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궁금한 그녀의 이야기

2002년 봄

by 제이케이

또 몇 번의 힘들었던 주중과 일상이 지나가고 맞이한 어느 토요일 아침이다.


최근 맡은 프로젝트의 어려움으로 인해 벌써부터 다음 주 월요일 출근이 속상한 진경과 오늘은 또 뭘 하고 윤서와 놀아줘야 하는지 고민하는 석훈이다.


봄이 되면서부터 세 살 윤서는 아파트 단지에 있는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다. 윤서가 어린이집에 다니더라도 경숙이 진경의 집에 오는 시간은 같다.


아침 8시에 진경의 집에 와서 윤서가 깰 때까지 윤서의 아침 준비와 집안 정리를 하고 윤서가 깨면 아침을 먹인 후 10시쯤 어린이집에 보낸다. 어린이집에서 윤서가 점심을 먹으면 하원 시켜서 집에서 낮잠 재우고, 진경과 석훈이 퇴근할 때까지 아이와 놀아주는 일정이다.


하루 종일 엄마, 아빠와 떨어져서 시간을 보내는 윤서가 불쌍하고 안타까워서 주말만큼은 충실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석훈과 진경이다.


그래서 주말만 되면 평일에 하지 못한 집안일과 윤서와 시간을 보내는 일을 집중적으로 한다.


특히 세 살이 된 이후로는 집에 있기 싫어하고 지루해하는 윤서 덕분에 주말만큼은 아침 일찍 집안일을 하고 온 가족이 하루 종일 밖에 나가는 게 일이다.


어쩌면 주중보다 힘든 주말이다.


지난주는 아쿠아리움과 서울숲 공원, 그 전 주는 대형 키즈카페와 공룡박물관, 이번 주는 동물원과 지자체 어린이 테마시설이다. 하루에 한군데씩 토요일, 일요일을 보내고 나면 소중한 주말이 쏜살같이 금방 지나가버린다.


윤서가 태어난 후 많은 곳을 가봤지만 특히 석훈은 동물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서울 인근에 갈 수 있는 동물원은 벌써 몇 번이나 다녀왔다. 결혼하기 전부터, 아이가 태어나면 같이 동물원에 가는 게 로망이었던 석훈에게 동물원 나들이는 이제 매우 익숙한 주말의 일상이다.


아빠를 닮아서인지 윤서도 동물을 좋아한다. 이제 말을 막 시작하려는 작은 아이가 동물들을 가리키며 내뱉는 소리에 석훈과 진경은 한없는 감동을 느낀다.


오전 11시에 가서 윤서가 좋아하는 기린과 코뿔소를 보고, 중간에 유모차에서 낮잠도 재우고 저녁까지 먹은 후 늦게 돌아왔다.


석훈은 차에서부터 잠든 윤서를 집으로 안아 옮겼고, 씻기지도 못한 채 잠자리에 뉘었다. 그리고는 가만히 잠든 윤서를 석훈이 한동안 지그시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말이 실감나는 요즘이다.


내 아이라는 것 자체만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자는 모습에서 자신의 얼굴이 보인다는 것에 신기함을 느낀다.


울기 시작하면 한없이 힘들고 생떼라도 부릴 때는 엉덩이라도 한 대 때려주고 싶을 만큼 밉지만, 아빠 자격이 없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운 수준의 인내심으로 아이에게 화라도 내고 나면 1초 만에 후회 되고 미안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는 그런 존재.


미소 한 번에 하루의 고단함이 녹아 내리고, 웃음소리 한 번에 힘이 나게 만드는 신기한 존재.


자신의 아버지도 밤에 잠든 자신을 보며 느끼셨을 감정을 이제야 석훈이 느끼면서 그의 아버지, 아니 세상 모든 아버지들에게 경외감을 느끼는 요즘이다.


조용히 방문을 나온 석훈이 다시 바쁘게 하루를 마무리 한다.


그렇게 석훈과 진경에게도 빠른 자유시간이 찾아왔다. 낮에 열심히 놀아준 것에 대한 상을 받는 느낌이다.


“아... 오늘 진짜 힘들었는데, 윤서가 일찍 잠들어서 다행이다. 맥주나 한 잔 할까?”


하루의 마무리를 아름답게 마무리하고자 석훈이 진경에게 맥주를 권한다.


석훈은 밤에 뭘 잘 먹지 않는 진경에게 Light맥주를 건네고, 자신은 칭다오 맥주를 집어 들고는 TV를 향해 있는 소파로 향했다.


“윤서 말이야. 요즘 너무 예쁘지? 이제 말 하려는지 이리 저리 내뱉는 소리들이 너무 예뻐.”


윤서를 바라보며 들었던 생각과 감동에서 벗어나지 못한 석훈이 진경에게 말한다.


