 좋은 범인의 잔혹성을 극단으로 보여준 사건
“밴드(band)였어. 얼룩무늬 밴드였어.”
이런 의문의 말을 남기며 숨을 거둔 결혼을 앞둔 언니 줄리아(Julia).
성격이 괴팍하고 가세가 기울어진 왕족 출신의 의붓 아버지. 쌍둥이 자매 가운데 언니 줄리아가 결혼을 앞두고 의문스러운 죽음을 맞는다. 경찰 수사나 검시관의 부검에서도 사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아침 7시 15분에 두려움에 가득 찬 얼굴로 홈즈의 사무실을 찾아 온 역시 결혼을 앞둔 동생 헬렌 스토너(Helen Stoner)양. 세부 내용을 들은 홈즈는 서리(Surrey) 지역 인근의 그 집으로 가서 현장을 점검한다. 결국 의붓 아버지가 아내가 남긴 유산을 독차지하려고 의붓 딸 1명을 살해했고 나머지 한 명도 살해하려고 했다. 인도에서 가져온 가장 치명적인 독사를 길들여 쥐도 새도 모르게. 하지만 홈즈가 독사를 의붓 아버지 방으로 돌아가게 해서 흉악범을 죽음으로 내몰게 된다. 머리가 좋은 흉악범을 탐정이 단죄했다. 너무 지나치지 않은가?
이 소설에서는 홈즈의 수사 방법이 세세하게 드러난다. 먼저 의뢰인으로부터 세부 내용을 듣고 추가로 묻고 추론을 한다. 자매의 어머니가 일년에 750파운드를 남편과 딸 둘에게(결혼을 하면) 균등하게 분배해주라는 유언을 남긴다. 이 사건은 1883년에 발생했다. 당시 750파운드는 현재 가격으로 4만 9천 파운드가 넘는다. 2021년 1월 중순 우린 돈으로 7300만 원 정도. 당시 영국 숙련공 6년 정도의 연봉이다. 이를 골고루 3등분 하니까, 딸이 결혼하면 일년에 2400만 원 넘게 받는다. 이는 숙련공 임금의 2년 치 정도이니 꽤 거액이다.
의사였고 식민지 인도로 가서 개업을 하여 성공했으나 집사를 살해하고 겨우 극형을 면해 귀국한 의붓 아버지. 살해 동기는 충분하지만 살해 방법이 오리무중이다.
현장으로 가기 전 홈즈는 런던 변호사 사무실에서 자매의 숨진 어머니가 남긴 유서를 점검한다. 거액이고 결혼 직전에 언니 줄리아가 숨졌고, 이번에 결혼을 앞둔 동생 헬렌도 새벽에 이상한 휘파람 소리를 듣고 두려움에 잠에서 깨어남을 알고 의붓 아버지를 유력한 용의자로 본다.
현장을 점검해보니 딸이 자는 방을 잠그면 외부인의 침입이 불가능하다. 즉 인근에서 야영을 하던 집시의 짓은 아니다. 밴드라고 하면 머리띠를 먼저 떠올리기에. 의붓 아버지 방을 조사해보니 금고가 있고, 그 방의 의자에 최근 발자국이 선명하다. 이 의자는 바로 옆, 딸 침실의 환풍구 옆에 놓여져 있다. 금고 옆에 작은 야생동물에게 먹인 듯한 자그마한 접시에 담긴 우유가 있다. 그리고 며칠전 집을 수리한다며 헬렌을 숨진 언니의 방으로 가서 자게 한 것. 헬렌이 새벽에 낮은 휘파람 소리를 듣고 깨어난 것. 2년 전 숨진 언니도 같은 소리를 들었냐고 말했음을 상기한다. 숨진 언니의 방에서 결정적인 실마리가 나온다. 침대는 환풍구 쪽으로 고정돼 있고 머리 맡에 하인을 부리는 설렁줄(bell-rope)이 있다. 의붓 아버지가 설치했고 하인도 없고 쓰지도 않는데 말이다. 설렁줄은 바로 환풍구와 연결돼 있다.
헬렌의 방에서 잠복하던 홈즈와 왓슨은 새벽 3시에 금속성의 소리(옆 방 금고를 여는 소리), 휘파람 소리를 듣는다. 홈즈가 설렁줄로 내려오던 가장 치명적인 독사를 채찍으로 세차게 몇 차례 후려쳐 환풍구로 돌려 보낸다. 화가 난 독사가 의붓 아버지를 살해한다.
홈즈는 왓슨에게 현장으로 오기 전의 추론, 현장에 와서 추론을 바꾼 점을 차례로 설명한다. 의붓 아버지가 인도에서 왔고 그 곳의 개코원숭이와 같은 야생 짐승을 집에서 길렀다는 점. 의사였으니 검시관도 발견할 수 없는 독을 썼으리라는··· 현장을 보고 또 보고 치밀하게 조사해 추론을 하고 새벽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 방에서 기다렸다.
머리 좋은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면 더 교묘하고 흉폭해진다. 독사를 의붓 아버지의 방으로 내몰아서 간접적으로 그의 죽음에 책임이 있지만 양심의 가책을 심하게 받지는 않는다고 홈즈는 왓슨에게 털어놓는다. “폭력은 휘두른 사람에게 되돌아 온다는 이야기가 정말이군. 남을 함정에 빠트리려고 구덩이를 파는 사람은 자신도 그 구덩이에 빠지기 마련이지.”
셜록 덕후, 셜록키언들은 이 독사가 정확하게 무슨인지 찾고 있다. 이글에서는 “인도에서 가장 치명적인 연못 독사(swamp adder)”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얼룩무니 밴드는 독사가 의붓 아버지 목을 칭칭 감고 있는 바로 그 흉측한 모습이다.
이 작품은 ACD 소설 가운데에서도 매우 인기가 높았다. ACD 자신이 각색을 하고 희곡을 써서 무대에도 올렸다. TV 드라마나 영화로도 많이 제작됐다. 런던 베이커 거리 221B에 있는 셜록 홈즈 박물관에서도 이 작품의 작중 인물 의붓 아버지가 전시되어 있다.
(사진 2 사정없이 채찍을 휘둘러 독사를 의붓 아버지 방으로 보내는 홈즈(시드니 패짓의 삽화)
(사진 3 독사에 물려 죽은 흉악범 의붓 아버지 그림스비 로일롯(Grimesby Roylott)
(사진 4 셜록 홈즈 박물관 실내 서재와 각 종 실험장비 © 안병억)
©안병억. 이 글의 저작권은 저자 안병억에게 있습니다. 무단 복제나 전재를 금지합니다.
파운드화를 현재 가치로 환산하는 정보는 영국 국립문서보관소(National Archives)가 제공합니다. 당시 물가와 현재 물가 비교가 가능합니다. 1217년부터 2017년까지 환산이 가능합니다.
https://www.nationalarchives.gov.uk/currency-converter
로마 시대의 브리튼부터 브렉시트(Brexit)까지의 영국 역사는 저자의 <<하룻밤에 읽는 영국사>>에서 상세하게 볼 수 있습니다.
<<하룻밤에 읽는 영국사>>
http://www.yes24.com/Product/Goods/90908294?OzSrank=1
ACD 최고의 소설, 12개 선정 관련 기사는
Literary Hub, “The 12 Best Sherlock Holmes Stories, According to Arthur Conan Doyle,” 22 May 2018.
After All, He Should Know
https://lithub.com/the-12-best-sherlock-holmes-stories-according-to-arthur-conan-doyle/
필자가 제작 운영하는 주간 팟캐스트 안쌤의유로톡 http://www.podbbang.com/ch/12999
필자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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