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혼란

III. 다시 2020년 봄

by 제이케이

석훈은 8년 전에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하던 그녀 이름이 김소연이라는 것을 TV를 보고 처음 알았고, 그 실종된 아이가 자신의 유전자로 태어난 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왜 준서 얼굴을 보며 묘한 기분이 들었는지, 이상하게 익숙했던 얼굴이 자신의 어린 시절의 모습과 닮은 구석이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현재 자신의 아들 윤서와 이름도 돌림자처럼 같은 음이 있는 것도 억지로 이어 붙인 인과관계처럼 모든 게 운명처럼 연결되는 것 같았다.


사진 속에 있는 저 아이가 자신의 생물학적인 자식이라는 것, 벌써 여덟 살이나 된 자신의 핏줄이 저렇게 생겼다는 것, 그리고 그 아이가 실종됐다는 것.


하나하나 머릿속에 떠오르는 깨달음들이 시간적 간격을 두지 않은 채 한꺼번에 석훈의 머릿속에 얽혔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정리될 때마다 감정 변화를 일으켰다.


자기 핏줄을 확인한 신기함과 반가움, 하지만 지금 자신은 아내 진경과 아들 윤서가 있다는 현실에 그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으면 하는 두려움, 그리고 그 아이가 실종됐다는 걱정과 초조함까지.


석훈은 자신의 내면에서 수많은 감정 변화를 겪는 동안 인터뷰 속 그녀의 옆에 있던 준서의 아빠가 그때 자신이 만났던 서진이 아니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로 인해 감정 변화의 마지막은 단순 실종이 아닐 것 같다는 불안함에서 멈췄다.


석훈은 사진 속 준서가 웃지 않은 것도 그제야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실종이라는 사건 자체도 슬프고 속상한 일인데, 더 안 좋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최근에 나왔던 아이와 관련된 흉흉한 뉴스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석훈 자신도 윤서를 키우면서 아이에게 화내고, 짜증냈던 상황들이 함께 떠올랐다. 자신의 아이에게조차 화가 참아지지 않고 미운 순간순간들이 있었음을 깨닫자 더욱 불안해졌다.


‘아닐 거야... 무사히 제 집으로 돌아갈 거야. 새아빠가 저렇게 착하게 생기고 눈물까지 흘리며 걱정하는데, 아무 일 없을 거야. 그리고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니야. 잘 돌아올 거라 믿자!’


석훈은 자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TV를 보고 있는 동안 ‘슬픔’이라는 하나의 감정 위에 여러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가며 신기함, 두려움, 초조함, 불안감으로 현재 느끼는 감정들이 명확히 정의가 됐지만, 자신이 지금 그 아이를 걱정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끝까지 명확해 지지 않았다.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며 외면하다가도 또 준서가 무사할 거라는 자기 위로로 다시금 원래의 궤도로 걱정과 불안이 되돌아왔다.


그런 무한의 반복된 걱정 끝에 잠을 한숨도 이루지 못하고,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원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술 한 잔 하자. 7시 명동 족발, 안 오면 혼자라도 마신다.’


대학 졸업 후에도 회사가 가까워서 종종 만나던 원준이다.


원준에게 말고는 털어놓을 이야기도 아니었고, 수백 번 답답함에 몸부림치다가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석훈이 원준을 불러내기로 한 것이다.


“너 대리부 그거 기억나지?”


이미 소주를 반 병 이상 먼저 마시고 있던 석훈이 원준이 도착해서 자리에 앉자마자 작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고 깜짝이야. 미친놈아 소리 좀 낮춰, 뭐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그걸 그리 크게 얘기해!”


갑자기 튀어나온 대리부라는 단어에 원준이 깜짝 놀랐다.


“야! 이 나쁜 놈아, 그럼 뭐 그리 자랑스러운 일도 아닌데 나더러 하라고 꼬드겼냐!”


석훈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진짜 미쳤네. 갑자기 왜 그래! 그래도 생각해보면 불임부부에게 좋은 일한 거고, 너도 적지 않게 돈도 벌었잖아. 갑자기 왜 그러는데, 제수씨가 알았어? 넌 한 번 밖에 안 했잖아?”


원준은 석훈의 가정에 무슨 일이 있는지 걱정이 됐지만, 이내 수 년 전에 불법으로 한 행동이 자신에게도 피해가 있을만한 일이 생긴 건지 걱정이 됐다.


“그렇게 해서 낳은 애가 벌써 여덟 살이래, 그리고 글쎄 우리 윤서보다 다섯 살이나 많은 내 첫째 아들이 집 근처에서 실종됐단다.”


석훈의 목소리에 떨림을 느낀 원준의 목소리도 커졌다.


“뭐야, 너 그걸 어떻게 알았어? 대리부 해달라고 연락한 사람한테 연락 왔어? 그 사람이 왜 갑자기 연락을 해!”


“차라리 그랬으면 다행이게. 그 애가 실종됐다고 TV에 나오더라. 나랑 잔 그 여자가 애 잃어버렸다고 TV에서 인터뷰 하더라고. 근데 그 아이 아빠라고 같이 나온 사람이 전에 본 대리부 의뢰한 사람이랑 다르더라고!”


그 말을 들은 원준은 그게 무슨 의미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대리부를 의뢰했던 가정이 파탄 났고, 그 여자가 재혼을 한 이후 아이가 실종됐다는 단편적인 사건의 부분적인 이야기로만 들렸다.


