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훈이 스물 여덟 살 되던 해. 취업을 위해 막바지로 동분서주하던 대학 4학년 2학기 가을이었다.
가을이라고 하기에는 낮에 덥고, 가을이 아니라고 하기에는 밤에 쌀쌀함이 느껴지는 애매한 시기인 것이 꼭 학생과 사회인의 경계에서 사회로 나아갈 듯 못 나아가고 있는 석훈의 모습과 닮았다.
석훈에게는 본격적으로 추워질 때까지 자신의 미래에 대한 결론을 내지 못하면 안 된다는 조바심이 극에 달해 있을 때였다.
석훈은 4학년이 되자마자 시작된 취업 Race에 인턴을 포함한 수 십 개의 입사원서를 넣었지만 아직까지 좋은 소식이 없다.
면접의 기회조차 얻지 못한 서류 탈락이 수십 번이고, 겨우 몇 번 얻게 된 최종면접에서 떨어진 것만 세 번째.
지방에서 수재 소리 들으면서 서울로 대학에 입학해 지금까지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하지만 결정되지 않은 미래에 불안에 떨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석훈의 집안 환경은 여유롭지 못했다. 석훈의 부모님은 작은 식당을 운영하셨고, 동생들도 있어 석훈에게만 지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부모님께서 대학 등록금을 일부 지원해주시긴 하지만 그것조차 죄송한 마음에 대학 입학 때부터 석훈은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다. 고액과외부터 최저 시급 편의점 알바까지.
학기 중에도 하루에 몇 시간씩, 방학이면 거의 하루 종일 경제활동을 했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전부터 석훈은 대학 학자금으로 인한 대출이 1,000만 원 넘게 남아 있다.
"당구나 한 게임 칠까?"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친했고, 군대도 동반 입대로 같이 다녀온 대학 동기 원준이 수업이 끝나자 당구 한 게임을 청한다.
"이길 자신은 있고?”
아르바이트에 가야 하는 석훈이 태평하게 당구를 치자는 원준에게 뼈 있는 대꾸를 한다.
“나 아르바이트 가야 돼... 요즘 과외는 잘 구해지지도 않고 5천 원도 안 되는 시급으로 오후 내내 아르바이트해도 빚이 줄질 않는다. 한탕이라도 더 뛰어야 해. 그리고 알바 끝나면 자기소개서도 써야 하고..."
석훈은 괜히 한 번 쏘아붙인 게 미안한 마음과 자신의 현실을 보며 답답한 마음에 원준에게 푸념을 늘어놓았지만, 마음은 더 답답해졌다.
원준은 석훈과 같이 지방에서 올라온 공통점을 가지고 1학년 때부터 친했던 동기지만, 4년 치 학비와 원룸 월세 정도는 대줄 수 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학자금 대출 한 번 받아본 적은 없는, 석훈과는 환경이 조금 많이 다른 친구다.
석훈의 사정을 잘 알기에 자신의 용돈을 기꺼이 잘 써주는 고마운 친구지만 어쩔 땐 석훈의 속도 모르는 철없는 소리를 잘하는 친구이기도 하다.
그 말을 들은 원준이 한마디 한다.
"석훈아, 너 시급 5만 원짜리 아르바이트 하나 소개시켜 줄까?”
“진짜? 뭔데? 마약 운반 이런 거 아냐?”
석훈은 믿을 수 없었다.
“너 병원에 정자 기증하면 교통비 명목으로 돈 주는 거 알아? 많이 주는 데는 한 번에 10만 원씩 준다더라. 병원 왕복시간이랑 자위하는 시간 합쳐서 2시간이면 충분하고, 그렇게 따지면 시급이 5만 원이야."
10만 원은 석훈이 지금 일하는 편의점에서 20시간 넘게 일해야 벌 수 있는 큰돈이었다. 마약 운반 같은 불법도 아니고, 공사장 아르바이트처럼 몸이 힘든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솔깃하기는 하지만 선뜻 마음이 가지 않았다.
진지한 표정의 석훈을 보며 원준이 한마디 더 보탠다.
