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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왕봉안 Jan 10. 2021

1. 셜록 홈즈가 아직도 살아 있다?!

 셜록  덕후들은 왜 홈즈가 살아 있다고 믿나  

(셜록 홈즈는 시대를 뛰어넘는 아이콘입니다. 불후의 탐정과 파트너 왓슨 박사, 그를 만든 작가 아서 코난 도일. 이들이 보여주는 당시의 영국과 세계를 탐구하고자 합니다. 아이콘이 각 국에서 채택되어 130여 년이 지난 후에도 끊임없이 변용됩니다. 이 여행에 동참해 주시겠습니까?)


1. 셜록 홈즈가 아직도 살아 있다?!     


셜록키언(Sherlockian)이 홈즈의 사망 연도를 적지 못하는 이유


  덕후(오타쿠)는 정말이지 못 말려!!!.

명탐정 셜록 홈즈는 1854년 빅토리아 여왕 치세에 태어났다. 그가 살아 있다면 신축년인 2021년에는 무려 167살이 된다. 그런데 아직도 그가 살아 있다고 믿는 셜록 덕후들이 제법 있다. 아무리 최고의 탐정이라해도 신도 아닌데, 어째서 이런 일이?


  미국의 변호사이자 잘 알려진 셜록 덕후(영어로 셜록키언 Sherlockian이라 불림, 이하 셜록키언이나 영어를 함께 사용) 레슬리 클링거(Leslie Klinger)는 2004년 ‘새로운 주석서’를 출간했다. 이 책은 아서 코난 도일(Arthur Conan Doyle, 이하 ACD로 줄임)이 쓴 60편의 소설 모음집보다 최소한 주석이 2배 정도 분량이 많을 정도로 아주 상세하다. 그동안 셜록 덕후들이 추가한 해석은 물론이고 자신의 새로운 해석도 매우 꼼꼼하게 덧붙였다. 책의 마지막에 셜록과 절친인 왓슨 박사, 그리고 두 인물을 세상에 선보인 ACD의 연표가 있다. 그런데 셜록 홈즈는 사망 연도가 공란으로 남아 있다. 셜록보다 두 살 많은 왓슨은 1852년에 태어나 1929년, 77살에 사망했다. ACD도 자서전에서 쓴대로 “하고 싶은 일을 다해보는”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았다. 1859년에 태어나 1930년에 사망했으니 종심(從心, 70)을 넘어까지 장수했다.


  그렇다면 최고의 셜록 덕후가 홈즈의 사망 연도를 왜 빈 칸으로 남겼나?

셜록에 매혹된 전 세계 수백 만 명의 팬들은 이렇게 유명한 사람이 죽었는데 신문 부고 기사가 없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며 아직도 그의 사망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런던에서 발간된 일간지 더타임스(The Times)나 당시 미국의 뉴욕타임스를 아무리 뒤져 봐도 명탐정이 죽었다는 소식을 찾을 수 없다. 불후(不朽), 원래 말 뜻 그대로 썩지 아니함, 죽지 아니함 아니겠는가? 비록 육신은 우리 곁을 떠났지만 명성은 영원함을 믿기에, 육신도 함께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말이지 덕후는 못 말린다. 명탐정에 매혹되어 그를 연구하는 사람들이니. 그들에게 신과 같은 탐정이 소식도 없이 삶을 마감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어하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코난 도일의 이름 아서와 유명한 전설의 인물 아서가 묘하게도 겹친다. 게르만 족의 한 분파인 앵글로 색슨은 5세기 말에 잉글랜드로 대거 쳐들어와 거주중이던 켈트족을 도륙했다. 그 때 혜성처럼 나타난 이가 바로 아서왕이다. 그는 세상이 어지러우면 다시 사랑하는 백성인 켈트족을 구하려 내려온다는 전설을 지닌 인물이다. 세상의 극악 무도한 악을 한 칼에 청소해버리려는(일소하려는) 불멸의 영웅처럼. 셜록키언들이 신봉하는 홈즈도 이와 유사하다. 점점 더 조직화했고 교묘해지는 범죄 조직과 범죄자들을 잡아서 세상을 좀 더 정의롭게 만드는 탐정 콤비.  


