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열이 날 때

by 세온

아이가 이틀째 열이 난다. 어제 병원에 갔더니 의사선생님이 앞으로 2~3일은 증상이 계속될 거라고 하셨다. 종종 찾아오는 열감기 같은 건가 보다.


오늘은 좀 덜했지만 어제는 무척 심했다. 38도가 넘는 열에도 아이는 씩씩하게 놀았지만, 체온계의 숫자가 39가 넘어가자 힘없이 누워 있기만 했다. 해열제를 먹여도 반응이 더뎠고 효과가 있어봤자 간신히 1도 정도 떨어질 뿐이었다.


나는 직장에 휴가를 내고 아이를 보살폈다. 2시간마다 해열제를 교대로 먹이고, 몸이 너무 뜨거우면 손수건에 물을 적셔 닦아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고열에 오한이 들었을 아이는 춥다며 괴로워했지만 열을 내리는 일이 더 급했다. 새벽에도 수시로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고 약을 먹였다.


문득 어렸을 때 생각이 났다. 그땐 지금처럼 가정에 고막 체온계가 보급되기 전이었는지, 엄마 아빠는 까만 바탕에 네모난 칸이 그려져 있는 길쭉한 종이를 내 이마에 붙여 온도를 재곤 하셨다. 열이 높으면 네모칸의 색깔이 변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보다 좀더 커서 사춘기가 되자, 엄마는 옛날에 써두신 육아일기를 보여주었다. 아기인 내가 밤새 아팠을 때,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애달프게 간호했던 기록이었다. 엄마는 내가 숨을 쉬고 있는지 불안해서 수시로 내 가슴에 귀를 대고 심장소리를 확인했다고 썼는데, 그 문장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엄마가 유달리 불안해했던 건 당연했다. 나보다 먼저 태어났던 언니, 즉 첫째 아이를 생후 3개월만에 잃었던 것이다. 심장 이상이었다고 했다. 나는 중학생이 되고서야 그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그 일로 엄마가 느꼈을 슬픔의 크기를 헤아리기엔 여전히 너무 어린 나이였다.


그 이야기를 들려준 지 7년 후, 엄마는 그토록 바랐던 나의 대학 졸업을 미처 보지 못하고 언니를 따라갔다. 갑작스레 발생한 뇌출혈이 원인이었다. 나는 그렇게 23살에 엄마를 떠나보냈다.


아이를 키우며 친정엄마가 가장 많이 생각난 건 산후조리 시기도 아니었고, 갑상선 수술을 받았을 때도 아니었다. 내 아이가 아플 때면 매번, 육아일기에서 읽은 젊은 엄마의, 지금의 나처럼 걱정스러워하고 안타까워하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누워서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는 조그만 얼굴을 쓰다듬으며, 문득 내가 이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닫는다. 그리고 이 아이에게 엄마인 내가 얼마나 큰 존재인지도 느낀다. 35년 전의 우리 엄마도 분명 그랬을 것이다.


한없이 감상에 젖어드는 밤이다. 조용히 글에 어깨를 기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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