"정자 기증하면 정자 활동성 검사도 해주고, 뭐라더라... 기증도 되게 조건이 까다로워서 온갖 검사 다 해서 통보 해준다고 하더라고... 그리고 무엇보다 불임 부부에게 좋은 일 하는 거잖아."
원준이 천성이 착한 친구라는 것은 알지만 그렇다고 평소에 공익에 기여하고 남을 돕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가 아니라는 것도, 10만 원의 용돈이 급히 필요한 친구가 아니라는 것도 석훈은 잘 알고 있기에 원준이 왜 저런 내용을 자세히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원준이 계속해서 말을 잇는다.
"근데, 이거랑 비슷한데 이거보다 훨씬 시급 센 게 있다?"
진지하게 원준의 이야기를 듣고는 있었지만,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단정지어버린 석훈은 계속 저런 이야기를 듣고 있어야 하나 싶었다.
학업과 취업, 아르바이트까지 해야 하는 석훈에게 마음에서 우러난 기증도 아니고 자신의 일부를 돈 받고 파는 것은 왠지 나쁜 짓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대리부라고... 대리모라는 말은 들어봤지? 남자도 대리부 같은 게 있는데, 어떤 유전자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수백만 원까지 준다고 하더라... 그리고 합법적인 건 아니지만 이해관계자 모두의 동의를 받고 유부녀를 임신시킬 수 있지. 생각만 해도 완전 흥분되지 않냐?"
이 말로 원준이 왜 정자 기증과 관련된 것을 자세히 알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석훈은 원준의 특이한 성적 판타지를 이해하는 문제를 떠나 수백만 원이라는 말에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취향 참 특이하네.”
실없는 소리 하지 말라는 듯 대답은 했지만 생각해 볼 만했다.
남편이 있는 누군가와 자는 건 그동안 전혀 생각해본 적도 없고 원하는 바도 아니지만, 수백만 원이라는 큰돈은 탐이 났다. 눈 딱 감고 사랑하지 않는 누군가와 관계 몇 번만 하면 취업도 못한 자신이 가진 모든 빚을 청산할 수 있고, 심지어 평생 고생만 하신 부모님 가게 월세라도 내라고 드릴 수 있는 돈이었다.
불법적이고 비윤리적인 수단임에도 석훈은 스스로 돈이 절실하다는 처지 때문에 불임부부를 돕는다는 명분을 앞세워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싶었다.
“난 그런 취향 아니거든? 쓸데없는 소리 그만해. 나 아르바이트 가야 해.”
석훈이 의식적으로 거절의 대답을 하고 자리를 뜨려 하자 원준이 결정타를 날린다.
"우리 정도 학벌이면 그래도 명문대 축에 속하고, 넌 키도 큰데다 술, 담배도 안 하니까 진짜 비싸게 팔릴 걸? 같이 해보자!”
'비싸게 팔려?'
석훈은 하겠다고 결정한 것도 아닌데 벌써 자신이 상품화가 된 것 같아 매우 언짢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자신보다 키 작고, 술, 담배 하는 원준은 석훈보다 훨씬 낮은 값어치로 매겨진다는 뜻이었다.
좋은 친구로 수년 째 같이 하는 친구지만,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석훈을 기죽게 했던 원준보다 나은 값어치로 평가받을 수 있다는 것이 내심 나쁘지 않았다.
"하긴, 내가 너보다 키 10cm는 크니까 훨씬 비싼 건 맞겠다. 일단 알바 가야 하니까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알바 끝나면 너희 집으로 갈게. 나는 안 해도 너 어떻게 하는지는 보고 싶긴 하다."
석훈은 아르바이트 내내 원준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편의점에서 매대에 물건을 정리하면서도, 손님에게 계산을 해주면서도 손쉽게 돈 벌 수 있는 그것과 이 노동의 가치가 순간순간 비교되었다.
재고 정리를 하면서 무거운 상자에 검지를 찧었다.
“아우, 씨발!”
찧은 손을 입술로 물었다가 흔들었다가 온몸으로 아픔을 표출한다.
