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석훈, 진경 그리고 준서

2020년 봄

by 제이케이

서른 여섯 살 석훈과 서른 네 살 진경은 결혼 5년 차 맞벌이 부부다. 석훈은 현재 대기업에 재직 중이며 올해 막 과장이 되었고, 진경은 중견기업에 재직 중이며 대리 말년 차로 내년에 과장 승진을 앞두고 있다. 슬하에는 두 돌이 막 지난 세 살짜리 아들 윤서가 있다.


진경은 출산 후 육아휴직으로 1년 정도 윤서를 키우고 1년 전에 복직했다.


그녀가 출산으로 인한 공백기를 갖고 다시 회사로 복직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육아휴직이라는 제도가 있긴 하지만, 당장 출산으로 빠진 진경의 빈자리를 채울 수 없기에 그녀가 하던 일은 몇 명 되지도 않은 기존 팀원에게 분배됐다.


차라리 퇴직을 하면 결원에 대한 충원을 할 수 있는데, 복직할 자리를 남겨둬야 그녀가 돌아올 수 있기 때문에 새로운 채용 없이 진경의 업무는 남은 사람들의 몫이 됐다.


그나마 진경이 싹싹하고 회사에서 업무적으로 인정받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퇴사하지 않고 돌아오길 바라는 몇몇 사람들이 있었고, 덜 눈치보고 육아휴직을 1년이나 쓸 수 있었다.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기고 빨리 복직해서 팀원들에 나눠진 자신의 일을 다시 가져오거나, 퇴사를 해서 팀원들에게 부담을 덜어주거나 하는 등 누군가를 배려할 수 있는 선택을 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핏덩이 자식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퇴사를 하자니 높은 서울의 물가 수준과 사랑하는 가족과 머물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포기할 수 없는 벌이의 원천이었다.


자신의 자식을 스스로 키울 수 없는 것, 그 인간의 기본적인 양육이란 권리조차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에서 그마저도 원하는 바를 선택할 수 없이 일방적으로 흘러가는 삶을 석훈과 진경은 살아내고 있었다.


최소한 1년은 아이를 부모가 키워야 한다는 석훈과 진경의 임신 전부터의 의지가 실현되고, 진경은 일터로 돌아왔다. 축하와 환영, 미움과 원망이 혼재한 그 복직 첫 날부터 진경의 엄마 경숙이 매일 석훈의 집에 와 윤서를 돌본다.


‘띠띠띠띠 띠로리~’


아침 8시, 경숙이 석훈의 집에 도착했다. 매일 1분도 늦지 않고 제시간에 온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늦는다면, 진경이 많이 곤란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엄마, 오늘 윤서 점심에 잊지 말고 감기약 챙겨주고, 오늘 나는 일이 많아서 야근해야 할 거 같은데 많이 늦을 거 같아. 윤서 아빠 일찍 올 거니까 윤서 아빠 오면 나 기다리지 말고 일찍 가."


출근이 이른 석훈은 이미 집을 나선 후이고, 진경이 엄마에게 꼭 필요한 전달 사항만 전한 뒤 급하게 집을 나섰다.


감기를 거의 매달 한 번씩 달고 사는 윤서의 매끼 감기약부터 배변처리, 식사, 낮잠까지 온전히 경숙의 몫이 됐다.


경숙은 30년 동안 진경을 훌륭한 사회의 일원으로 키워냈다. 진경은 서울에 4년제 대학에도 입학했고, 사람들이 부러워할만한 회사에 취업도 했다. 그리고 좋은 남자와 결혼도 했으며, 시댁에서 그렇게 바라는 아들도 낳았다.


그런 그녀의 뒤에는 늘 경숙이 있었다. 그리고 끝날 줄 알았던 그녀의 의무는 손자의 양육으로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진경이 복직한 지 2년 차.


핸드폰을 손에 쥔 채 핸드폰을 찾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며 아이를 낳은 건지 뇌를 낳은 건지 헷갈리는 상황을 자주 경험하지만, 회사에서는 또 신기하게 문제없이 일을 해나가고 있다.


경숙이 아프거나 급한 일이 있으실 땐 석훈과 진경이 번갈아 휴가를 내가며 아이를 본다. 그렇게 석훈과 진경은 육아와 사회생활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삶을 버텨 나가고 있었다.


겨울이 막 지나가기 전의 쌀쌀한 초봄.


앞으로 두꺼운 외투는 이제 더 이상 입지 않아도 될 것만 같이 느껴졌던 금요일 오후, 경숙은 진경에게 전화를 걸었다. 매주 반복되는 내용의 통화다.


“오늘 윤서 늦게까지 봐줄 테니, 김 서방이랑 저녁이나 먹고 와.”


