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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온 Jul 25. 2023

욕망, 배신, 결핍, 집착

렌조 미키히코 소설 <열린 어둠> 서평

매거진 소개

저는 추리소설을 아주 좋아합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쉬지 않고 읽어왔어요. 추리소설의 원류라 할 수 있는 영미권의 고전은 거의 다 섭렵했고, 요즘엔 일본의 참신한 작품에 푹 빠져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가 읽는 소설에 대해 어떤 형식으로든 기록을 남기고 싶어졌어요. 저 자신에게도, 읽어주시는 분들께도 정리와 참고가 되면 좋을 것 같아서요. 저의 주관적인 기준이지만 별점도 매겨보기로 했습니다.   

   

 어쩌면 글을 자주 올리게 될지도 모르는 데다 잘 안 알려진 작품을 많이 다루게 될 예정이니, 그저 가볍게 스윽 훑어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참, 기본적으로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렌조 미키히코, <열린 어둠> ★★★☆     


나의 추리소설 취향은 본격 미스터리, 즉 수수께끼 풀이를 중점으로 두는 가장 클래식한 장르에 치우쳐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 작품에는 별점 세 개 정도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추리 요소를 배제하고 문장력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넉넉히 네 개 반은 주고도 남는다. 그만큼 이 작품의 문학적 묘사는 매우 뛰어나다.     


 보통 추리소설을 읽을 때면 단서가 하나씩 드러나고 사건의 진상에 다가가는 과정에서 서스펜스를 느끼게 마련이지만, 이 작품은 그렇지 않다. 추리 과정보다는 섬세하고 치밀한 심리묘사가 팽팽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특히 <베이 시티에서 죽다>라는 단편에서 칙칙한 항구의 모습을 세심하게 묘사한 부분은 가히 예술적이라고 할 만하다. 주인공의 마음처럼 몹시 음울하고 쓸쓸하고 안개가 잔뜩 낀 부두의 풍경이 마치 머릿속에서 영화가 상영되는 듯이 그려질 정도였다.     


 이런 탁월한 표현력은‘인간 대 인간’의 욕망과 갈등을 주요 소재로 하는 단편들에서 단연 돋보인다. 추리소설에서 흔히 다뤄지는 범행동기는 유산을 노려서라든가, 감추고 싶은 비밀을 들켰다든가 하는 이유이지만 이 단편집은 다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처절한 질투와 배신, 복수가 주된 동기로 등장한다.   

  

 그놈의 사랑이 뭐길래, 욕망이 뭐길래 속고 속이고 죽고 죽이는 걸까. 소설을 읽으면서 자문하게 된다. 어린 시절의 결핍을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파멸에 이르는 인물을 보면 안타까움과 연민이 인다.      


 이 작품은 문학적인 수준이 높을 뿐 아니라 추리적 요소도 상당히 괜찮다. 특히 허를 찌르는 반전을 즐기는 독자라면 충분히 만족할 것이다.      


 단, 천재적인 탐정이 선보이는 화려한 추리나 기상천외한 트릭이 등장하기를 기대하진 마시기를. 이 소설의 기술적 쾌감은 문제풀이가 아니라 글솜씨 자체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글을 잘 쓸 수 있는지 내내 신기해하면서 읽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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