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탁란

II. 2012년 가을

by 제이케이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토요일 저녁, 석훈은 서진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다음 주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 OO역 근처 편의점 앞 3시.'


'알겠습니다.’


석훈의 스케줄 따위는 물어보지도 않고 일방적인 시간, 장소가 정해졌다.


석훈은 돈을 지불하는 쪽이 갑(甲)이고, 그 갑이 큰돈을 지불했다면 이 정도는 감안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기가 2학기 중간고사가 끝난 이후인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서진과 약속한 곳은 석훈이 한 번도 와보지도, 들어보지도 못한 곳이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석훈이 사는 곳과 다니는 학교와는 완전 반대인 곳이었고, 주변에 유흥가가 밀집한 곳이었다.


서진이 석훈으로부터 건네받은 서류들에 적힌 석훈의 생활권을 고려해 준 것만 같았다. 물론 서진 부부의 생활권도 고려한 곳일 거라고 석훈은 짐작했다.


서진을 만난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과정을 원준에게 자세히 공유하지는 않았다. 원준이 석훈을 만날 때마다 언제 만나기로 했는지 따위를 물어 보기는 했으나 뭔가 나쁜 짓 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 때문인지 솔직하게 말하기가 어려웠다.


다만 얼마 후 원준에게도 매수인으로부터 연락이 왔고, 그때부터 원준의 질문은 석훈이 앞으로 해야 할 일 보다 그동안 해온 일에 대한 질문이 많아졌다. 석훈도 한 배를 탔다는 안도감에 보다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다시 며칠이 흘러 서진으로부터 통보 받은 날이 되었고, 석훈은 이날도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피곤한 몸으로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약속 시간으로부터 10분 정도 지나자 30대 초반의 나이에 160cm 정도 돼 보이는 키, 마르고 하얀 얼굴의 여자가 석훈 쪽으로 걸어왔다. 소연에 대해 어떠한 사전 정보도 듣지 못한 석훈은 자신 쪽으로 다가오는 그녀가 오늘 자신의 유전자를 가져갈 사람이라고 짐작했다.


“안녕하세요. 저기... 김석훈 씨죠?”


가까이서 보니 소연은 석훈이 생각한 것보다 미인이었다. 왜 서진이 ‘다른 의도’를 갖지 않게 하기 위해 그런 조건을 이야기 했는지 이해가 됐다.


“네네... 맞습니다. 안녕하세요.”


편의점 앞 길거리에서 석훈과 소연은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며 멀뚱히 서 있었다.


짧았지만 길게 느껴졌던 정적을 깨고 석훈이 입을 뗐다. 석훈이 가만히 있으면 계속 이 자리에 서 있을 것만 같았다.


“저쪽으로 가시죠!”


유흥가가 많은 곳이라 어디로 고개를 돌려 봐도 모텔 천지였다. 안내를 한답시고 가자고 했으나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한 석훈이었다.


그래도 큰돈을 받은 입장에서, 그리고 남자로서 어리숙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깨끗한 외관과 시설이 좋을 것만 같은 이름을 가진 모텔로 들어갔다.


“대실이요.”


평일 대낮에 20대 후반의 남자와 30대 초반 여자가 같이 온 모습에 모텔 주인에게 마치 불륜처럼 보이지 않을까 석훈은 내심 걱정이 되었다. 그녀가 유부녀이기 때문에 불륜이 아니라고 할 수도, 그녀의 남편의 동의가 있었으니 불륜이라고 하기도 애매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텔 주인 입장에서 불륜인 상황과 불륜이 아닌 상황을 얼마나 많이 봤을지 생각하니 별 의미 없다고 생각하고 대실료 3만 원을 지불했다.


서진과의 만남에서 명확히 이야기 하진 않았지만, 석훈의 유전자 값 400만 원에는 건강검진비와 모텔비 3회분이 포함되었다.


‘306호’


석훈과 소연은 좁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306호 방 앞에 멈춰섰다. 평일 낮이라 그런지 사람도 없고 고요했다.


석훈은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처음 보는 여자와 관계를 맺는 것도, 임신을 목적으로 관계를 맺는 것도 처음이었다.