평일 낮의 육아는 진경의 엄마가 하지만, 그 시간에 회사에서 시달리는 것도 육아와 견줄만한 스트레스라는 것을 너무 잘 아는 친정엄마의 배려다.


오랜만에 남편과 데이트도 하고 싶고, 힘들게 일주일을 버틴 것에 대한 보상도 받고 싶은 진경이지만, 하루 종일 자신을 기다렸을 윤서한테 미안하고 또 하루 종일 윤서에 시달렸을 엄마에게도 미안해 쉽게 알겠다는 대답을 할 수 없다.


이런 미안함이 있기에 자신이 스스로 엄마의 제안을 거절해도 될 것을 석훈에게도 휴식과 여유가 필요할까 선택의 공을 석훈에게 넘겨본다.


“엄마가 오늘 저녁까지 윤서 봐준다고 오빠랑 맛있는 저녁 먹고 오라고 했는데, 저녁이나 간단히 먹고 갈까?”


“음... 장모님 좀 쉬셔야 할 거 같긴 한데, 다음 주에 휴일 있으니까 밥만 딱 먹고 들어갈까?”


석훈도 진경의 마음을 모르지 않지만, 이번 주가 회사에서 가장 바쁜 시즌이었고 그 바쁜 마무리를 끝낸 금요일이라는 설렘을 조금 더 만끽하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매번 장모님의 배려를 거절해왔는데, 너무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는 핑계를 대고 싶은 맥주 한 잔이 간절한 날이었다.


그렇게 석훈과 진경은 몇 달 만에 하는지 모르겠는 짧은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저녁은 청계천변에 있는 브런치 카페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연애할 때 자주 가던 곳인데, 정말 오랜만에 와서 그런지 Waiting도 즐거운 둘이었다.


리코타 치즈 샐러드와 파니니, 오늘의 스프로 저녁을 해결했다. 맥주는 팔지 않아 아쉬웠지만 신혼 때, 그리고 연애할 때 기분을 내보고자 선택한 곳이었다. 치맥을 하고 싶었던 석훈의 Needs 보다 함께한 추억까지 되살리고 싶었던 진경의 의지가 적극적으로 반영되었다.


저녁을 다 먹고 청계천 산책도 하고 싶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서 차도 한잔 마시고 싶었지만 아이도, 경숙도 마음에 걸려 빨리 집에 돌아가기로 했다.


‘윤서 잠들었으니 천천히 와’


저녁을 다 먹고 집에 돌아가려던 차에 경숙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아이가 잠들었다는 엄마의 카카오톡 메시지에 진경은 마음이 찡하다. 자기 전에 잘 자라고 안아 주지도 못하고 뽀뽀도 못해줬는데, 엄마 없이 잠이 들게 했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그리고 9시도 안됐는데 잠이 들 정도로 아이가 온 에너지를 쏟으며 놀았다는 것에 자신의 엄마가 그만큼 힘들었을 거라는 미안함이 복합적으로 온다.


진경은 아이가 잠들면 전기요금 아낀다고 거실에서 불 끄고 TV 보고 있을 엄마를 생각하니 더더욱 남은 금요일을 즐길 수가 없었다.


천천히 오라는 메시지를 받을수록 더욱 서두르게 되는 건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사랑과 배려에 대한 인지와 응답이었을 것이다.


석훈도 진경의 마음을 읽고 길을 재촉한다.


“장모님 빨리 집에 가셔야지, 우리가 늦게 가면 장모님도 집에 너무 늦게 들어가시겠다. 우리도 이제 그만 들어가자! 윤서 보고 싶다!”


아쉬운 마음과 왠지 모르게 석훈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진 채 집에 도착하니 9시 30분이 조금 안됐다.


“엄마, 늦었는데 자고 아침에 갈래?”


석훈의 집은 서울 동대문, 경숙의 집은 부천이다.


전철로 1시간은 가야하고 내려서 마을버스도 타야 하지만 경숙은 주말 아침에 딸과 사위가 편히 늦잠 자라고, 남은 금요일 저녁 편히 쉬라고 서둘러 딸의 집을 나선다.


경숙이 떠나고 미안함만 한가득 남은 집에서의 외로운 정적은 잠시 후 사라졌다. 그 정적을 느낄 새도 없이 석훈과 진경은 일주일의 피로를 씻어낸 후 소파에 앉았다. 피곤하지만 그냥 자버릴 수 없는 아까운 금요일 밤이었다.


씻고, 정리하고 치울 것 치우고 소파에 앉은 시간은 10시 30분.


“나 오늘 11시에 꼭 봐야할 프로그램 있어! 그거 꼭 볼 거야!”


