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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온 Dec 11. 2023

어느 경상도 가족의 신나는 서울 여행기 – 완결

늦은 저녁 우리 가족이 택시를 타고 향한 곳은 다름아닌 인사동이었다. 서울의 대표 관광지로 빼놓을 수 없는, 웬만한 외국인들도 다 가봤을 곳이지만 정작 한국인인 나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으므로 무리를 해서라도 일정에 끼워 넣은 것이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택시를 타서 어디로 가자고 말해야 할지 고민되었다. 왠지 그냥 인사동에 가자고 하면 인사동 어디요? 라고 하실 것 같았기 때문이다. 택시를 기다리며 후다닥 검색을 해보았더니 ‘익선동’이라는 곳에 맛집이 많다고 했다. 옳다구나, 여기다 싶어 기사님께 익선동을 외쳤다.

     

그런데 택시가 우릴 내려준 곳은 내가 상상한 우리나라의 전통 공예품들이 즐비한 인사동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동 이름이 다른 만큼 거리의 성격도 판이한 모양이었다.

     

다만 맛집이 많다는 평만은 사실인 듯했다. 자전거 한 대, 사람 한 명이 함께 겨우 지나갈 만한 좁은 골목에 즐비한 감각적인 식당과 카페를 보고 우리 일행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나같이 인스타에 올릴 만한 트렌디한 인테리어로 무장한 핫플이었다.

     

우린 그중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한 일본 가정식집으로 들어갔다. 아마도 주택을 개조해 만든 듯한 그 식당은 인테리어가 너무 예뻐, 혹시 노키즈존일까봐 걱정했지만 다행히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유아 식기도 따로 가져다주시는 등 아주 친절했다.

     

사진이 기가 막히게 잘 나올 듯한 조명 아래 너무나 오랜만에 예쁜 곳에서 식사하게 된 나와 남편은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몹시 들떴다. 딱 MZ세대들이 좋아할 만한 맛집이었고 실제로 우리를 제외한 모든 손님은 다 20대들로 보였다. (그래서 조금 기가 죽긴 했다)

     

그리고 우리 자리에서 대각선 방향 뒤쪽엔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이 마주하고 앉아있었는데 묘하게 분위기가 어색한 것이 아무래도 소개팅 자리임이 틀림없었다.

     

중요한 만남 중인 선남선녀들에겐 미안하지만, 솔직히 남이 소개팅하는 광경은 너무 흥미롭다. 잔뜩 세련되게 차려입은 옷차림과 공손한 존댓말, 경직된 표정, 혼신을 다한 리액션 등이 커플과는 너무 달라서 차라리 귀엽기까지 하다. 그 두 사람은 우리가 밥을 다 먹고 일어날 때까지 대화를 나누며 움직이지 않았는데, 잘 됐으려나?

     

음식은 아주 맛있었다. 나는 함박스테이크를, 아이는 돈까스를, 남편은 돈까스나베를 시켜서 너무 기분 좋게 먹었다. 남편은 분위기와 맛, 서비스가 전부 최고였다며 다음에 서울에 와서도 또 오자고 난리였다.

     

우리의 먹부림은 이튿날 아침 호텔 조식 뷔페에까지 이어졌다. 서울 시내 5성 호텔의 조식은 한마디로 판.타.스.틱.이었다. 우린 최후의 1분 1초까지 써 가며 음식을 즐겼고 그중 제일 인상적이었던 맛은 의외로 감자고로케였다. 튀김옷이 바삭함은 물론이고 포실포실한 속에 절묘하게 간이 맞춰져 있어 계속 떠오르는 맛이었다. 난 동그랑땡 크기 정도의 감자고로케를 다섯 개나 먹었다.

     

 비행기 시간을 맞추기 위해 너무 거창한 장소 말고 아이가 간단히 놀 만한 곳을 물색해 보았더니, 서울 애니메이션 센터라는 곳이 눈에 들어왔다. 뽀로로, 슈퍼윙스 등의 유아용 만화 캐릭터들이 가득한 아담한 키즈카페 비슷한 곳이었다.

     

그곳으로 목적지를 정한 뒤 짐을 꾸리고 호텔 방을 나갈 채비를 하자, 아이가 대뜸 울음을 터뜨렸다.