  작가 ACD는 셜록 홈즈의 세계를 만들었다. 홈즈와 왓슨, 그들이 누비고 다닌 당시의 영국. 그렇기에 홈즈와 왓슨이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의 인물이지만 아직도 우리 곁에 있는 듯하다. 경찰의 첨단 수사기법이나 2인 1조가 되어 사건을 수사하는 방식. 이게 다 홈즈가 남긴 유산이다.    


       

(사진 1

런던 시내에 있는 셜록 홈즈 박물관 간판. 경찰에게 사건 컨설팅을 해주는 탐정(Consulting Detective)이라는 설명과 함께 주소가 기재되어 있다.

© 안병억)


경전(The Canon)이라니, 홈즈가 신이란 말인가?     


  위에서 소개한 클링거는 3권의 주석서에서 홈즈 소설 모음집을 경전(The Canon)이라 부른다.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를 경전이라 부르듯이. 즉 셜록 홈즈를 거의 신처럼 떠받는다. 여기에서 경전은 유일하기에 정관사 ‘더’가  붙고 알파벳 c도 대문자로 표기된다. 마찬가지로 ACD가 출간했지만 경전에 들어가지 못하는 외경(外經)도 있다. 소설이나 희곡, 에세이 등 수십 편이 넘는다.


  셜록키언 상당수는 홈즈와 왓슨이 실제로 살았던 인물이라고 믿는 ‘찐’ 신봉자들이다. 클링거는 책 1권 머리말에서 자신이 그렇다고 거리낌없이 말한다. “홈즈와 왓슨은 실재 인물이다. 경전에 표기된 것을 제외하고 왓슨이 셜록 홈즈에 관한 글을 썼다. 그렇지만 그는 동료이자 출판 대행자였던 아서 코난 도일경의 이름으로 이 글을 출판하게 해주었다.”고 명시했다(신주석서 1권, Preface, xii).


  도일이 홈즈를 처음 세상에 알린 것도 의학박사 왓슨의 회고록에서 나온 글, <<주홍색 연구>>에서이다. 그리고 홈즈 경전 대부분에서 그렇듯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왓슨이다. 2020년 12월 작고한 스파이 소설의 대가 존 르 카레(John Le Carré)는 왓슨을 “가장 위대한 이야기꾼”이라고 평가한다(신주석서 1권, Introduction, xiii). 그는 클링거 바로 다음에 머리말을 써서 이 주석서의 가치를 높여 준다. 르 카레는 어렸을 적부터 홈즈의 마법에 빠졌었는데 아들도, 손자들도 마찬가지라며 뿌듯해 한다.


  대척점에 있는 사람들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되받아친다. 대표적인 인물이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대학교 역사학과의 오웬 에드워즈(Owen Dudley-Edwards)교수이다. 그는 홈즈와 왓슨을 실존 인물이 아니라 작가 도일이 만든 허구로 본다. 하지만 에드워즈 교수는 이 때문에 셜록키언의 ‘디스’를 받아 왔다. 그는 1993년 옥스퍼드대학교 출판사에서 셜록 홈즈 시리즈 9권을 펴냈는데 편집자로 활동했다. 거의 3천 페이지 가까이 되는 책이다. 현재 필자는 <<주홍색 연구>>와 <<셜록 홈즈의 사건집>>을 각각 한 권씩 갖고 있다. 이 두 책 모두 본문과 주석이 거의 같은 면수를 차지한다. <<주홍색 연구>>의 경우 1887년 이 책이 첫 출간된 경위를 설명하면서 ACD가 출판사와 주고받은 편지를 모았고, 본문 내용의 단어나 역사적 상황에 대해 아주 세밀한 주가 달려 있다.       


(사진 2

옥스퍼드대학교 출판사에서 펴낸 셜록 홈즈가 등장한 첫 소설 <<주홍색 연구>> 표지.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문 전형적인 모습이다.  

© 안병억)



(사진 3

옥스퍼드대학교 출판사에서 펴낸 셜록 홈즈가 등장한 첫 소설 <<주홍색 연구>> 미주. 오른쪽 페이지에서 코난 도일은 출판사가 제시한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아 출간을 주저했다고 썼다.

© 안병억)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옥스퍼드대학교에서 공부한 홈즈    


  셜록키언들은 탐정 소설 곳곳에 흩어져 있는 자료를 취합해 셜록과 왓슨의 일생을 재구성했다.