진경이 무엇을 봐야하는지는 모르겠지만 11시부터는 자신에게 TV 채널 선택권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석훈은 진경이 쥐고 있는 리모컨을 빼앗았다.


“그럼 앞으로 30분간은 내가 보고 싶은 거 볼 테니까 아무 말 말고 봐야 해! 그리고 혼자 보면 재미없으니까 딴 짓 하지 말고 같이 보자!”


자연스럽게 석훈이 자연 다큐 채널을 틀었다. 자주 보는 채널인 듯 외워서 번호를 눌렀다.


오늘 소개되는 내용은 뻐꾸기의 삶이었다. 주제를 확인한 석훈이 입을 뗐다.


"뻐꾸기는 자기 둥지가 아니고 남의 둥지에 알을 낳는 거 알아?"


"정말? 그러다 알에서 부화도 못하고 둥지 주인이 다 깨 버리면 어쩌려고?"


석훈이 진경의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도 전에 프로그램의 해설자가 자세한 설명을 시작한다.


'뻐꾸기는 남의 둥지에 알을 낳는 ‘탁란’을 한다. 이 어미 뻐꾸기는 붉은 머리 오목눈이, 우리가 흔히 부르는 뱁새가 외출한 틈을 타 그 둥지에 알을 낳았다. 둥지에는 이미 붉은 머리 오목눈이의 알 세 개가 있다. 알의 크기 차이가 확연하다.'


얼마 후 뻐꾸기의 알이 가장 먼저 부화했다.


털도 다 자라지 못한 채 갓 알에서 부화한 새끼 뻐꾸기는 부화하지 못한 붉은 머리 오목눈이의 알을 둥지 밖으로 밀어냈다. 몸이 큰 뻐꾸기 새끼가 머물기에는 둥지가 비좁았던 것인지, 아니면 자신만의 생존을 위해 먹이 경쟁 관계에 있는 붉은 머리 오목눈이 새끼를 사전에 제거하는 것인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본능적으로 뻐꾸기의 새끼는 자신이 생존하기 가장 좋은 조건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가까스로 붉은 머리 오목눈이 새끼가 부화했더라도 선천적으로 큰 몸을 가진 뻐꾸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새끼 뻐꾸기는 갓 부화한 붉은 머리 오목눈이 새끼를 무자비하게 둥지 밑으로 떨어뜨렸다.


둥지에서 떨어진 알은 깨져 버렸고, 새끼는 목숨이 붙어있는 채로 개미 떼가 달라붙어 그 어린 생명에게 비극을 선사했다.


붉은 머리 오목눈이는 새끼 뻐꾸기가 자신의 새끼들을 다 죽게 만든 것도 모르고 열심히 먹이를 물어다 날랐다. 있던 알이 없어진 것도, 후에 부화한 새끼가 없어진 것도 마치 알고 있는 것 같았지만 약육강식의 세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듯, 둥지를 이탈한 본래 새끼들을 찾거나 구하지는 않았다.


그 무지(無智)의 헌신 덕분에 어느 순간부터 새끼 뻐꾸기는 어미 붉은 머리 오목눈이보다도 훨씬 커져 버렸고, 그 큰 체구의 새끼를 붉은 머리 오목눈이가 한참 더 부양한 후에야 날아서 둥지를 떠났다.


“붉은 머리 오목눈이가 자기보다도 훨씬 큰 뻐꾸기 새끼를 자기 자식이라 믿고 키우는 게 신기하지 않아? 그냥 멍청해서 자기 새끼도 못 알아보는 건가?”


자연 다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진경에게 관심을 유도해보고자 석훈이 말을 건넸다.


“어미 뻐꾸기가 자기 둥지에 알 낳고 간 모습을 못 봤잖아. 자기 둥지에 있는 알이니까 생긴 게 어떻든 자기 알이라 믿고 최선을 다해서 기르는 거겠지.”


진지한 답을 기대한 질문은 아니었는데, 모성애가 반영된 답변을 듣고 나니 한 번에 이해가 갔다.


‘사람도 그럴까?’라는 말이 석훈의 입 밖으로 나오기 전에 11시 만을 기다린 진경이 재빨리 리모컨을 낚아챈다.


“11시다! 이제 재미있는 거 보자!”


이제 재미있는 것을 보자는 진경의 말에 지금까지 석훈이 보던 자연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은 순식간에 재미있지 않은 것이 되어버렸고, 이번에도 석훈은 진경에게 자연 다큐멘터리에 흥미를 갖게 하지 못했다.


거실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경외’와 ‘진지’에서 ‘웃김’, ‘가벼움’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