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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온 Jan 01. 2024

그 시절 내가 열광했던 만화영화 오프닝

(방영 연도는 내가 시청했을 때를 기준으로 표시하였음)

   

스피드왕 번개(1998)



나와 비슷한 나이대엔 이 만화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을 것이다. <스피드왕 번개>는 일본 애니메이션이 판을 치던 당시로서는 드물게 잘 만든 국산 애니메이션이다.

     

어린이들이 인라인을 타고 작은 자동차를 조종하며 벌이는 스포츠 경기를 다룬 내용이라서, 롤러블레이드와 무선조종 미니카가 엄청나게 유행했다. 물론 나는 그 시류에 편승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바퀴가 두 줄인 것도 못 타겠는데 한 줄로 된 신발에 올라타서 대체 어떻게 움직이란 말인가)

     

성공한 스포츠물의 공식을 충실히 따른 데다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스포츠를 묘사한 덕분에 만화는 무지 재미있었다. 그리고 오프닝 음악이 무척 좋았다.

     

오프닝을 부른 가수가 다름아닌 영턱스클럽인 걸 알고 깜짝 놀랐었다. 그렇게 유명한 대중가수가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부른다는 것이 신기했고, 한편으론 영턱스클럽이 이미 전성기가 좀 지난 상황에 왜 갑자기 이 노래를 부르게 됐는지도 의아했다.

     

이유를 알아내진 못했지만 영턱스클럽의 두 여성보컬 송진아와 한현남의 목소리는 노래에 잘 어울렸다. 활기차고 경쾌한 멜로디가 아주 좋고 남주인공을 향한 여주인공의 마음(남주인공 이름이‘번개’다)을 바람에 빗대 표현한 가사가 재치있다. 난 아직도 혼자서 이 노래를 흥얼거리곤 하는데 참 신난다.




          

로봇수사대 K캅스(1998)

     

        

나랑 남동생은 어린 시절 쥐잡듯이 물고 뜯고 싸웠지만 한 가지에 있어서는 마음이 썩 잘 맞았으니, 만화영화 취향이 그것이다.

      

크게 변신공주물과 변신로봇물로 나뉘는 어린이 애니메이션의 양대산맥을 우리는 아무 차별없이, 편견없이 받아들였다. 그래서 나는 동생이 좋아하는 로봇물을 재미있게 봤고, 동생도 내가 보던 공주물을 별 저항없이 시청하곤 했다.

     

수많은 ‘로보트’중 내가 제일 좋아했던 건 <로봇수사대 K캅스>였다. 제목은 지금의 K팝 느낌나게 잘 지어놨지만 사실 일본 작품이다. 경찰관의 아들이 주인공이며 그 아이는 경찰로봇을 한 무더기씩 불러내서 악당들을 처치하곤 했다.

     

이 로봇들은 유사 시에는 각자의 개성에 따라 여러 종류의 탈것으로도 변신할 수 있었는데, 로봇과 탈것의 디자인이 다채로워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나중엔 자기들끼리 합체도 막 했던 것 같다.

      

그중 대장격인 로봇의 이름은‘데커드’로, 순찰차로 변신하는 종이다. 데커드는 주인공답게 겉모습도 멋졌지만 목소리가 아주 근사했다. 음성에서 잘생김이 묻어났다.

     

K캅스도 오프닝 노래가 너무 좋아 틈만 나면 부르고 다녔다. 일본 원작 OST와는 전주만 빼고 다 다른 창작곡이라고 하니 더욱 놀랍다. 동생은 <전설의 용사 다간>을 더 좋아했지만 내가 보기엔 K캅스가 더 참신했다.     

그리고 둘 다 세컨드로 좋아하던 로봇만화가 있었으니... 그건 다음에 별도의 글로 얘기하도록 하겠다.




꾸러기 수비대(1996)

  

고백하건대 난 아직도 머릿속으로 이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12간지와 해당 동물을 바로바로 매칭시키지 못한다. 그러니까 원숭이에 해당하는 간지를 떠올리려면,

      

똘기 떵이 호치 새초미 – 자축인묘♬

드라고 요롱이 마초 미미 – 진사오미♪

몽치 키키 강다리 찡찡이 – 신유술해♩


로 이어지는 노래를 부르고, 아~ 몽치가 원숭이니까‘신’이구나, 한다는 것이다. 각 이름이 무슨 동물인지는 어떻게 아냐고? 만화를 보면 다 외우게 돼 있다.

     

평소엔 닭이었다가 유사시엔 인간 여성으로 변해서 활약하던 키키와, 눈물이 많아서 툭하면 엉엉 우는데 울면서 배에서 내뿜는 광선에 악당이 우수수 쓰러져 나가던 돼지 찡찡이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근데 이 노래 진짜 교육적인 노래다. 12간지만 달랑 주고 무슨 동물인지, 어떤 순서인지 외우라고 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그래서 난 딸아이한테도 가르칠 예정이다.





마법기사 레이어스(1999)

   


<마법기사 레이어스>는 앞의 것들과 달리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은 작품은 아니다. 한편 같은 작가의 다른 만화는 일약 신드롬을 불러일으켰으니, 그 유명한 <카드캡터 체리>이다. 카드캡터 체리의 화제성은 대단했고 주제가도 정상의 인기를 누렸다.