  일단 셜록은 최소한 중상류층 가정에서 성장했다. 홈즈는 옥스퍼드대학교에서 공부를 했지만 졸업하지는 못했다(주홍색 연구에서 왓슨이 홈즈를 처음 만날 때 언급이 됨). 그의 형 마이크로프트(Mycroft)는 고위 공무원으로 근무했다. 아마도 정보기관에서 근무한 듯하다. 그리스어 통역사(The Greek Interpreter)에서 홈즈는 처음으로 절친 왓슨에게 가족 이야기를 한다. 그것도 형 마이크로프트가 관찰력과 연역법에서 자신보다 뛰어나다고. 왜 탐정이 되지 않았느냐는 절친의 질문에 셜록의 명확하게 답한다. “형은 탐정 일에 관심이 없다”고. 형은 매일 오후 4시 45분부터 7시 40분까지 디오게네스클럽에 있다. 아직까지도 영국 런던 시내의 몇몇 클럽은 남성만을 회원으로 받는다. 19세기 이런 귀족 클럽에 수시로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이라면 상당한 고위직이다.    


  그의 부모님은 셜록의 형과 누나(쉐린포드 Sherrinford), 그리고 홈즈를 데리고 유럽 대륙을 자주 여행했다. 당시 도입된 미국행 기선을 타고 미국도 1년간 방문했다. 홈즈 가족은 프랑스와 독일,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을 골고루 찾아다녔다. 당시 영국 상류층은 여객선을 타고 대륙으로 건너가 그곳 교통편을 이용해 여행을 즐겼다. 19세기 중후반에 유럽의 여러 나라를 자주 찾았고, 미국을 방문했다는 것은 그만큼 가정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셜록의 외국어 실력도 이때부터 배양됐다. 소설을 보면 홈즈는 독일어와 불어를 잘 이해하는 듯하다. 셜록이 각 국의 신문을 읽고 흉악범 관련 정보를 모은 서류철이 그의 서재에 있다. 범죄 데이터베이스인 셈이다. 유명한 의뢰인(The Illustrious Client)에서 고객이 그루너 백작을 아느냐 묻자 “오스트리아의 살인자”라는 탐정의 답이 곧바로 튀어 나온다. 그만큼 유럽 각 국의 여러 흉악범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셜록은 14살부터 펜싱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가 범죄자들과 자주 몸싸움을 벌이면서도 밀리지 않는 것은 이때부터 배운 운동 기본기에 더해, 이후에도 꾸준하게 몸을 단련했기에 가능했다. 형과 함께 사립중고등학교(Boarding School, 기숙하며 배우는 학비가 비싼 학교)에 다니던 셜록은 18살이 된 1872년에 옥스퍼드대학교 크라이스트처치(Christ Church) 컬리지에 입학한다.


  왜 명탐정이 학교를 그만 두었을까? 이유가 나와 있지 않지만 그의 자유분방한 기질이 고리타분한 학교와 맞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 때 옥스퍼드대학교는 대부분 사립중고등학교를 졸업한 귀족의 자제들이 입학했다.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의 절정에 있었다. 기술자와 같은 산업의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인력이 필요했지만 정작 옥스퍼드대학교와 케임브리지대학교(둘을 합해 옥스브리지 Oxbridge)는 이런 산업계의 인력을 양성하지 못했다. 옥스브리지는 그리스와 로마의 역사와 같은 인문교육을 중시했다. 일부 덕후들은 셜록이 옥스퍼드대학교에 입학하기 전 그의 가정교사가 적수 모리아티(Moriarty) 교수라고 추정한다. 하지만 이 주장은 근거가 부족하다.


  다만 모방작, 패스티시(pastiche)에서 나온다. 미국 작가 니콜라스 메이어(Nicholas Meyer)가 1974년에 <<The Seven-Per-Cent Solution: Being a Reprint from the Reminiscences of John H. Watson, M.D, 7% 용액>>을 출간했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에 코카인에 중독된 셜록을 구하려고 왓슨은 그를 비엔나에 있는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에게 데려간다. 홈즈를 체면에 빠지게 하고 밝혀진 놀라운 사실. 제임스 모리아티 교수가 홈즈와 형 마이크로프트에게 수학을 가르친 가정 교사. 그런데 모리아티가 어머니와 관계를 맺고 이를 알아 챈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고 자살했다. 이 책은 출간 후 9개월 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였다. 1976년에 영화가 개봉됐다. 제목은 홈즈가 제조한 코카인 함량이 7% 용액이라는 의미.