떨리지 않는 척 자연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가 외투를 벗어 소파 위에 올려 두었다.


“시작할까요?”


석훈이 숨소리도 들릴 만큼 가깝게 소연에게 다가가 시작을 알렸다.


“씻고 오세요.”


“아 네...”


석훈이 자연스럽게 떨리지 않는 척 리드하려 했으나 소연은 차가운 말투와 표정으로 그의 노력을 머쓱하게 만들었다.


살짝 마음이 상한 석훈은 일부러 윗도리를 벗으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긴장하지 않은 척 흥얼거리며 샤워기의 물을 틀었다.


석훈의 머릿속은 샤워를 길게 해야 할지, 짧게 하고 빨리 일을 치르고 여기서 나가야 할지. 옷을 입고 화장실을 나가야 할지, 수건으로 허리를 감고 나가야 할지 온갖 고민으로 가득했다.


많은 고민 중에서도 관계를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가장 컸다.


석훈이 샤워기의 물을 잠갔다.


소연에게 자신이 곧 나간다는 신호를 주려 일부러 물 닦는 소리를 크게 내고, 마지막까지 고민하던 복장은 수건으로 하체만 감고 나가기로 했다.


화장실을 나와 침실 쪽으로 오니 소연은 침대에 이불을 덮고 누워있었다.


‘뭐야... 나만 씻는 거야? 내가 안 씻고 나왔을 것 같다는 건가?’


좀 전에 머쓱함을 선사한 소연에게 약간의 뒤끝이 남아 있던 석훈은 준비할 시간을 벌기 위해 씻고 오라고 했던 소연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다..


소연은 고개를 반대로 돌리고 똑바로 누워있었고, 이불을 상체까지 덮었지만 새하얀 어깨라인이 보였다. 이불을 걷으면 어떤 장면이 펼쳐질지 상상하자 석훈의 하체에 바로 반응이 왔다.


일말의 애정과 교감이 없는, 심지어 자신을 차갑게 대하는 상대와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 걱정했던 것은 기우였다.


살짝 이불을 걷어 옆자리로 들어갔다. 소연은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 고요한 방안에 숨소리만 크게 들렸다.


석훈은 소연의 방향으로 몸을 옆으로 돌려 그녀의 몸으로 손을 뻗었다.


석훈의 손이 소연의 살에 닿자 소연이 얼굴을 찡그렸다.


적극적인 거부는 안 하지만 싫은 내색이 역력하다. 석훈은 적잖이 당황했다. 마치 빨리 끝내고 이 방에서 나가라는 것만 같았다.


“시작하겠습니다. 빨리하고 갈게요.”


특별한 목적으로 맺는 관계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상호작용을 기대했던 석훈도 소연의 처음과 다른 태도와 말투에 오늘의 이 거사가 쉽지 않을 것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소연의 싫어하는 내색을 느낄수록, 석훈의 마무리가 늦어졌다.


억지로 빨리 끝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해서 그런지 관계를 맺는 것에 집중할 수 없었고, 관계를 하는 내내 소연의 찡그린 표정과 약간 신경질적인 신음 소리에 자꾸 신경이 쓰였다.


온 마음을 다해 절정에 다가가더라도 고개를 돌린 소연의 왼쪽 뺨에 있는 점이 최후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리기 일쑤였다.


‘아... 내일은 또 어떻게 하지...’


석훈은 내일과 모레가 걱정이었다.


관계를 하는 동안 자신의 기분이야 어떻든 돈을 받고 하는 거니 상관은 없는데, 임신은 시켜야 할 의무가 있기에 관계 자체가 안 된다면 큰일이었다.


관계에 집중하지 못하자 남근에 힘이 빠져버리는 위기가 여러 번 찾아왔지만, 그래도 처음 만나는 사람과의 관계, 남의 아내를 임신시킨다는 상황을 최대한 상기시키며 어렵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사정이 끝나자 소연은 아무 말 없이 이불을 덮으며 엎드렸고, 고개는 석훈이 있는 곳의 반대방향을 향했다. 마치 석훈에게 ‘이제 끝났으니 더 이상 내 몸은 보지 말고 빨리 여기서 나가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내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봐요.”