처음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도 찧어보지 않았던 손이었다. 온통 딴생각을 하다 보니 탈이 난 것이다. 석훈은 결정의 순간이 왔음을 직감했다.
아르바이트가 끝나갈 때쯤. 석훈은 대략 어느 정도나 받을 수 있는지 한 번 알아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생겼다. 그리고 편의점 문밖을 나서자 그것을 꼭 해야겠다는 의지로 변했다.
석훈은 곧바로 원준의 원룸으로 향했다. 오늘 쓰기로 한 자기소개서는 못 쓸 수도 있게 됐다.
‘딩동 딩동’
원준이 기다렸다는 듯 바로 문을 열고, 컴퓨터 앞으로 석훈을 끌고 갔다. 모니터에는 정자를 거래할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가 열려있었다.
원준이 몇 시간 동안 여러 글들을 보며 이 시장에서의 추세나 적정한 가격 등을 분석했던 것 같았다.
화면에는 많은 대리부 지원자들이 자신의 유전자를 어필하는 글과 바라는 액수를 적어두었다.
'20대 중반/지방 국립대/비흡연/키175/ 선금 50만 원, 임신 확인 시 100만 원, 자연임신 원함'
'자연임신 원함?'
이게 주목적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모든 글에 이 조건이 붙어 있었다. 마치 이 사이트의 글 작성의 Rule 인 것만 같았다.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니 ‘불법’이라고 하는 대리부 행위를 병원 같은 공적인 기관에서 하는 것도 이상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한 정자 기증자를 병원에 데리고 가서 ‘이 사람 정자를 내 난자와 수정시켜서 내 몸에 착상시켜 주세요.’라고 하는 게 가능한건지도 의문이었다.
“우리가 조건이 훨씬 나으니까 저거보다 훨씬 불러도 되겠어.”
이런 글을 처음 접한 석훈이 어안이 벙벙한 사이, 석훈을 기다리며 분석을 해온 원준이 그와 석훈의 정자에 대한 적정 가격을 도출해냈다.
‘20대 후반/서울 명문대/키174/ 선금 100만원, 사후 100만 원/ 자연임신 원함’
원준은 자신의 가치를 200만 원으로 정했고, 비흡연에 키 185cm인 석훈에게는 300만 원이라는 가격표를 붙여주었다.
“400만 원으로 해줘. 선금 100만 원, 사후 300만 원.”
석훈의 말에 원준이 깜짝 놀란다.
“안 할라고?”
“180cm 넘는 키가 흔해? 난 그냥 180cm도 아니고 185cm인 데다가 담배도 안 피우고 술도 안 마신 지 꽤 돼서 얼마나 애들이 싱싱한데. 난 그 정도는 받아야겠어.”
원준과의 가격차이가 100만 원 밖에 나지 않는 것이 성에 차지 않은 석훈이었다.
석훈은 원준의 원룸에 오는 길에 기왕 양심에 찔리는 행동을 하는 마당에 싼값에는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고, 가격을 정할 수 있다면 자신에게 늘 자격지심을 주던 원준의 값어치보다 두 배는 받아야겠다는 기준을 세우고 온 것이다.
어차피 불법이라는 말에 안 그래도 찝찝했던 차, 거래가 성사되면 좋지만 안 돼도 그만이었다.
“에이, 여기 목록을 봐라 400만 원짜리가 있나. 이건 안 하겠다는 거지.”
석훈의 의도를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의 거래만 성사될까 불안한 원준이었다. 혼자 나쁜 짓 하는 것에 대한 부담일 것이다.
“안 되면 그만이고, 어서 올려 집에 가게. 내일 또 새벽에 일어나서 아르바이트 가야 해. 오늘 자기소개서 쓸라고 했는데 도저히 피곤해서 못쓰겠다. 뭐 어차피 써도 광탈이겠지만...”
석훈은 쿨하게 원준의 원룸을 나왔지만 그래도 내심 거래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돈도 돈이지만 이번 기회에 늘 여유롭고 당당했던 원준에 대한 자격지심을 어떻게든 극복하고 싶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연락은 석훈에게 먼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