“나 집에 가기 싫어. 여기가 우리 집이란 말이야. 엄마, 우리 서울에 계속 살면 안 돼? 호텔에 맨날 살면 안 돼? 우리도 서울에 집 만들면 되잖아.”

여섯 살짜리 아이도 호텔이 좋은 걸 알다니. 역시 돈의 힘은 막강하다. 그러나 난 엄마된 자로서 자본주의의 냉정함 또한 알려줄 의무가 있었다.

“엄마 아빠도 너무 그러고 싶지.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럴 돈이 없단다...”

나는 속으로 덧붙였다. ‘휴, 서울에 집 한 채 있으면 오죽 좋겠니.’

    

아이는 몇 분간 빽빽 울더니 갑자기 뚝 그치고는, 이제 다 울어서 안 슬퍼! 라고 말하며 호텔 로비를 신나게 뛰어다녔다. 그렇게 손바닥 뒤집듯 감정이 바뀌는 것이 오히려 부러웠다. 난 여전히 서울을 떠나는 것이 몹시 아쉬웠기 때문이다.

     

다행히 애니메이션 센터는 남산타워 바로 아래, 명동 시가지 근처에 있었으므로 택시로 이동하는 동안 마지막으로 서울 시내를 구경할 수 있었다. 하늘을 찌를 듯한 빌딩과 혼잡하기 그지없는 도로는 언제 봐도 짜릿한 수도의 위용이었다. 앞으로 또 언제 볼 수 있을지 모를 그 광경을 나는 뇌리에 깊게 새겨두었다.

     

김포공항으로 이동할 때는 택시가 아닌 지하철을 탔다. 동대문역사문화지구에서 한 번만 갈아타면 단일노선으로 죽 갈 수 있어 별로 복잡한 경로가 아니었고, 혹시 모를 택시 내의 담배 냄새를 걱정할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서 있을 수 없는 아이는 노약자석에 앉히기로 했다. 지도 앱 상으로는 1시간 가량 걸리는 거리였다.

    

지하철을 타자마자 아이가 혼자서는 절대 앉지 않겠다며, 무조건 엄마 무릎에 앉아야 한다며 칭얼거렸다. 난 아이를 무릎에 얹고 노약자석 구석에 자리 잡았지만, 몇 정거장도 채 가지 않아 눕고 싶다고 징징거리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러나 나 한 몸 앉기도 어려운 지하철에 누울 자리가 있을 리 만무했다. 우린 아이의 발을 캐리어 위에 얹어주며 다리라도 뻗을 수 있게 해주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아이는 포기하지 않고 조르고 졸랐다.

     

그때 내 바로 옆에 앉아계시던 할머니 한 분이 우리를 영 안쓰럽게 보셨는지, 당신의 무릎에 아이를 눕히라고 하셨다. 나와 남편은 기겁해서 정중히 사양했지만 할머니는 정말 괜찮다고 계속 권유하셨다. 결국 우리 부부는 감사를 표하며 조심스럽게 그분의 다리를 빌렸다.

     

알고 보니 할머니는 딱 우리 딸만한 손녀가 있으셔서 아이가 피곤해하는 모습을 매우 안타까워하신 것이었다. 아이는 낯선 어른의 무릎 위를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자기 안방처럼 차지하고 있었다. 그분은 김포공항이 멀지 않은 송정역에서 내리셨고 끝까지 잘 가라는 인사를 아끼지 않으셨다. 우린 어르신이 베풀어 주신 아량에 깊이 감사했다.

     

김포공항 역에서 비행기 탑승구까지는 꽤 많이 걸어야 했다. 우리는 아이를 가장 큰 캐리어 위에 태우고 길고 긴 무빙워크에 올랐다. 탑승구에 도착했을 땐 완전히 녹초가 되어 있었다. 너무 힘들어서 커피 수혈을 했다.

     

30분여의 짧은 비행이 끝나고 우리는 어둠이 뒤덮은 울산공항에 발을 내디뎠다. 나흘 전 설레는 마음으로 이곳을 출발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간절히 시간을 되돌려 토요일로 돌아가고 싶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울산공항이 아니라 그날의 김포공항이었다면 얼마나 좋을지 상상했다.

