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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온 Jan 23. 2024

남편이 일본에서 사다 준 선물

지난주 남편이 3박 4일로 일본 출장을 다녀왔다. 난 기내용 작은 캐리어를 가지고 가겠다는 남편을 만류하고 32인치 대왕캐리어를 들려  보냈었는데, 매우 탁월한 선택이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가 펼친 캐리어에는 소지품보다 면세점 비닐백과 일본산 디저트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남편의 회사 동료는 그 광경을 보고 파안대소했단다. 출장이 아니라 선물 배달하러 온 거냐며.

    

쇼핑한 물건으로 가득한 캐리어. 사케는 친정 아빠를 위한 선물이다.



덕분에 난 남편의 출국 이틀 전 급하게 면세점 쇼핑몰 앱으로 골라둔 가방과 립스틱을 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야심 차게 포장을 뜯어 확인한 가방은, 내가 상상한 모습과 거리가 멀었다.

      

책 한 권은 넣고 다닐 수 있을 정도의 가방을 원했었지만 내 손에 들린 건 문고본 하나밖에 안 들어갈 듯한 크기의 작고 앙증맞은 백이었다. 그럼 그렇지. 쇼핑도 해본 사람이나 하지, 평소에 쇼핑을 즐기지도 않고 잘하지도 못하는 내가 직접 보지도 않은 물건을 제대로 골랐을 리가 없다.


아담하기 그지 없는 두 가방의 사이즈.

      


책 수납 욕심만 버리면 출퇴근용으로 충분한 크기지만, 시간이 돈인 워킹맘인 나는 언제 어디서 자투리 시간이 생길지 모르니 항상 책을 소지해야 한다. 병원에서 대기하다가도, 학원에 간 아이를 기다리는 중에도 읽을 수 있으니까. 다른 용도로 쓰기엔 애매하다. 집과 직장, 어린이집과 학원만 왔다 갔다 하는 난 멋을 낼 이유도,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작은 백을 어떤 용도로 써야 할지 고민하는 동안 딸아이가 냉큼 달려오더니, 번개같이 그것을 채 갔다. 자신의 페르소나(?)와 같은 와플핑(만화 캐릭터)의 태권도 가방으로 써야 한단다. 아... 이 철없는 딸아.. 그건 정가로 30만 원이 넘는단 말이다... 엄마는 면세점 찬스가 아니면 살 생각조차 하지 않는 물건이란 말이다. (30대 여자 가방 치고 객관적으로 비싼 가격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가방을 거의 사지 않는 나에겐 고급품이다)

     

그래도 가방 두 개 중 하나는 그나마 평범한 크기의 책 한 권 정도는 넣을 수 있어서, 데일리로 들고 다니기로 했다. 대신 다이어리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새해 기념으로 산 NCT127 다이어리는 덩치가 너무 크다.

     

남편이 사 온 간식거리는 역시 미식의 천국 일본산답게 엄청나게 맛있었다. 특히 도쿄바나나와 말차 브라우니, 홋카이도 감자스틱은 눈이 번쩍 뜨이 맛이었다. 난 해외여행 거의 안 해본 방구석 촌여자라서 지극히 유명한 이런 디저트에도 혹한다.

     

간식을 냠냠 먹고 있으려니 지금으로부터 약 10개월쯤 전, 남편이 영국 출장을 다녀왔던 기억이 났다. 그때 예상치 못한 선물로 해리 포터 필기구를 받고는 기분이 좋았던 나머지,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브런치에 자랑글을 올렸었다. 그 글은 내 브런치에서 최초로 다음 메인에 걸렸다.

     

     

1년 가까이 지난 지금, 해리 포터 노트는 최후의 한 장까지 까만 필기로 가득 찼다. 대부분이 브런치에 쓴 글의 초안이다. 그동안 내가 읽고 메모한 것들이 고스란히 물리적 실체로 남모습을 보니 뿌듯함이 차올랐다.(그중 열 장 정도는 딸아이의 지분이다. 그림과 낙서와 글씨 연습에 매진한 흔적이 남아있다.)


     

호그와트 내지가 드러난 노트 맨 뒷장



영광의 해리 포터 노트는 잘 보관해 두고, 이제 새 노트를 사야 한다. 금방 다 쓸 줄 알았다면 일본에서 하나 사 오라고 했을 텐데. 아쉽지만 직접 시내에 나가서 골라도 충분할 것이다.

    

이번 주말에는 온 가족이 새 노트 사기 미션 수행을 위해 집을 나설 예정이다. 너무 작지도 크지도 않고, 아주 예쁘면서 필기감이 좋은 물건을 골라야지. 그곳에 또 한 번의 일 년을 빼곡히 기록할 것이다. 해리 포터 노트가 그랬던 것처럼, 새 노트도 나에게 글기운을 듬뿍 불어넣어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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