그녀가 행동으로 보여준 재촉에 석훈은 씻지도 못한 채 재빨리 옷을 입고 모텔을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아... 돈이고 뭐고 다신 못할 짓이네...’


석훈은 땀 범벅이 된 채 옷을 입은 찝찝함을 안고 자신의 옥탑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씻자마자 오늘 겪은 일을 상기할 틈도 없이 아르바이트를 하러 집을 나섰다.


다음 날, 석훈은 같은 시각, 같은 장소로 나갔다. 이번엔 소연이 먼저 와 있었다.


“가시죠.”


익숙하게 어제와 같은 모텔로 들어갔다.


어제 상황을 생각하면 분위기 따위 신경 쓰는 건 무의미했고, 이 모텔 정도의 인테리어 수준이면 관계를 하는데 지장 없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석훈이 부담해야 하는 돈이기에 더 비싼 비용을 지불하기도 싫었다.


석훈은 외투를 소파 위에 올려두고 아무런 말없이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기 물을 틀었다. 어제 잠에 들 때가 돼서야 소연이 왜 자신에게 씻고 오라고 했는지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석훈은 소연이 옷을 벗고 침대에 누울 적당한 시간을 계산해서 샤워를 마치고 나왔다. 그리고 어제와 같이 침대 옆으로 가서 이불을 들추고 옆에 누웠다.


큰 변화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작은 변화도 없이 소연의 반응은 어제와 같았다.


싫은 티 팍팍 내는 여자와 어쩔 수 없이 관계를 해야 하는 남자의 심정은 별로 유쾌하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석훈은 소연의 태도에 점점 기분이 나빠졌다.


상대가 원하지 않는데 자신이 억지로 강요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마치 자신이 범죄라도 저지르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억지로 하자고 한 것도 아니고, 자기도 목적이 있어서 맺는 관계라면 사정을 도와주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방해는 하지 말아야지. 이렇게 얼굴 찡그리며 기분 나쁜 티를 내면 사정을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사랑하는 남편이 아닌 다른 낯선 남자와 억지로 관계를 하는 여자의 심정을 모르는바 아니었으나, 자꾸 싫은 티를 내는 소연의 태도에 마무리가 늦어지고 자신은 힘만 드니 짜증이 났다.


그리고 어디 가서 못났다는 평가를 듣지 않은 자신의 외모가 저렇게 싫은 티를 낼 만큼 맘에 안드는지를 생각하게 될 만큼 자존심도 상했다.


기분 나쁜 순간순간을 여러 차례 참아가며, 할 수 있는 모든 집중을 다해 한참 만에 겨우 마무리하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너무 힘이 든 나머지 소연의 가슴 위로 석훈이 포개졌는데, 소연이 약간은 강하게 석훈을 밀쳐내고 곧바로 몸을 돌려 엎드려버렸다.


탈진할 것처럼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와중에 밀쳐진 석훈은 소연의 태도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숨 좀 쉬고 가면 안돼요? 꼭 그렇게 빨리 가라고 등 떠밀어야겠어요?”


어제보다 더 힘들게 마무리를 한 까닭에 온몸이 땀으로 젖은 석훈은 오늘만큼은 숨 좀 돌리고, 깨끗이 씻고 이 모텔을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마무리를 하자마자, 아니 숨 쉴 틈도 없이 자신을 밀쳐버리고 뒤돌아버린 소연의 모습에 재촉 당하는 느낌을 받자 석훈은 자신도 모르게 소연에게 큰 소리로 짜증을 내버렸다. 그리고 몇 마디를 더 보탰다.


“근데요. 이번에 임신 안 되면 다음 달에 또 만나서 이걸 해야 하는데, 저도 그쪽도 바라는 바 아닌 거 같거든요? 이번에 어떻게든 끝내야 되는데 자꾸 이런 식으로 싫은 티 팍팍 내시면 다음 달에 또 만나야 하는 불상사가 생길 것 같아요.


