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준서의 발견

III. 다시 2020년 봄

by 제이케이

그로부터 몇 달 후


이른 출근을 위해 진경보다 먼저 집을 나선 석훈이 기사를 보기 위해 스마트폰을 들었다. 인터넷 기사나 뉴스를 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가실 무렵이었다.


'실종 아동 숨진 채 발견, 부모 긴급체포'


어제 나온 기사였다.


어제는 월말 사업실적 보고가 있어 근무시간 내내 바빴고, 늘 진경과 같이 만나 퇴근하느라 기사를 볼 시간이 없었던 탓에 알지 못했다.


자신이 생각하던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가 기사에 쓰인 것에 대해 석훈은 허탈했고 또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석훈의 머릿속에 서진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기사를 클릭하니 좀 더 자세한 이야기들이 나와 있었고, 기사 말미에는 지난번 교양 프로그램에 공개된 준서의 사진이 모자이크 된 채 나와 있었다.


모자이크 된 준서의 사진을 보고 또 봤다. 석훈은 그동안 잠시 잊고 있었던 준서에 대한 죄책감이 사무쳤다.


사람이 가득 찼는데도 안에는 철로의 단차가 만들어내는 규칙적인 소리만 들렸다.


‘터컥터컥, 터컥터컥, 터컥터컥...’


석훈은 이 소리가 자신의 가슴을 반복적으로 찌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가슴이 수십 번 찔리자 투명한 피가 눈에서 흘러내렸다.


눈물과 훌쩍임이 감당할 수 없게 될 때쯤, 석훈은 지하철에서 내렸다. 출근길에 눈물 흘리며 훌쩍거리는 남자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많지 않았다.


석훈은 플랫폼 의자에 앉아서 하염없이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이렇게 슬퍼하는 것이 맞는 건지.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한참을 생각하고 나서야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된다는 이성적인 판단을 내렸다.


'내 아이도 아니고 그들의 일이다. 내가 개입할 바도 아니다. 단지 나의 유전자를 빌려 태어난 아이고, 나와 일말의 교감도 없던 남이다. 그저 남이 불운하게 인생을 빨리 마감한 것이다.'라고 주문을 걸 듯 반복해서 생각했다.


가까스로 이성의 끈을 잡고 다시 회사에 출근을 하려고 다가오는 전철에 몸을 실었다. 눈물과 훌쩍임은 멈췄지만 가슴을 찌르는 소리는 계속됐다.


원래 일찍 출근을 하는 편이라 이런 갑작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지각은 하지 않았다. 아무도 석훈의 아픔을 눈치 채지 못한 오전 중에 진경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저번에 우리 TV로 봤던 실종 어린이 있잖아. 부모가 죽였다는 기사 봤어? 아니 어떻게 자기들이 죽여 놓고 태연하게 TV에 나와서 실종됐다고 인터뷰를 하지? 애가 진짜 너무 불쌍하다.'


‘너무 불쌍하다’ 정도로 머물지 못한 감정을 이성으로 억지로 구겨버린 석훈이 차갑게 답했다.


'부모 잘못 만난 탓이지... 생각하지 말자. 우리도 우울해지겠다.’


그 ‘잘못 만난 부모’에 자신도 포함돼 있다는 생각으로 괴로웠지만, 석훈은 최대한 그 아이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쳤다.


그렇게 또 며칠이 지나고 자세한 내용의 기사들이 쏟아졌다.


석훈은 그 내용을 보지 않으려 했으나, 이미 자식을 살해하고 직접 실종신고 후 언론 인터뷰까지 한 부모의 행동에 국민적인 관심이 집중된 터였다.


석훈이 그 기사를 보지 않으려 한다고 해도 자신의 귀에 그 이야기가 들려올 것을 알기에 담담한 마음으로 사건의 전말을 받아들이려 했다.


기사는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었다.


'체포된 서진 군 아버지는 계부. 아들 살해에 친모가 방조’


‘서진 군 시신 발견 후 친모가 범행 일체 자백'


'친모가 계부와 동거한 3년간 거의 매일 잔혹한 학대'


'수 시간 동안 여행용 캐리어에 가두기도'


'이웃 주민, 3번이나 학대 의심 신고, 학대 아동 보호 시스템은 어디에'


석훈은 자신이 세상에 나오게 한 아이가 인생의 절반을 얼마나 절망적으로 고통 속에 살았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경찰의 수사결과 브리핑 뉴스를 마지막으로 한동안 준서에 대한 기사는 찾기 어려웠다.


‘피해자 이준서 군은 계부의 지속적인 폭행으로 내장 파열, 골절 등에 의해 쇼크사 했으며…… 친모 김 씨는 4년 전 이혼하고 부모 및 일가친척 등도 없어 정서적,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고…… 동거남 박 씨에게 아무런 저항을 할 수 없어 방조한 끝에……’


키와 몸무게가 또래보다 훨씬 작고 왜소했던, 늘 웃지 않고 얼굴에 그늘이 있는 아이 서진이는 여덟 살의 짧은 생을 엄마, 아빠라고 부르던 사람에 의해 마감했다.


석훈은 더 이상 이성의 끈을 붙잡을 수 없었다.


또 한동안 쓰지 않은 E-Mail 계정에 로그인을 했다. 8년 만이다.


비밀번호를 찾고 몇 가지 절차를 거쳐 잠자고 있던 계정을 살려냈다.


수천 통의 스팸메일을 지워내고 나서야 8년 전, 자신에게 온 '대리 관련...' 메일을 찾을 수 있었다.