     

<마법기사 레이어스>는 그 정도로 폭넓은 반응을 얻진 못했지만 아마 매니아 층이 있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나도 그 중 하나이다. 이 작품은 덕후의 마음에 불을 지르는 요소로 점철되어 있다.

     

세 명의 소녀가 주인공으로, 타이틀에서 볼 수 있듯 ‘기사’ 신분이라 그 어떤 만화에서보다 격렬한 전투를 선보인다. 본인들이 공주가 아니라 공주를 지키는 이들이고,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갑옷과 무기도 갖추고 있다. 여기서 제일 흥미로운 부분은 갑옷과 무기(검)가 인물들의 성장에 따라 함께 레벨업한다는 것이다. 꼭 RPG 게임 같은 전개다.

     

게다가 갑옷과 검은 세 소녀의 캐릭터성과 특기에 따라 색과 모양이 다르다. 세 개의 검은 디자인, 길이, 무게로 확연히 구별되며 주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잡을 경우 제대로 사용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써니의 검은 다른 이의 손에 들어가면 불꽃으로 변하고, 마린의 검은 물로 녹아버리며, 윈디의 검은 너무 무거워서 들 수조차 없게 된다.

     

이런 판타지적 레벨업 요소는 나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특히 최종 단계에 이른 갑옷의 디자인이 멋있어서 일러스트를 찾아 저장해놓기도 했다.

     

오프닝 또한 작품의 독특한 매력에 걸맞는 우수한 곡이다. 일어 원곡을 가사만 번안한 것인데 유치함이라고는 없다. 대신 애니메이션 OST 특유의 벅차오르는 뭉클함이 가득하다.





사랑의 천사 웨딩피치(1999)


         

애니메이션 오프닝으로 한국식 락발라드가 사용된 드문 케이스다. 가수 김정민 스타일 느낌이 물씬 나는 강렬한 보컬이 공주풍 그림체 위로 흐르는 이 언밸런스함이란.

    

그런데 자꾸 보다보면 의외로 어울리는 부분도 발견할 수 있다. 사랑 중에서도 특별히 남녀 간의 사랑을 주제로 하는 만화이고 변신공주물 치고 꽤 처절한 장면들이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래서인지 이 음악은 웨딩피치를 떠올릴 때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사랑의 천사 웨딩피치>는 여러모로 선배 <달의 요정 세일러 문>과 비교되곤 했다. 아무리 봐도 세일러 문을 벤치마킹한 요소가 많아보였지만 웨딩피치만의 매력도 많았다.

      

우선 전투복으로 변신하기 전 꼭 거치는 웨딩드레스가 예뻤고, 네 명의 전사가 입는 드레스의 디자인이 다 달라서 소녀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물론 효율성의 측면에서 의문이 들긴 한다. 바로 전투복으로 변신하면 될 것을 아무런 능력도 갖지 못하는 드레스 변신은 왜 하는 걸까)

     

또 아주 중요한 차별점이 있었으니, 세일러 문에는 턱시도 가면밖에 없었던 남자친구 – 왕자님 역이 웨딩피치에는 세 명이나 존재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저마다 다른 외모와 성격으로 어린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피구왕 통키(1993)     

    


<피구왕 통키>는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만화영화다. 너무 어렸을 때 본 터라 줄거리는 다 잊어버렸고 두 가지 포인트만 안다. 통키의 필살기가 불꽃 슛이라는 것과 이국적인 외모의 라이벌이 있었다는 것. (검색해 보니 타이거라는 이름이다)

     

그런데 오프닝만큼은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았다. 나에겐 만화 내용보다 노래가 더 인상적이었나 보다.

      

이 노래는 지금 들어도 어쩜 이리 좋을까? ‘아침 해가 빛나는, 끝이 없는 바닷가’라는 첫 소절만 들어도 기대와 흥분이 차오른다. 후렴은 또 어떻고. ‘뜨겁게 타오르는 정열의 벅찬 가슴.’ 스포츠 만화의 감동을 체화한 듯한 멜로디다.



혹시 서연이라는 가수를 기억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다. 2003년 서연은 <피구왕 통키>의 오프닝을 리메이크하여 본인의 앨범에 히든 트랙으로 실었다. 서연 버전은 TV 버전과 달리 음질이 깨끗하고 2절까지 존재한다. 난 그 점이 좋아서 지금도 통키 노래를 들을 때면 서연 버전을 고른다.

     


통키 노래는 내 노래방 단골 곡이기도 하다. 힘차고 씩씩하며 너무 높지도 않아 나처럼 평범한 사람도 무난히, 신나게 부를 수 있다.

    

만화의 영향인지 원래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학교 다닐 때 체육 시간에 피구를 정말 많이 했고 대학에 가서도 체육대회 시기만 되면 피구 연습을 했다. 언제고 피구만 하면 지나치게 힘이 실린 공에 얼굴이나 머리를 맞고 울음을 터뜨리는 친구들이 속출했다. 어른이 되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피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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