저도 전혀 흥분 안돼서 사정하는 양도 적고, 무엇보다 사랑도 없는 관계인데 섹스도 이렇게 기분 나쁘게 하면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아이는 시작부터 너무 불행하지 않겠어요?"


소연은 엎드린 채 미동도,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아 진짜 기분 더럽네.”


석훈은 소연에게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한 채 모텔을 나왔다.


화가 나서 내뱉은 말이긴 하지만 그녀가 간절히 얻고자 한 아이에 대해서까지 그렇게 말했어야 했나, 그녀의 아픈 곳을 건드린 것 같은 느낌에 석훈은 조금 미안했다.


자기 전까지 오늘 자신이 한 말을 대뇌이고 반성한 석훈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날이 되었다.


석훈은 제발 오늘이 마지막이길 바라며 약속 장소에 나갔다. 그리고 조금 빨리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소연이 먼저 와 있었다.


“안녕하세요.”


예상치 못하게 소연이 먼저 인사를 했다. 어제 소연에게 화낸 게 조금 미안해서 먼저 웃으며 인사하려던 찰나였다.


“아, 네 안녕하세요. 갈까요?”


작은 노력으로 어제의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잃은 석훈은 조금은 마음이 무거웠다.


오늘도 같은 모텔로 갔다. 석훈이 살면서 다신 안 올 곳이었다.


“씻고 올게요.”


오늘도 석훈이 소연에게 준비할 시간을 갖도록 자연스럽게 씻으러 들어갔고, 어느 정도 시간을 보낸 후 적당한 때를 맞춰 나왔다.


석훈이 화장실에서 나오자 소연이 외투만 벗고 옷을 입은 채 침대 옆에 서 있었다. 하체만 수건으로 감고 나온 석훈은 순간 부끄러워졌다.


자신이 소연에게 준비할 시간을 충분히 주지 못했다고 생각한 석훈이 화장실로 다시 들어가려던 찰나, 소연이 말했다.


“이리 오세요.”


소연의 부름에 그녀 앞으로 석훈이 다가가자 소연이 석훈의 손을 잡고 자신의 어깨로 올렸다.


“시작하세요.”


잉태될 아이의 행복을 위함인지, 그래도 원활한 마지막 관계를 원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소연의 부드러운 태도와 그렇게 인위적이지 않은 관계의 시작 덕분에 석훈은 오늘만은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 것 같았다.


석훈은 소연에게 입맞춤해도 되는지 묻고 싶었지만, 그녀가 옷을 벗기는 것부터 허락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니, 정도를 크게 벗어나지 않은 범위에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소연의 어깨에 올린 손에 힘을 주고, 그녀의 눈을 응시했다. 소연이 석훈의 눈을 똑바로 보는 듯 했지만 이내 살짝 눈을 감았다. 석훈은 가볍게 입을 맞추는 것을 시작으로 천천히 옷을 벗기며 침대에 그녀를 눕혔다.


가볍지만은 않은 터치에 그녀 반응이 어제와는 달랐다.


그녀가 어제와 같은 불쾌함을 느끼지만 참는 것인지, 아니면 석훈을 받아들이고 이 순간만큼은 즐기는 것인지 모르지만 석훈은 처음으로 기분 나쁘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땀에 흠뻑 젖도록 힘들었지만 기분 좋은 마무리가 끝났다.


석훈은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서진은 어떤 사람인지 등에 대해 묻고 싶었다. 자신이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앞으로 태어날 자신의 유전자를 가진 아이가 자랄 가정환경이 어떨지 궁금했다.


소연의 태도변화에 조금은 친해진 것 같기도 하고, 관계에 대한 긴장이 풀어진 것도 그런 용기가 난 이유일 것이다.


어제처럼 사정이 끝나고 소연의 가슴 위로 포개졌다. 그런데 소연이 또다시 석훈을 살짝 밀어내고 돌아서 엎드려버렸다.


나란히 누워서 팔베개를 해주고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것은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관계를 마무리 짓는 여운을 즐길 마음의 여유는 가질 수 있을 줄 알았던 석훈이었다.


‘다 끝났으니 또 저러네. 아까 내게 친절했던 건 역시 목적 지향적인 거였나?’