“그럼~ 너무 예쁘지. 이제 말하기 시작하면 더 예쁠 걸?”


석훈은 지금보다 더 예쁠 윤서의 모습이 상상되지 않았다.


결혼 5년차, 석훈은 어릴 때부터 빨리 결혼해서 빨리 아이도 낳고 자신만의 가정을 꾸리고 싶었지만 아이만은 쉽사리 얻어지지 않았다.


결혼 후 한 번도 피임을 하지 않았는데도 1년간 임신이 되지 않았고, 1년 후 겨우 찾아온 아이도 착상 후 더 이상 자라지 않는 계류 유산으로 인해 심장 소리 한 번 듣지 못한 채 보냈어야만 했다.


의사는 계류 유산이 다섯 명 중 한 명 꼴로 겪는 흔한 일이라고 했고, 다시 준비하면 된다고 둘을 위로했으나 왜 하필 자신이 그 다섯 명 중에 한 명이었어야 했는지 세상을 원망을 했던 시기도 있었다.


생리가 규칙적이던 진경이 조금만 생리를 늦게 해도 서로에게 티 내지 않고 기대했다가 생리가 시작되면 티 내지 않고 실망했던 여러 날들이 지나고 그렇게 얻은 아이가 벌써 세 살이 됐다.


그 둘은 하루하루 감사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중이었다.


먼저 소파에 앉아 리모컨을 쥐고 있던 진경이 습관적으로 볼만한 프로그램을 찾았다.


채널을 돌리다 보니 그래도 자주 보던 시사교양 프로그램이 나왔다. 이미 프로그램이 시작한 지 꽤 지나 거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지만 아이를 키우는 부부의 관심을 끌만한 주제가 나와 그것을 보기로 했다.


짧은 시간 동안 프로그램의 MC는 초등학교에 가야 할 나이가 된 남자아이의 갑작스러운 실종을 전달해주었다.


인적이 드문 집 근처에서 갑작스럽게 사라진 아이. 그 아이를 찾기 위해 아이의 사진이 화면에 나왔고 부모가 울면서 인터뷰를 하는 것으로 그 프로그램은 끝이 났다.


올해 여덟 살이 된 아이 이준서


석훈은 같이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급격히 감정이입이 됐다. 자신이 윤서를 잃어버리면 심정이 어떨지 생각조차 끔찍한 상황을 온 마음으로 느끼며 TV를 시청하고 있는데, 울면서 인터뷰하는 엄마의 얼굴이 왠지 낯설지 않았다.


어디선가 많이 본 얼굴, 그렇지만 정확히 누군지는 모르겠기에 조금은 답답한 상황이다.


‘김소연(41) - 엄마’


화면에 이름과 나이가 나왔지만 흔한 이름임에도 전혀 기억에 없는 이름이다.


정면에서는 잘 안 보이지만 측면에서 보면 잘 보이는 왼쪽 뺨 끝에 있는 흐릿한 큰 점이 있는 얼굴만 기억 속에 남아있던 누군가였다.


‘아... 누구지? 대학 때 수업 같이 들었던 사람인가? 아닌데, 몇 번쯤 봤던 거래처 사람인가?’


남자 중학교와 남자 고등학교를 졸업한 서른 여섯 살의 석훈은 마흔 한 살의 김소연씨와의 교집합이 무엇인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아이의 특징이 어떤지, 어떻게 아이를 잃어버렸는지 등의 인터뷰가 끝나고, 아이의 사진이 나오며 자막으로 실종 당시의 상황이 묘사되었다.


실종된 아이를 찾기 위해 부모가 언론에 공개한 사진치고는 아이의 얼굴이 너무 슬픈 표정이었다.


석훈은 준서의 부모가 일부러 아이의 특징이 잘 나타난 사진을 고르려고 너무 활짝 웃거나 예쁘게만 나온 사진은 피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석훈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고, 그런 준서 부모의 생각이 충분히 공감되었다. 그래서 준서의 슬픈 사진이 오히려 그 아이를 부모의 품으로 인도할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클로즈업 된 준서의 얼굴이 반복되어 나오자 준서도 왠지 모르게 낯설지 않았다. 묘하게 석훈이 아는 누군가를 닮은 얼굴이었다.


석훈이 그 모자(母子)에 대한 기억을 더듬고 있을 때, 심각하게 같이 TV를 보고 있던 진경이 입을 뗐다.


"아이고... 우리 윤서 여덟 살 되면 딱 저런 모습일 텐데, 내가 다 마음이 아프다. 부모는 얼마나 속이 미어질까?"


정적을 깨는 갑작스러운 진경의 한 마디에 석훈의 기억이 살아났다.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