"아이 잃어버린 건 그렇다 치고, 그 애 아빠가 이전에 본 사람이랑 다른 게 왜? 어차피 그때 너한테 의뢰한 사람도 실종된 아이 친아빠가 아닌 건 똑같잖아.”


“그래도 나한테 의뢰한 사람은 그 아내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간절히 원했고, 그래서 나 같은 사람한테 돈까지 줘가면서 자식을 얻은 거잖아. 그럼 적어도 애를 어떻게 하거나 하진 않았을 거잖아, 근데 계부는 좀 다르잖아.”


“네가 TV에서 본 그 아이 아빠라는 사람이 이전에 네가 봤던 그 사람이라면 이런 걱정 안 할 거 같아? 친자식이 아니라는 이유로 또 불안해했을 거잖아. 그리고 단순 실종일 수도 있어. 애들 어릴 때 다들 한 번씩 잃어버리고 하잖아. 그리고 무엇보다 네 자식도 아닌데... 왜 네가 신경을 써?”


"음... 모르겠어. 생물학적으로 내 자식이라는 건 사실이고, 그 아이가 어떻게 자랐는지 나도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뭔가 마음이 이상해.”


원준을 만나러 오기 전부터 자신 스스로에게 계속 던졌지만 답을 얻지 못했던 질문이었다.


석훈이 말을 이었다.


“나도 윤서를 낳기 전까지는 아동학대 기사나 실종 사연 같은 거 봤을 때 그냥 조금 안타까운 정도였어. 그런데 윤서를 낳고 나니까 생판 모르는 윤서 또래의 아이의 고통에 마음 아파지고 감정이입이 되더라.


하물며 실종된 서진이는 내가 생물학적인 아버지잖아... 그리고 그 아이 사진을 보면 볼수록 내 어릴 적 모습이 보여...


그 아이가 태어났을 때 어떤 모습이었을지, 자라면서 어떤 행동들을 했을지, 나랑 어떤 모습이 닮았는지 같은 것들이 상상되고, 생각하면 할수록 그 아이가 내가 지금 그렇게 사랑하고 아끼는 윤서랑 뭐가 다른가 싶어.”


“지금 네 아들 윤서랑 다를 게 없는 것 같은데, 아이는 실종됐다고 하지, 아이 아빠는 바뀌어 있지. 그 아이가 8년 동안 살아오면서 많이 힘든 일을 겪었을 것 같다는 것에 죄책감 같은 게 드는구나. 이제 뭔지 좀 알 것 같아.”


원준은 아직 아이가 없는 자신이 느낄 수 없는 뭔가가 석훈에게 있다는 것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같은 자식인데, 오히려 윤서만큼 사랑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 내가 사랑해주지도 못했는데 저런 고통을 겪게 된 게 너무나 슬프고, 저 실종이 단순 실종이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들면서 자꾸 신경 쓰이고 고통스러워...


만약 그 아이가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봤다면, 그냥 별 생각 없었을지도 몰라. 그냥 먼 친척 보는 느낌?”


원준은 석훈이 말하는 동안 그가 결혼도 하기 전에 세상에 내보낸 세 명의 생물학적 아이가 이런 일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석훈이 계속 말을 이었다.


"너랑 내가 그때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을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이 나랑은 아주 무관할 거라고만 생각했어...


그리고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정말 예쁘고 사랑스러워 죽겠다가도 화나고 밉고 할 때도 있더라...


하물며 낳은 정, 기른 정 다 있는 친부모도 이런 생각이 드는데, 친부가 아닌 사람이 아이에 대해 미운 감정이 들었을 때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수 없이 들었어.


그렇게 생각하니까 우리가 세상에 내보낸 그 아이들이 행복하게만 자랄 것 같지 않을 거란 생각이 매번 들더라고. 그런데 이런 일이 생긴 거야.”


석훈이 쉬지 않고 쏟아내는 한 숨 섞인 말에 원준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마음이 이해가 되기에, 그리고 자신도 언젠가 겪을 수 있는 일이기에 섣불리 어떠한 위로가 나오질 않았다.


그냥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위로의 말이나, 너의 자식은 윤서뿐이니 더는 생각하지 말라는 등의 조언을 받고자 원준을 만났던 석훈은 기대도 하지 않았던 원준의 공감과 이해에 더 마음이 무거워졌다.


석훈은 아무런 결론은 소득 없이 마음만 괴로운 상태로 집에 돌아왔다. 왜 자신이 슬프고 괴로운지 생각만 하다가 입 밖으로 꺼내고 나니 더욱 답답하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외로워졌다.


술을 마시면 잠을 자는 게 주사인 석훈이지만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잠들지 못했다. 그리고 생각을 정리했다.


석훈은 준서가 자신과 무관하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것은 포기하고, 준서가 무사하기만을 바라는 것으로 마음먹기로 했다.


준서의 소식은 그때 방송 이후로 들려오지 않았다.


뉴스에서 집중적으로 다루던 일도 아니고, 시사 교양 프로그램에서 다루던 것이라 그 프로그램에서 다시 다루지 않는다면 더 알 수 있는 소식도 아니었다.


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온 석훈은 더 이상 들리지 않는 소식에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에 안정이 찾아왔다. 실종된 준서가 돌아왔을 수도 있고, 더 나쁜 소식이 들리지 않으니 이미 Fact인 ‘단순 실종’ 상황보다 더 최악인 ‘단순 실종 아닌 실종’은 아닐 거라는 쪽으로 생각이 옮겨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