석훈은 약간 실망했지만, 마무리야 어떻든 이제 볼일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옷을 입으려 했다.


“씻고 가세요. 땀 많이 흘렸잖아요.”


소연의 말투가 차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빨리 가라고 자꾸 등 돌려 엎드리는 것 아니에요?”


소연의 언행불일치에 대해 석훈이 물었다.


“관계가 끝나고 엎드려 있으면 임신이 더 잘 된다는 말이 있어서요.”


첫날부터 그녀의 태도를 오해해 온 석훈이었다.


석훈은 그녀의 말에서 오랫동안 불임으로 마음 고생한 그녀의 절박한 심정을 느낄 수 있었고 먹먹했다.


그녀가 말을 잇는다.


“그리고 그제랑 어제... 제 맨살에 닿는 그쪽 손이 너무 차가웠고, 준비 없이 바로 시작하다 보니 하는 내내 아파서 표정이 안 좋았던 거예요. 너무 싫은 티를 낸 게 아니라...”


소연이 그렇게 많은 말을 하는 걸 처음 본 석훈은 신기함을 느낄 새도 없이 미안함에 어쩔 줄을 몰랐다.


“제가 오해했네요. 처음 터치할 때부터 표정 안 좋으셔서 마냥 싫은 줄만 알았어요. 저는 빨리 끝내야만 하는 줄 알고 그만... 그리고 어제 한 말은 정말 미안합니다.”


“아니에요. 땀 많이 흘리셨으니 씻고 가세요.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석훈의 마음이 많이 복잡했다. 먹먹함. 미안함. 연민 등이 복합적으로 석훈의 머릿속에 혼재했다.


“저기... 괜찮으시면 한 번만 더 해도 될까요? 오늘이 마지막이기도 하고, 한 번 보다는 두 번 하면 더 확률이 높을 거잖아요. 다른 의도는 없습니다.”


석훈은 그녀의 절박함에 진심으로 도움이 되고 싶었다. 혹시나 오해를 살까 다른 의도가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석훈을 잠시 응시하던 소연이 다시 몸을 돌려 똑바로 누웠고, 그렇게 둘은 다시 호흡을 맞췄다. 준비 단계부터 마무리까지 천천히 그리고 충분히, 여느 커플과 다르지 않게 교감을 나누었고, 사정 후 소연이 자연스럽게 엎드릴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렇게 소연과 마지막 관계를 마치고 모텔을 나온 석훈은 여전히 마음이 복잡했다. 임신이 꼭 되길 바라는 마음과, 다음에 한 번 더 그녀를 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혼재했다.


그녀를 마음으로 사랑해서 또는 육체적 관계를 한 번 더 맺고 싶다는 등의 이유가 아니라 명확한 이유 없이 한 번쯤은 더 봤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어제와 그제보다 훨씬 좋은 마음으로 모든 일을 마쳤지만 그녀에 대한 복잡한 감정, 그리고 이 행위에 대한 후회 등이 계속 집으로 돌아가는 석훈을 따라왔다. 그리고 옥탑방 대문 앞에 서서 생각을 정리했다.


석훈은 이번에 일이 끝까지 잘 마무리 되면, 다시는 이런 복잡한 감정 중심에 서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김석훈이라는 뻐꾸기는 서진과 소연의 가정에, 그리고 생전 처음 본 여자의 자궁에 처음이자 마지막 탁란을 마치고 자신이 살던 옥탑방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얼마 후 서진에게서 문자가 왔다.


‘임신 확인했고, 저번에 보낸 계좌에 돈 입금했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석훈은 큰돈을 번 것에 대한 기쁨보다 다시 소연을 볼 수 없는 아쉬움이 조금 더 크게 다가왔다. 그리고 이로써 자신과 서진, 그리고 소연 세 사람의 인연은 오늘로써 끝이라고 생각했고,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취업준비생으로서 자신의 미래에 집중했다.


그로부터 두 달 뒤, 석훈은 자신이 지원한 수십 개의 회사 중에 가장 가고 싶어 했던 한 군데에 최종 합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