석훈은 그 당시에 사용한 연락처로 자주 쓰지 않는 메일 주소를 활용한 것이 도움이 됐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면 이 메일은 남아있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에게 요구했던 각종 서류들, 지금도 크다면 크다고 할 수 있는 큰 금액을 지불하는 조건 등이 담긴 메일 내용을 보니 더 화가 났다.


그렇게 정성스럽게 따지고 큰 대가를 치르면서 태어나게 만든 아이를 저렇게 방치하고 허망하게 보낼 수 있는지 석훈은 서진에게 따지고 싶었다.


석훈이 메일을 썼다.


‘8년 전, 아래 메일 수신한 준서 아빠입니다.’


'준서 아빠'라는 자극적인 문구를 쓴 건 석훈이 그만큼 분노했다는 것을 서진에게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도 있었지만, 제발 이 메일을 읽고 답을 달라는 의도가 더 컸다.


서진이 이 메일을 볼 수도 있지만, 더 이상 그 계정을 그가 쓰지 않을 수도 있었기에 메일을 보내는 행위 자체에 대해 고민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보지 않을 확률이 더 크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볼 이유는 없는 것 같은데, 왜 만나야 하죠?'


기대하지 않았던 답장이 두 시간 만에 왔다.


석훈 자신도 서진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만나는 게 맞는 건지 확신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자신이 느낀 분노에 뭐라도 할 수 있는 것을 찾은 게 서진을 만나는 것이었다.


서진을 만나서 자신이 뭘 할 수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런데, 아무 일 없다는 듯 무관심해 보이는 서진의 반응에 석훈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왜 만나야 하냐니요. 준서라는 아이. 당신이 아들이라고 생각하고 믿고 키웠을 그 아이가 죽었는데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모습에 화가 나네요. 내가 당신을 만나서 따질 자격이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전후 사정은 들어야겠습니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이 일을 만들게 된 원인을 제공한 것 같아 준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로 한순간도 괴롭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몇 가지 궁금한 것도 있고, 드릴 말씀도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석훈은 답장을 기다렸으나 다음날까지 답이 오지 않았다. 그래도 마지막에 보낸 메일을 읽었다는 표시가 있었고, 이틀을 더 기다렸지만 답장이 올 것 같지도 않았다.


어쩌면 소연과 이혼하고 다른 여자를 만나 잘 살고 있을지 모를 서진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연락하는 것 자체가 민폐일 수도 있었고, 서진이 친부가 아닌 상황에서 준서의 죽음에 대한 서진의 반응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준서를 위해, 그리고 어쩌면 한 때 아빠로 살았을 서진을 위해 자신이 생각한 그 일을 꼭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석훈은 본가에 가보기로 했다.


본가에는 석훈이 쓰던 방이 아직 그대로 있고, 잘하면 8년 전 쓰던 휴대전화가 있을 것이었다. 거기 연락처가 저장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있었지만 연락처가 있다고 해도 그가 그 연락처를 아직 사용하고 있는지는 미지수였다.


다음날 석훈은 진경 모르게 연차를 내고, 태안에 있는 본가에 내려갔다.


부모님의 식당에 들려서 오랜만에 부모님 얼굴이라도 뵐까도 생각했지만 괜히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을까 집에 간다고 말하지는 않고 휴대전화만 찾아가기로 했다.


출근 복장으로 터미널에 가서 태안행 버스를 탔다. 차를 가져가지 않은 것은 그만큼 진경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컸던 탓이다.


몇 시간을 달려 태안에 도착했고, 다시 택시를 타고 30분을 가서야 집에 다다랐다. 크지도 않은 방을 오랜 시간 뒤진 후에야 그때 쓰던 휴대전화를 찾을 수 있었다. 석훈은 급하게 충전기를 꼽고 전원을 켰다.


오랜만에 연 보물 상자 같은 반가움을 느낄 겨를도 없이 전화번호부를 뒤지니 '대리 이서진'이라는 전화번호가 나온다.


'찾았다!'


그 당시에 거래가 끝나고 메시지는 지웠는데, 전화번호는 지우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 당시에 혹시나 또 연락할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쓸데없는 걱정이 8년이 지난 지금 도움이 됐다.


석훈은 지금 사용하는 스마트폰을 꺼내 번호를 저장하고 카카오톡에 저장해 프로필 사진을 확인했다.


흑백으로 된 프로필 사진이 떴다.


세 번이나 만나서 관계를 맺은 김소연씨도 한 번에 기억나지 않았는데, 딱 한 번 만났던 서진은 더 알아보기 어려웠다. 프로필 상의 사람이 서진인지 아닌지 가물가물했다. 하지만 적어도 석훈이 추측하는 지금의 서진 나이와는 비슷해 보였다.


전화를 걸려다가 문자를 보냈다.


그 전화번호의 주인이 서진이 아닐 수도 있고, 전화로 자신이 아니라고 잡아떼면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그가 어떤 반응을 할지, 그가 보이는 반응에 따라 자신이 잘 대응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얼마 전에 E-Mail 보낸 사람입니다. 한 번만 만나 주시면 다신 연락하지 않겠습니다.'


혹시 서진이 아닐 수도 있기에 자세한 내용을 문자에 담지는 않았다.


'내일 저녁 7시 강남역 10번 출구 커피빈'


그의 번호가 맞았다. 태안까지 연차 쓰고 온 보람이 있었다.


서진은 석훈이 자신의 번호를 아는 것에 부담을 느꼈는지, 1시간 만에 약속 시간과 장소를 정해 보내왔다.


그렇게 하나씩 실타래를 풀어가는 마음으로 서울로 다시 돌아왔다. 내려갈 때의 마음보다는 가벼웠지만, 다시 서진을 만날 생각에 무거움이 가시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