     

집에 도착하니 밤 9시였다. 다음날은 수요일, 우리는 쉴 틈도 없이 바로 직장에 복귀했다. 금요일엔 병원에 가야 해서(난 2019년 갑상선암 수술 후 매년 강남세브란스 병원에 검사차 방문한다) 혼자서 이틀만에 또 서울을 다녀왔다. 그리고 토요일엔 시댁에 김장을 도우러 갔다. 그 주는 고단함 그 자체였다.

     

아이는 틈만 나면 언제 다시 서울에 가냐고, 혹시 영영 못 가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난 서울도 울산처럼 우리나라 도시이니 마음만 먹으면 당일로도 다녀올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아이는 내년엔 세 밤 말고 다섯 밤을 자자고 했다. 그럼 난 휴가를 최소 3일은 써야 하는데. 그럴 바엔 그냥 해외가 낫다. 내년 목표는 해외다.

     

지난 금요일엔 검사 결과를 들으러 다시 혼자 서울에 올라갔다. 올해가 수술한 지 벌써 5년째라 중증환자산정특례도 마지막이다. 다행히 초음파, CT, 뼈 스캔, 피검사 결과가 모두 정상이었다. 난 내 목에 있던 어마어마한 크기의 혹을 제거해 주신 교수님께 고개 숙여 감사 인사를 올렸다.

     

병원에 갈 땐 SRT를 타고 수서역에 내려 셔틀버스를 이용하기 때문에 서울 시내를 볼 일이 거의 없다. 수서역과 세브란스는 하도 많이 가서 친숙한 나머지 서울 같지 않고 그냥 울산이나 부산 같다. 2시간 반이면 도착하니 더 그렇다. 책을 읽거나 유튜브를 보거나 꾸벅꾸벅 졸다 보면 금방 다 와 있다.

     

그래서 가족과 함께한 여행은 더 뜻깊고 새로웠다. 세계적인 대도시인 서울의 아주 일부만을 봤을 뿐이지만, 매 순간 최대한 감수성을 발휘해 다양한 감상을 느끼려고 노력한 시간이었다.

      

어쩌면 아이는 오래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편견이라고는 없는 어리고 순수한 눈으로 순간을 잘 즐긴 것 같아 다행이다. 그 정도면 그래도 잘 따라다닌 편이다. 아이에게 그 점을 칭찬해 주었더니 내심 뿌듯한 모양이었다.

     

역시 사람은 모로 가도 서울로 가야 한다는 사실도 뼈저리게 느꼈다. 왕십리가 서울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라는 남편의 농담에 킥킥대며 웃었지만 못내 부럽기도 했다. 나도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다면 지금보다 경험과 사유의 폭이 훨씬 넓었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름지기 사람은 큰 세상에 나가 많은 것을 배우고 느껴야 한다.

      

그래서 우리 아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서울에 보내기로 결심했다. 고슴도치 발언이지만 벌써 두 자릿수 덧셈도 척척 하고 어딜 가나 인지능력과 기억력이 좋다는 칭찬을 듣곤 하니, 왠지 15년 후에도 인서울은 충분할 것 같다. 극성 엄마는 절대 되고 싶지 않았는데,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다니. 말은 이렇게 해도 난 독하게 아이를 공부시킬 만큼 심지가 강하지 못하다.

     

남편은 아이가 대학에 간 후엔 우리끼리 울산보다 작고 조용한 소도시로 이사해 자연과 함께하며 노후를 즐기자고 했다. 그러나 이번 여행 이후 난 그 제안에 반기를 들게 되었다. 작고 조용하다니, 안 될 말이다. 서울만큼은 아니더라도 울산보다 큰 도시로 가야 한다. 최소 대구나 대전 정도는 돼야지. 난 우리나라 최대 도시의 위엄과 없는 게 없는 풍요로움이 너무 좋았단 말이다.

     

언제 또 서울을 방문하게 될 진 모르겠지만 그땐 브런치의 작가님들이 추천해 주신 장소들을 넣어 계획을 짤 것이다. 그분들은 서울에 살아봤거나 살고 계셔서 그렇게 박식하고 교양 있고 글도 잘 쓰시는 걸까? 그렇다면 나도 열심히 서울을 들락거려야겠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지적으로 또 정서적으로 더 고양된 인간이 될지도 모르니까.


마지막날 아쉬움에 가득 차 창밖을 바라보는 공주

     

- 4편에 걸친 긴 여행기를 읽어주신 독자분들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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