  어쨌든 1877년 런던으로 온 홈즈는 극단에서 연극도 해봤고 미국도 방문했다. 1880년 귀국하여 런던에서 살다가 이듬해 우연히 친구의 소개로 평생지기 왓슨을 만났다. 집세를 절약하기 위해 두 사람은 베이커 거리 221B에서 함께 생활한다(ACD의 첫 기명 작품 주홍색 연구 초반에 이 부분 설명이 나옴).




(사진 4

셜록 홈즈 박물관 내부, 홈즈의 서재에 있는 탐정의 흉상.

© 안병억)




에놀라  홈즈(Enola Holmes), 셜록의 여동생?

     


“셜록 홈즈는 유명한 탐정이자 학자이며 화학자이고, 저의 오빠랍니다.”

2020년 9월 말 넷플릭스에서 개봉한 영화 에놀라 홈즈(Enola Holmes)의 첫 대사이다. 만 16살에 에놀라를 두고 갑자기 집을 떠난 어머니. 에놀라의 오빠인 마이크로프트와 셜록이 집으로 와서 막내를 기숙학교에 넣어 요조숙녀로 만들려 한다. 하지만 에놀라는 여권론자이다. 그는 이를 거부하고 도주 길에 우연하게 만난 비슷한 연배의 귀족과 계속 얽힌다. 결국 갖은 고생 끝에 이 젊은 귀족을 구하게 된다. 그의 유산을 독차지하고 그가 하원에 출석해 참정권 확대에 표를 던지려는 것을 막으려는 음모가 있었다.


  이 영화는 넷플릭스에서 개봉 후 우리나라에서 단숨에 인기 5위까지 올라갔다. 그만큼 셜록의 인기가 여전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ACD 재단이 가만히 있을 리가 만무하다. 재단은 이 영화가 셜록을 너무 감성적이고 여성을 존중하는 인물로 묘사해 저작권을 위반했다며 이 소설의 저자인 낸시 스프링거(Nancy Springer)와 출판사 펭귄 랜덤하우스, 그리고 영화 제작사도 고소했다. 원작에서 셜록은 별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여권 신장론자도 아닌데. 그리고 셜록키언이 그렇게 샅샅이 뒤졌지만 홈즈의 여동생은 없다. 저자 낸시 스프링거가 상상력을 가미해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 냈다. 물론 불후의 명탐정 셜록의 명성을 십분 활용한다. 명탐정의 여동생이니 어련하겠나···            



©안병억. 이 글의 저작권은 저자 안병억에게 있습니다. 무단 복제나 전재를 금지합니다.

앵글로 색슨의 잉글랜드 침략과 옥스브리지와 영국의 대학교육, 19세기, 20세기 영국 역사는 저자의 <<하룻밤에 읽는 영국사>>에서 상세하게 볼 수 있습니다.



<<하룻밤에 읽는 영국사>>

http://www.yes24.com/Product/Goods/90908294?OzSrank=1 

레슬리 클링거의 신주석서

Leslie S. Klinger(Editor), The New Annotated Sherlock Holmes, vol. 1, vol. 2, vol. 3 (New York: W. W. Norton & Company, 2004).

https://www.amazon.com/New-Annotated-Sherlock-Holmes-Complete/dp/0393059162/ref=sr_1_5?dchild=1&keywords=leslie+klinger+%26+norton&qid=1610090265&s=books&sr=1-5  

레슬리 클링거의 인터뷰(2013년 8월 미 미네소타대학교 도서관과 인터뷰)

https://www.youtube.com/watch?v=BvT65Oym1j8 (영어 자막 표기됩니다).

1976년 개봉된 영화 <<7% 용액>>

https://www.youtube.com/watch?v=YNDH4vhxGiU&list=PL9zIlNXnHtlkY-pYj7ONN8Yw8JqEEz_1Q 

필자가 제작 운영하는 주간 팟캐스트 안쌤의유로톡 http://www.podbbang.com/ch/12999 

필자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anpye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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