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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온 Oct 05. 2023

<메리 크리> 피아노 연습 수난기

 어제 <메리 크리>의 피아노 커버를 브런치에 올린 바 있다. 아마추어의 연주이니 너그럽게 들어주실 거라는 근거 없는 기대를 품고 염치없이 링크해 버렸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미션을 수행한 이유는, 무엇보다 이 곡의 피아노 버전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선생님조차 노래가 정말 좋으니 열심히 연습해서 학원 인스타에도 올려보자고 하셨다. 그렇게 나는 원대한 목표를 세우고야 말았다.

      

 몇 달에 걸쳐서 최소 오백 번 이상 연습한 후에야 그래도 소음은 아니라고 할 만한 녹음을 딸 수 있었다. 최종본에서조차 선명하게 들리는 미스터치가 뒷목을 잡게 했지만, 너무 힘들어서 더는 시도할 수 없었다.

     

 다음은 한 초급자의 연습 잔혹사이다.

     

검은건반의 압박

     

 여러 버전의 악보 중 내가 선택한 악보의 최상단에는 내림표가 여섯 개 붙어 있었다. 그것은 곡 대부분이 검은건반에서 진행된다는 뜻이다. 검은건반을 어려워하는 것은 대표적인 초심자의 특징이다.

      

 검은건반은 흰건반에 비해 폭이 좁다. 흰건반도 손가락 하나만 갖다 대도 공간이 얼마 남지 않는데 검은건반은 오죽하랴. 엄지부터 소지까지 모든 손가락이 신나게 건반에서 미끄러졌다.

      

 심지어 브릿지에 이르러 조바꿈까지 일어나는데, 이번엔 올림표의 향연이 펼쳐졌다. 이런 걸 두고 점입가경이라고 하나 보다.

     

‘여리게’의 늪

     

 악보를 어느 정도 손에 익히고 난 후엔 본격적으로 악상을 만드는 작업에 들어갔다. 시작은 역시 셈여림 표현이다.

      

 원곡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듯 <메리 크리>의 벌스는 매우 곱고 잔잔한 반면, 코러스는 웅장하고 벅차오른다. 후자는 선생님의 가르침대로 마음껏 세게 치면 된다. 문제는 전자였다.

     

 ‘여리게’를 어려워하는 것도 전형적인 초급자의 특성이다. 보아가 부른 대로 서정적으로 표현하고 싶어서 최대한 살살 치면, 어김없이 음이 뭉개졌다. 반대로 한 음 한 음 빠뜨리지 않으려고 명료하게 치면, 메리 크리가 이렇게 힘찬 노래였나 자케 하는 소리가 났다.

     

 정말이지 벌스를 듣기 좋게 치는 것이 제일 힘들었다.

     

오른손 반주의 굴레

     

 이 악보에선 반주를 맡은 왼손에 더해 오른손이 멜로디를 연주하면서 추가로 반주를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곡이 훨씬 풍성하게 들리는데, 피아노 한 대로 원곡의 웅장한 사운드를 표현해야 하기에 이렇게 편곡한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문제는 오른손으로 선율을 칠 때와 반주할 때의 주법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었다. 반주 음형을 멜로디처럼 강하고 분명하게 쳐 버리면, 뭐가 주인공이고 뭐가 배경인지 알 수 없게 된다. 가장 잘 들려야 하는 메인 선율이 묻히는 사태도 벌어진다.

     

 녹음한 연주를 들어보는 작업을 수십 번 반복한 후에야 두 부분에 차이를 줄 수 있게 되었지만, 그 과정 역시 지난하기 그지없었다.

           

3박자의 수렁

     

 이제껏 살아오면서 나 자신이 길치, 몸치라고 느낀 적은 있었어도 박치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이 곡을 연습하면서 합리적 의심이 들었다.

    

 메리 크리는 4분의 3박자로, 4분 음표가 같은 길이로 세 번 연달아 나오는 부분이 많다. 내겐 너무나 소중 하. 기. 에./ 조금 더. 함. 께. 하고픈 / 나의 사. 랑. 이. 죠/ 이런 식이다.

    

 그런데 내 연주는 4분 음표 삼총사가 제각기 다른 길이를 뽐냈다. 자기들 맘대로 당기고 밀며 박자를 엉망으로 만들고 있었다. 나 박치였나.

     

 박자가 하도 안 잡혀서 핸드폰으로 원곡을 틀어놓고 그대로 따라 쳐보는 등 다방면으로 노력해 봤지만, 역시 이쪽 방면의 최고 치료법은 메트로놈이다. 메트로놈의 탁탁거리는 소리를 한참 듣고서야 3박자를 맞출 수 있었다.

          

원테이크의 시련

     

 내겐 유튜버들이 쓰는 편집 프로그램이나 촬영 장비가 없어서 연주는 무조건 원테이크다. 틀리면 처음부터 다시 쳐야 한다. 근데 칠 때마다 꼭 틀리는 곳이 나온다. 수백 번을 연습해도 틀린다.

     

 메리 크리를 칠 때의 나는 어떻게 하면 다양하게 틀릴 수 있는지 시범을 보이는 것 같았다. 아까 여기를 틀려서 고쳤더니 이제는 저기를 틀리고, 다음번엔 또 다른 데를 틀렸다.

     

 정말 고약한 부분은 조금만 더 하면, 한 번만 더 치면 안 틀릴 것 같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면 한 번이 열 번, 스무 번이 됐고 결국 지칠 대로 지쳐 녹음 기능을 꺼버리곤 했다.





  

 브런치에 올린 버전도 앞서 나열한 여러 난관을 완전히 극복한 결과라고 할 수 없지만, 이렇게 한 곡만 치다가는 다른 곡 진도를 전혀 나가지 못할 지경이었다. 완벽하진 않지만 목표한 바를 어느 정도 이루었으므로, 메리 크리는 그만 마무리하기로 했다.

    

 지긋지긋한 연습 때문에 악보도 쳐다보기 싫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렇진 않다. 수백 번을 연주하고 들었는데도 여전히 감미롭다. 쉬이 질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좋은 음악의 조건이라면 역시 메리 크리는 명곡임이 틀림없다.


 시련과 고난(?)을 극복하고 커버 연주를 올릴 수 있어서 보람차고 기쁘다. 어려운 곡에 도전한 경험이 피아노를 꾸준히 배우는 데 밑거름이 되어줄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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